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방언에서 ‘어리광’을 ‘어린양(=애린양)’이라고 한다. 내 아들이 초등 3학년이 되어가고 있는데, 막내라서 그런지 아직도 혀 짧은 소리를 낸다. 유치원을 졸업하면서 유치원 언어를 중지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3년이 다되었는데 아직까지 혀 짧은 소리를 그칠 줄 모른다.

오늘도 아침부터 혀 짧은 소리를 하면서 따라다닌다. “언제 어린양을 그칠래, 이제 3학년이다”라고 핀잔을 주었더니, 갑자기 “나는 어린양이 아닌 어린양이다”라고 워드플레이로 달려들었다. 기가 막힌 소리다.

아들의 말을 들으면서 전라도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워드플레이구나 생각하면서 헛웃음을 지웠다. 자기도 워딩이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이제 “나는 어린양이다”라고 거실을 뛰어 다닌다. 두 아들이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신대원으로 군입대로 있는 상태이다. 두 아들이 목사가 될 것이라고 수련하고 있는데, 셋째까지 목사가 될런가?하는 조심스러움이 들었다.

나는 우연하게 목사가 된 사람이고 단칸살이에 두 아들을 낳았다. 그래도 한 아들만이라도 목사가 되기를 원했는데, 두 아들이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니 당황했다. 힘든 목회 활동을 한 형제가 돕는 것을 계획했는데 모두 목사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데 늦둥이까지 목사가 되겠다고 한다면 하는 조심스러운 걱정이다.

아직도 어린양 뛰어다니며 눈이 오면 강아지처럼 가장 기뻐한다. 눈싸움을 해줘야 하고, 눈사람을 함께 만들어야 하고, 산에 올라가 줘야 한다. 그래도 방에 있는 나를 배려해서 혼자 놀기도 한다. 유투브라는 친구하고는 너무 친하다. 한글을 알고 검색을 할 수 있으니 자기가 원하는 즐거움을 찾을 줄 안다. 너무나 친절한 친구인 유투브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너무나 흡족하게 한다. 바보친구인 텔레비전보다 너무나 영특한 친구 유투브를 만났다. 그래도 엄마의 철저한 통제로 유투브 친구와 오래 놀지는 못한다.

아들이 어린양스러운 어린양으로 언제까지 활동 할지는 알 수 없다. 어린양 가득한 아이가 좋지만, 귀한 아이들이 가득한 학교에서 귀여움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서 주의를 준다. 그랬더니 친구들과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까지 한다. 워드플레이로 자기를 어린양이라고 말하는 것이 놀랍다. 주의 품에 안긴 어린양으로 믿음으로 잘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어린양이 가득해도 주의 어린양이라면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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