[최원영목사칼럼] 2021년 위기 극복 신앙 방정식

  • 입력 2021.01.05 13:40
  • 수정 2021.01.0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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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사랑은 결코 봉쇄되지 않는다


위기를 해석하는 관점이나 처방전은 학자나 직업군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힘은 연결을 통한 연대가 필요하다. 특히 팬데믹 시대에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우리끼리만' 깊이 공감하는 '공감의 깊이' 보다 '공감의 반경을 넓혀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는 지인의 생각에 동의를 한다.   교회 담임목사 입장에서 교인들이 2021년 거센 파도를 잘 헤쳐 나가기를 위한 네 가지 처방전을 제시해 본다. 

첫째, 믿음으로 서로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라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가 병이 들었고, 죽었다. 가정에 대들보가 무너진 것이다. 가정에 청천벽력이 일어났다. ‘맑은 하늘에 날 벼락이이 일어난 것이다. 나사로를 장사한지 사흘만에 예수님이 마르다의 집에 장례 위로 심방을 가셨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11:21). 주님은 오빠를 잃은 자매를 위해 함께 슬퍼하셨고 아파하셨고 눈물을 흘리셨다.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11:33,34).

2021년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지구촌는 여전히 어둠에 지배를 받고 있다. 삶의 어려움과 어둠에 갇혀 있는 분들은 매우 힘들어하며 고통가운데 있다.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함께 마음을 주고받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위기의 시대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나누어졌고, 갈등구조가 심하고, 마음의 이해 폭이 너무 좁아진다. 옆 사람이 보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문제만 크게 보인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신앙의 방식일까?.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라',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 아픔을 나누는 교회, 기뻐하는 분들과 그 기쁨을 함께 나누며 즐거워하는 교회, 나라와 민족의 죄악을 놓고 그것이 내 죄임을 인식하고 회개하며 주님 앞에 꺽꺽 눈물로 통회 자복하는 교회가 위기를 극복하는 답이다.

돌을 던지는 것은 쉽다.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은 쉽다. 사람을 말로 죽이는 것은 아주 통쾌하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은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의 교만과 이기심을 죽이는 행위이다.

느헤미야는 조국 예루살렘의 환난을 듣고 앉아서 울었다. 수일 동안 슬퍼했다. 금식하며 기도했다. 동족의 슬픔이 자신의 슬픔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먼저 자신의 죄를 자백했다. 이스라엘이 말씀을 지키지 않아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이 사건을 해석할 때, 느헤미야는 나와 내 집이 범죄했다고 회개한다. 유다의 멸망은 느헤미야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전혀 없다. 느헤미야는 바벨론 포로 2세이다. 동족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동족의 죄악을 자신의 죄악으로 바라보고 회개하는 느헤미야의 공감하는 능력에서 진정한 영적 지도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대표, 변화산기도원(춘천)협력원장,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대표, 변화산기도원(춘천)협력원장,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라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앞에서 돌을 옮겨놓으라고 한다. 이미 나사로의 몸이 부패하기 시작했다. 생명의 온기도 다 사라졌다. 이미 육체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주님이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11:43)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기도하신 후에 나사로야 나오라고 선포했다. 죽었던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나왔다.

내 말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이것이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반드시 놀라운 은혜가 강물처럼 흘러가게 된다.

2021년 불확실한 미래를 출발했다. 말씀의 나침판이 필요하다. 말씀은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영적 나침판이다. 하나님 말씀에 전적인 신뢰를 갖는 것이 파도를 뚫고 나가는 영적 에너지를 얻는다.

세상 사람들도 연초에 큰 산에 올라가서 호연지기를 얻기 위해 외친다. “천지간에 가득 차 있는 넓고 큰 기운을 온 몸에 느끼기 위해서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모하며 기도하며 외칠 때 이땅의 모든 문제들은 반드시 풀린다.

 

셋째, 사랑은 봉쇄되지 않는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되었다. 우한은 순식간에 죽음의 도시가 되었다. 사방에서 죽음의 공포가 덮었다. 우한 도시는 봉쇄되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무서워 떨고 있을 때, 노란옷을 입은 사람들이 길 어귀에서 마스크를 나누어주며 기도하며 사람들을 위로했다.

