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이야기 : 두 아이의 출생과 초기 삶 (눅1:57-2:52)

  • 입력 2021.02.03 08:19
  • 수정 2021.03.1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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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호 박사와 함께 가는 누가복음 산책 (5)

 

임인호 / 서울신학대학,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호서대학교대학원 신약학박사, 서울신대-호서대-중앙신학교 외래교수 역임, 동인교회 담임목사
임인호 / 서울신학대학,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호서대학교대학원 신약학박사, 서울신대-호서대-중앙신학교 외래교수 역임, 동인교회 담임목사

6. 요한의 출생 이야기

예수 사역 이전 이야기의 3번째 일화는 요한과 예수의 출생과 초기 삶에 대한 것입니다. 천사가 전해준 대로 태어난 요한과 예수에게 예언대로 되어가는 지 살펴보고 확인하는 것도 의미 있습니다. 아이의 이름이 아버지 이름을 따라 작명되지 않고 천사가 전해준 대로 ‘요한’으로 지어집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이 너그러우시다”는 의미인데, 마리아 찬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를 연상시킵니다. 예수 탄생과 관련해 언급된 하나님의 자비가 이렇게 요한의 이름 속에 있다는 점도 기억할 만 합니다.

사가랴 찬가(눅1:67-79)

요한의 출생에서 주목할 부분은 사가랴 예언입니다. 흔히 ‘사가랴 찬가(Benedictus)’라고 말하는데, 본문의 표현은 사가랴가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예언한다(προφητεύω)’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점을 생각해, ‘사가랴의 예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여겨집니다. 사가랴는 1연에서 하나님을 찬양(눅1:68-75)하고, 2연에서는 요한에 대해 예언(눅1:76-79)합니다.

1연 하나님 찬양

1연은 구원(다윗)과 맹세(아브라함)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68a절에서 사가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εὐλογητός). 사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요한의 출생이 이스라엘의 운명과 관련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 16절의 천사의 말 “요한이 많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에게 돌아오게 할 자”과 잘 연결됩니다.

1연은 교차대칭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A. 찬양의 이유(68b), B. 구원(다윗)(69-71), C. 자비(다윗)와 계약(아브라함)(72), B'맹세(아브라함)(73), A'찬양의 목적(74-75)

이 구조의 핵심인 중앙부분 C(72)를 보면,“하나님이 자비를 행했으며 계약을 기억하셨다”고 말합니다. 누가는 이렇게 성령 충만한 사가랴를 통해서 요한의 출생을 정리해 줍니다. B와 B’의 언급처럼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통해서 “다윗의 집에 구원의 뿔을 일으키며”와 “거룩한 계약을 기억” 하십니다. 그래서 사가랴는 이렇게 “자기 백성을 돌보고 해방시킨(68b)”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결과 의로 두려움 없이 예배하며 살아가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눅1:74-75).

하나님께서 다윗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요한을 통해서 이루어 갈 것을 사가랴는 예언한 것입니다. 시106:10절의 말씀 “저희를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속하셨고”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구속할 것입니다.

Zechariah writing down the name of his son (Domenico Ghirlandaio, 15th century, Tornabuoni Chapel, Italy).
Zechariah writing down the name of his son (Domenico Ghirlandaio, 15th century, Tornabuoni Chapel, Italy).

2연 요한에 대한 예언

1연의 하나님 찬양과 2연은 긴밀하게 연결되며, 요한의 출생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가진 의문 “이 아이가 어찌 될까?(66)”에 대해서 답합니다. 1연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다윗과 아브라함에게 한 구원(70)과 맹세(73)’는 2연에서는 요한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것이라 말합니다. 이렇게 요한의 사명은 다윗과 아브라함과 연결됩니다. 이것을 위해 요한은 “지극히 높은 이의 선지자”가 될 것입니다(76). 이 표현은 예수에 대한 32절의 “지극히 높은 이의 아들”이라는 표현과 대비됩니다. 요한은 “주보다 앞서서 그의 길을 예비할 것”입니다. 이 역시 가브리엘이 사가랴에게 일러준 대로입니다(17). 그는 주의 길을 준비하여서 주의 백성에게 죄 사함의 구원을 알게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한 구원과 맹세는 이렇게 요한을 통해서 죄 사함의 구원을 통해 이루어 갈 것입니다.

