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호 박사와 함께 가는 누가복음 산책 (11)

 

임인호 / 서울신학대학,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호서대학교대학원 신약학박사, 서울신대-호서대-중앙신학교 외래교수 역임, 동인교회 담임목사
임인호 / 서울신학대학,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호서대학교대학원 신약학박사, 서울신대-호서대-중앙신학교 외래교수 역임, 동인교회 담임목사

3부의 두 번째 단락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예수께서 가르치신 일화입니다. 이 일화에는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쳤고, 그 가르침이 권세 있다고 사람들이 놀라는데, 정작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수께서 무엇을 가르쳤고, 어떻게 가르쳤기에 사람들이 놀라워했는지 궁금합니다. 가르침의 내용이 나와야 할 자리에 회당에서 일어나 귀신축출 일화가 소개됩니다. 그래서 질문합니다. ‘가르침’과 ‘축귀’ 사이에는 어떤 연결점이 있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누가는 교차대칭이라는 본문 구성으로 답합니다.

A 31. 도입부

B 32. 가르침에 놀랐다. 권세

C 33. 회당의 더러운 귀신들린 자

D 34. 더러운 영들린 자의 말

D’35a. 예수의 꾸짖음

C’35b. 더러운 귀신이 나감.

B’36, 놀람 권세

A’37. 마무리

3부 첫 번째 단락(4:16-44)은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고 전파한다는 포괄로 내용을 품습니다. 그 안의 내용에서 예수는 ‘말씀을 성취하는 자’이며(4:21), 귀신을 꾸짖고(4:36, 4:41), 열병을 꾸짖(4:39)는 분입니다. 즉, 귀신과 열병을 꾸짖는 예수의 모습을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모습이라고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이 단락 핵심부분 D와 D’ 부분에는, ‘더러운 귀신 들린 자의 말’과 이에 대한 ‘예수의 꾸짖음’이 나옵니다. 이들은 예수를 ‘나사렛 예수’라 부르면서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우리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 “우리를 멸망시키려 왔습니까?” 그러면서 이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안다면서 예수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말합니다. 이들의 말을 미친 자, 귀신들린 자의 말이라고 간단하게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하는 말이 무게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마귀의 영’에 들린 자가 있는 곳이 회당이고, 때는 안식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예수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은 예수에 대한 일종의 신앙고백처럼 보입니다. 예수가 누구인가?하는 것은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고 누가복음에서도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 단락 바로 앞 3개의 연속적인 일화를 통해서 누가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단락에서 귀신들린 자가 예수에 대한 말하는 고백적인 언사를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인데, 예수를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말하는 회당의 더러운 마귀의 영을 가진 자의 말(고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예수는 그를 꾸짖으며 그의 말을 제지합니다. 그리고 나오라 명령합니다.

‘꾸짖음’으로 귀신이 축출된 것입니다. ‘꾸짖다(에피티마오-ejpitimavw)’는 단어는 학자들에 의해서 구마 전문 용어로 지칭되기도 합니다. 총 11회가 누가복음에서 사용되는데, 3부에만 3번 나옵니다.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고(4:35, 41), 열병을 꾸짖습니다(4;39). 이외의 누가복음서의 경우를 보면, 바람과 물결(8:24), 베드로(9:21), 귀신(9:42), 야고보와 요한(9:55), 죄지은 형제(17:3), 제자들(18:15), 맹인(18:39),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23:40)를 꾸짖을 때 나옵니다.

히브리어로 ‘꾸짖는 사람’은 ‘이것들은 말씀이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꾸짖는 사람’이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1장 1절의 ‘모세가 말했다’를 신명기의 주석서인 시프라이 신명기는 ‘모세가 꾸짖는다’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미드라쉬 랍바는 이 구절을 잠언 28:23절,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로 해석합니다.

이렇게 ‘꾸짖다’는 단어에 대한 해석과 누가복음 본문의 내적 증거들을 종합해서 가버나움 회당에서의 귀신축출 일화가 바로 가르침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권위 있는 가르침의 내용은 무엇때문입니까?

예수는 귀신들린 자를 꾸짖고 잠잠하라 말합니다. 이런 예수의 모습이 바로 가르치는 모습입니다. 예수에게 멸망시키러 왔느냐? 우리와 어떤 상관이 있느냐?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는 귀신들린 자의 말은 모두 꾸짖음을 받아야 하고, 잠잠해야 할 말입니다. 예수께서 이들을 꾸짖은 귀신들린 자의 말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꾸짖는 것이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의 말은 이렇게 교정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멸망시키기 위해서 온 분이 아니라 구원하고자 오셨다. 예수와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잘못된 것을 꾸짖지 않고, 제대로 가르치는 것은 힘들 것입니다. 선생이 학생을 꾸짖지 못하면서 어떻게 가르칠 수 있습니까? 목사가 신자의 잘못을 꾸짖지 못한다면 어떻게 바른 신앙생활로 인도할 수 있습니까? 예수는 귀신들의 잘못을 꾸짖어 고쳐 주십니다. 선생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시몬 장모의 열병을 꾸짖어 고치자, 일어나 봉사합니다(4:38-39). 나은 모습인 봉사하는 모습인 것은 그의 병이 무엇인지를 가름할 수 있게 합니다. 그녀는 열 때문에 봉사하지 못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시몬의 장모는 열 때문에 봉사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인들도 열 때문에 봉사하지 못할 때가 있다면, 예수께서 하는 꾸지람을 듣고 회복해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리치는 귀신에게 예수는 꾸짖으며 말하지 못하게 합니다(4:40-41). 가버나움 회당의 더러운 귀신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예수는 왜 이 말을 꾸짖고 말하지 못하게 합니까?

귀신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제대로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의 말이 꾸지람을 받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여기면서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꾸지람을 듣고 제지를 당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누가복음이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를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야’의 헬라어 음역입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면서, 예수를 메시야로 여긴 것이 무엇이 문제가 있느냐? 반론을 제기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기독교와 유대교를 구분할 만큼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회당안과 밖에서 귀신들에 의해서 제기됩니다. 이것을 통해서 예수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하는 인식과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생각하면서 말로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제지되고 꾸지람 받아야 합니다. 누가는 예수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가 귀신(마귀)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죽어서는 안 됩니다. 메시야인 자가 죽으면 그것으로 메시야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 것이라고 유대인은 생각합니다. 예수를 막연하게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고백하거나,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유대교적 메시야관을 가진다면 바로 그 사람이 귀신들린 자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누구입니까? 당신이 믿는 예수는 어떤 분입니까? 우리의 신앙고백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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