우한 동영상에서 본 문구가 있다. ‘도시는 봉쇄되어도 사랑은 봉쇄되지 않는다.’ 설사 예배당 모임은 중단되어도 예배는 결코 중단되지 않으며, 그분의 사랑도 결코 중단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교회는 봉쇄될 수 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은 봉쇄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이 공동체 깊이 스며드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삶의 지혜이다.

우리의 허물과 죄보다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더 크다. 십자가의 사랑은 봉쇄된 적이 없다. 우리를 죄와 허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 독생자 예수를 먼저 이 땅에 보내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랑은 고난의 세월에 더욱 빛난다.

십자가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어떤 위기도, 어떤 아픔도, 어떤 고난도 뛰어넘을 수 있다. 교회건물은 봉쇄될 수 있어도 사랑은 봉쇄되지 않는다. 사랑은 가로막이 없다.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사랑은 모든 허물과 죄를 다 무너뜨리고 오직 하나를 만들어준다.

 

넷째, 평정심을 잃지 말고 예배를 드리며 일상을 살라

위기를 대응하는 기본은 침착함이다. 너무 호들갑 떨지 말라. 차분하게 대응하라. 일상의 삶을 유지하라. 남이 대신 내 인생을 살아주지 않는다.

사도바울은 예배소 교회 성도들에게 말세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에 대해서 말했다. (1)지혜있는자가 되라 (2)세월을 아끼라 (3)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4)술취하지 말라 (5)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6)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라 (7)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8)그리스도를 경외함 복종하라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지혜는 평정심을 잃지 말고 주의 말씀에 깊이 심겨져서 살면 받드시 이길 수 있다.

19409, 영국 런던, 헤르만 괴링이 이끄는 나치 독일 공군이 폭격을 시작했다. 영국 본토가 외적의 공격을 받은 것은 874년 노르만족의 침공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폭탄이 떨어지는 밤이 두 달 넘게 이어졌다.

그러던 중 1010, 인상적인 기록 사진 한 장이 남았다. 완전히 무너지고 박살이 난 건물 잔해 위에서 우유배달부가 우유를 배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 동요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 하는 것, 평범한 영국인들이 전쟁을 하는 방식이었다.

킵 캄 앤드 캐리 온“(keep calm and carry on). 1930,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것을 감지한 영국 정부가 만든 대국민 홍보 포스터의 문구이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뜻이다. 실제로 곧 전쟁이 터졌고, 독일군 비행기가 폭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영국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밤에는 폭격을 당해도 해가 뜨면 희망찬 하루를 시작했다. 청소부는 청소를 하고, 집배원은 편지를 전달하며, 우유배달부는 우유를 날랐다.

학생들은 무너진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총리 처칠은 런던을 떠나지 않은 채 지하 벙커에서 전쟁을 지휘했다. 일치단결한 영국인들의 뚝 심앞에 나치의 기세가 꺾였다. 굽히지 않는 의지,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조선일보 칼럼, 실력없는 권력은 제풀에 무너진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일을 계속하라”, 위기의 시대에 때로 예배당에는 오지 못할 수 있지만 그러나 예배는 더욱 사랑하며 예배로 가정이 하나 되어야 한다. 예배는 모든 것이 들어있는 종합 완성품이다. 예배속에 기도, 말씀, 찬송, 헌금,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위기를 이겨냈던 분들의 고백을 들어보면 예배를 목말라했고, 예배에 자신을 던졌다.

영적으로 병들어가는 징조가 무엇인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차선책이 된다. 예배를 내 삶의 첫 번째 요소가 아니라 선택으로 밀려난다. 예배가 선택이 된다면, 하나님도 우리들의 인생의 길을 선택으로 여기신다. 하나님이 복을 주실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를 주님께 드려라.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마지막 밤 기도하러 감람산에 올라가셨다.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단어가 있다. ‘습관을 따라기도하러 가셨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일상의 삶을 살았다. 이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삶의 방정식이다.

코로나 위기가 예배를 포기하는 기회로 말하지 말라. 오히려 평상시 평정심을 유지하며 하던일 들을 계속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서 전도와 선교를 포기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 말라. 오히려 평상시 하던 대로 하면 된다. 그것이 능력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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