요한의 죄 사함에서 ‘사함’은 원어로 ‘아페시스(αφεσις)’입니다. 이 단어는 ‘아포/-로부터’와 ‘히에미/보내다’의 합성어인 ‘아피에미(ἀφίημι)’의 명사형입니다.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에게서 법률로나 실제적으로 통제를 당하는 사람이나 물건의 임의적인 석방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142회 사용되었는데 ‘용서하다’는 의미로 45회 사용됩니다. 동사로서의 단어 쓰임새는 의미가 매우 넓습니다. 하지만 명사를 보면 17회가 신약에 등장하는데, 2회(눅4;18/자유)를 제하고는 모두 ‘용서’의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는 ‘죄 용서’를 ‘빚의 탕감’이라는 비유를 통해서 탕감하지 않는 자에게 해주었던 탕감(용서)도 취소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특히 누가복음에는 다른 어떤 복음서보다 많은 경제적인 표현이 나오는데, 누가는 이런 경제적 표현을 통해서 경제적인 의미보다는 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서에 나오는 경제적인 표현들을 단순히 경제적인 것으로만 보지 말고, 영적이고, 신앙적인 의미로 이해할 때 누가음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죄 사함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전합니다. 백성들은 죄 사함으로 통해 구원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돋는 해가 위로부터 믿는 자들에게 임합니다. 돋는 해의 원어는 ‘아나톨레(ἀνατολὴ)’로, 별이나 해의 떠오름을 의미합니다. 70인역(LXX)에는 200회정도 나오는데, 대개 ‘해뜨는 쪽, 동쪽’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를 번역합니다. 하지만 이 단어가 ‘싹이 나오다’는 히브리어 ‘차마흐’를 번역할 때에는 ‘메시야’를 의미합니다(렘23:5; 슥3:8; 6:12). 메시야를 의미하는 이 아나톨레가 사가랴를 포함해 이스라엘에게 임합니다. 이스라엘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이 아나톨레, 메시야는 이스라엘의 구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을 비치기” 위해서입니다.

“어두움과 그늘에 앉은 자들”라는 표현은 시편 107:10-14절에 나옵니다. 여기서 “어두움과 그늘에 앉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의 뜻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비로 이스라엘을 속량하고, 죄 사함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은 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두움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로 이어지게 하기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가랴는 요한에게 그런 사명이 있음을 예언합니다. 요한이 죄 사함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은 이스라엘만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여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빚 갚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의 죄를 사해 주어야 합니다. 어두움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누가는 요한의 사명을 분명 이스라엘에게 일정 부분 한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한이 이방인에게 닫혀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단지 그의 사명을 그렇게 한정할 뿐입니다. 요한은 주보다 먼저 와 주의 길을 준비합니다. 이방의 빛(눅2:32)이신 주께서 하실 일, 어두움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잘 비추게 하도록 요한은 자신을 한정할 뿐입니다.

이런 요한은 자기 사명을 위해 이스라엘에 등장하기까지 광야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사역자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음을 드러낸 곳도 광야입니다. 광야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사명이 발현되도록 준비하고 익게 하는 곳입니다. 인간의 욕구를 제어하고 버리는 연습장입니다. 광야 없이 불타는 사명감으로만 사역할 때, 한 순간은 불처럼 활활 잘 타오르는 것 같지만, 쉽게 타 없어지고 맙니다. 사명과는 전혀 다른 패악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열정이 광야에서 제련되지 않는다면 탐욕이라는 녀석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칭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이름으로 불태울 수 있습니다. 광야, 요한이 드러나기 전까지 있었던 광야, 예수께서 사역에 적절한 분임을 드러내 주었던 그 광야가 믿는 이들에게도 있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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