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묵상이 시작되었다. 2021년판 마태복음 묵상이 이끄는 삶이 기대가 된다. 그만큼 오늘을 사는 것이 버겁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다. 그러나 지식으로 아는 것과 실제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제대로 사는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요즘 우리는 정말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고 있는 것인가? 주님이 뜻하시고 계획하신 대로 그 길을 잘 따라가고 있는가? 나는 매일 무엇으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을까?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승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하는 세상의 풍조가 이렇게도 강한데 어떻게 견디어 내고 있는가? 과연 나는 계시록의 마지막에서처럼 ‘이기는 자’로 살아남을 것인가? 무엇으로 이길 것인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으로부터의 물세례와 또한 하늘로부터의 성령 강림의 세례로 하나님의 아들로 아버지의 목적과 계획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마 3장). 그 첫 번째 사건은 성령께서는 예수를 광야로 이끄신 것이고, 여기서 예수는 마귀를 만나게 된다. “그즈음에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4:1)
왜 아버지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의 공생애를 광야에서 시작하게 하셨을까? 마귀의 시험은 하나님 아버지의 예정된 것인가? 그렇다. 광야에서 만난 마귀의 시험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이끌리는 삶으로 대응하는 첫 시작일 뿐이다. 예수께서는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역경과 사건들에서 모든 삶과 사역에서, 오직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 것이다. 이 땅에서 예수님의 성공적인 삶은 오직 성령 안에서 삶으로 이루어진다.
광야에서 예수님은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만난다. 그 시험들은 우리 인생에서도 맞닥트리는 대표적인 종류의 유혹과 공격이다. 마귀는 예수께서 사십일을 금식한 후 육체적으로 굶주려 있을 때 먼저 ‘돌들을 떡 덩이가 되게 하라’고 시험했다. 그러나 마귀의 이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가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충만하신 성령에 이끌리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두 번의 시험에서도 예수께서는 승리하시는데 성령 안에서 기록된 성경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마 4:2-10). 성령과 성경으로 이끌어지는 삶은 이기는 자로 세워진다. 예수께서 십자가로 가시기까지 그분의 모든 일은 성령과 성경에 이끌리는 삶이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영과 진리 가운데 살고, 일하신다.
예수님의 이 모습은 그분에게만 주어지는 삶으로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부름 받을 제자들에게서 주님은 그들에게도 성령과 진리 가운데서의 삶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주 성령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각대로 말하고 선택하고 행동했다. 심지어 베드로의 경우는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아, 물러가라’고 들을 정도로 그 생각이 마귀적인 것이었다. 제자들도 반드시 성령과 성경(진리)을 알고 대응해야 했다. 예수님은 제자들도 언젠가는 제대로 성령과 말씀대로 살 것을 염두에 두고 가르치셨다.
오늘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당연하면서도 진부한 말일 수 있지만, 우리는 정말 삶의 모든 일에서 성령에 이끌리고, 말씀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께서 성령과 성경 안에서 사는 것은 세상의 위협에 승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버지께서 세우신 영원한 목적과 계획을 이루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만일 우리가 성령과 성경 안에서 살지 않는다면, 당면한 삶에서 패배와 나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배울 여러 진리의 주제가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성경 안에서 걸어가는 삶을 사는 것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매일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부터 오후 저녁, 잠자리에 들기까지 성령과 성경을 의식하며 사는 삶이 되어야 한다.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 너무 이상적인가? 그렇다면 하루의 절반만이라도, 하루에 몇 시간만이라도 나의 상황에서 예수님처럼 반응하며 살 수 있을까? 아니면 아예 불가능하거나 어렵다고 하면서 적당한 삶에 만족해야 할까?
요즘 나는 우리 교회 청장년 신자들의 경우를 생각하면서 미안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나마 내가 환경이 제일 나은 것 같아서다. 직업을 가진 사람이 절반 이상이지만, 실직자도 그만큼입니다. 직업을 가졌다고 해도 소위 정규직은 단 한 사람이고, 대부분 알바나 임시적인 직업으로 안정성이 없다. 게다가 현장은 공장과 같은 열악한 환경인데, 아침 8시가 되기도 전에 출근하여 보통은 저녁 7시에 퇴근하고 심지어 야근이 많을 경우에는 9시 30분에 퇴근한다. 한 집사님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목사님, 정말 시간이 없네요. 어떡하든지 목사님이 강조하시는 말씀 묵상을 해보려고 하지만 정말 할 시간이 없어요. 출근하면서 오늘의 본문을 흘깃 보기나 하면 다행이에요. 점심시간에 밥을 후다닥 먹고 나서 목사님이 밴드에 올리신 묵상 글을 잠깐이라도 보는 것이 영적생활의 모두입니다. 저녁 늦게 퇴근하여 집에 오면 아이들 밥 얼른 준비해주고, 어지럽혀진 집안 청소나 빨래를 하고 나면 벌써 밤 11시가 된답니다. 너무 피곤해서 곧 나가떨어집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영적 생활이지만 우리는 과연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더 성령 안에서, 성경 안에서 살 수는 없을까? 어떻게 하는 것이 성령에 이끌리고, 말씀에 이끌리는 삶이 될 수 있을까? 우리의 환경이 그러하다고, 우리의 여건이 그러하다고 ‘24시간 예수 동행’의 삶은 단지 이상적이라고만 말할 것인가? 마귀는 우리의 상황과 상관없이 오늘도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그는 우리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성령과 성경 안에서 벗어나도록 거침없이 유혹과 공격해온다.
예수님은 우리가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당신께서 먼저 보여주셨다.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 드니라.”(마 4:11)
‘호랑이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성령 안에서, 성경 안에서 사는 삶은 무엇보다 우리의 의식이다. 하루 중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설사 그 환경이 열악하다 할지라도 우리 마음 중심을 주님께 둘 수 있다. 우리가 그 의식의 흐름을 놓지 않는다면 성령에 이끌리는 삶이 된다. 말씀 안에서 사는 삶이 되고 승리의 길을 걸을 수 있다.
나는 6년 전에 갑작스러운 안면마비, 시신경 마비가 왔을 때, 치료를 위해서 매일 대용량 스테로이드 약을 먹게 되었다. 그 때문에 매일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육신의 고통은 한계에 다다랐었다. 그러나 내 의식을 주님께 두고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님을 바라보았다. 나를 누르는 그 무거운 짐은 주님께 드렸고, 나의 마음은 주님과 연합하는 갈망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했을 때 마침내 승리가 주어졌다. 나를 무너트리려는 마귀는 떠나가고 주님의 은혜가 임했다.
오늘 밤부터 우리 교회는 <매일 밤 30분 말씀 기도회>를 다시 시작한다. 이것은 우리가 성령 안에서, 성경 안에서 시도하는 가능한 최소한, 최선의 움직이다.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려 하는 마귀를 대적하고, 주님의 천사로부터 섬김을 받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그 승리를 먼저 보여주시고 이끌어주신 것이 큰 격려와 힘이 된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