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락(눅 2:1-52)은 예수의 출생, 할례와 정결례, 두 개 찬가, 성장을 말하는 4개의 일화가 한 단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앞의 요한의 출생 이야기와 병렬되면서, 예수가 요한보다 우월한 분임을 보여줍니다.
1. 예수의 출생(2:1-20)
예수의 출생에서 누가는 예수를 ‘다윗 자손’으로 베들레헴을 ‘다윗의 도시’로 말합니다. 삼상16장 1절을 보면 다윗은 ‘베들레헴 사람’이며,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 ‘베들레헴’은 ‘바이트’와 ‘레헴’이 결합된 단어로 '떡집'이라는 의미입니다. 미가서 5장2절을 보면, 베들레헴은 메시야와 연결되어 나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예수 출생에서 누가는 ‘강보’와 ‘구유’를 말합니다. ‘강보’와 ‘구유’는 12절의 천사가 목자에게 하는 말에서는 구주의 표시(표적)입니다. 구주임을 드러내는 표시(표적)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이’라는 말은 누가복음서 읽으면서 계속해서 생각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리고 구주의 탄생이 ‘목자’에게 전해지는 부분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자는 동물들과 함께 기거하고 정결하지 못한 생활로 인해 죄인처럼 취급됩니다. 천사가 전한 ‘목자’에 대한 토론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목자에게 구주의 탄생이 전해진다는 점은 누가복음서가 예수를 죄인과 세리의 친구로서 말하며, 가난한 자들과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 병든 자들, 여인들에 대한 각별한 배려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과도 잘 연결된다 하겠습니다.
천사는 목자에게, 예수께서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이며 주 그리스도이신 구주이시며, 그의 출생으로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될 것이고 사람들에게는 평강이 있을 것을 전합니다. 목자들은 이 소식을 마리아에게 전합니다. 마리아 들은 말씀을 잘 간직합니다. 이런 마리아의 모습은 예수의 출생을 예고하는 천사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제자의 모습과도 잘 연결됩니다.
2. 할례와 이름(2:21)
태어난 지 팔 일만에 예수는 할례를 받으며 그의 이름은 천사가 예고한 대로 예수로 불려 집니다. 유대에선 흔히 할례 시에 아이의 이름이 불려 졌습니다. 할례 시 아이의 작명에 대한 가장 이른 증거는 8세기 문헌에 나옵니다. ‘예수’는 구약의 여호수아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이며, ‘여호와는 도움이시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의미인데, 마태복음 1장 21절은 예수께서 이름의 의미대로 되어질 자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예수와 마리아의 정결례(눅2:22-39)
이 부분은 22절과 39절을 삽입으로 하여 ‘그들의 정결례(23-24)’와 ‘시몬과 안나의 노래(25-38)’로 구성됩니다. 삽입은 그들의 정결례가 모세의 법대로(22절), 주의 율법(39절)에 따라 예루살렘(22, 39)에서 되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예수의 이름이 할례 시 불려진 것처럼 예수는 모세의 법대로 주께 드려집니다. 그런데, 22절을 보면, ‘그들의 결례 날들’이라고 복수입니다. 이날은 예수 한 사람만을 위한 날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은 조금 어렵습니다.
그들의 결례 날들을 ‘아기 예수’와 ‘산모’를 위한 날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2절의 ‘정결 예식’과 24절의 재물인 “비둘기 한 쌍과 어린 반구 둘”은 산모 정결례와 연결되었음을 드러냅니다(참고/레12:7-8). 하지만, 이 구절을 민6:9-10절의 조항과 연결해서 나실인 서원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구절을 나실인 서원과 연결시키는 것은 힘듭니다. 왜냐하면 민수기에서 말하는 제물은 나실인 서원을 어기고 그 부정함을 벗기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산모 마리아의 정결례를 위한 제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22절의 뒷부분 ‘모세의 법’과 23절의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는 표현은 초태생에 대해 말하는 출13:2, 12절과 연관됩니다. 누가는 예수를 초태생으로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누가는 이렇게 예수와 마리아가 모세의 법을 잘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누가복음서는 율법을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3. 시므온 찬가(눅2:25-39)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립니다. 성령은 죽기 전에 ‘주의 그리스도’를 볼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납니다. 누가복음서는 ‘주의 그리스도’가 예수라고 자연스럽게 말합니다. 삼상24:6, 10: 26:9, 11절에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칠십역은 이 부분을 ‘주의 그리스도’로 번역합니다. 하지만 신약 어떤 곳에도 이런 표현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비슷한 형태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1번씩 나옵니다. 눅9:20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를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행2:36절에는 베드로의 설교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1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29-32)
시므온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주재(despovth")’로 부릅니다. 이 단어를 통해서 시므온은 ‘소유자’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이스라엘, 이방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백성의 주인이심을 말합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께서 하나님의 구원이며, 이방의 빛이며, 이스라엘의 영광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빛’과 ‘영광’은 잘 연결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며 이방에게는 ‘빛’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이런 일은 예수를 통해서 드러날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예수를 ‘주의 그리스도’라는 독특하면서도 구약적 맥락을 이어가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론해 봅니다.
2연 그들을 축복합니다(34-35)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합니다. ‘축복하다’는 단어는 1연의 ‘찬양하다’와 원어로는 같은 단어입니다. 시므온은 1연에서 아이에 대한 말한 내용을 듣고 놀라는 부모를 축복하며 마리아에게 2연을 말합니다. 마리아에게 한 말은 ‘보라’로 시작합니다. 이런 식의 누가의 화법은 주목할 만합니다. 앞선 본문에서 누가는 이 단어가 6회 사용합니다. 사용된 본문을 보면, 요한의 출생 예고 시 사가랴(1:20)에게, 예수 출생 예고 시 마리아(1:31,36)에게, 천사의 말을 받아들인 마리아(1:38)에게,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영접을 받을 때(1:44), 마리아 찬가(1:48)에서, 예수의 출생고지(2:10) 시 사용됩니다. 뭐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주목해야 할 내용이 있을 때 누가는 ‘보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시므온은 이스라엘 흥망성쇠에 예수가 중심에 있고, 기성 질서에 대한 반대의 근거에 예수가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 삶에서 예수께서 흥망성쇠의 기준이 되며, 반대의 근거로 자리잡고 있는 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