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호 박사와 함께 가는 누가복음 산책 (10)

 

임인호 / 서울신학대학,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호서대학교대학원 신약학박사, 서울신대-호서대-중앙신학교 외래교수 역임, 동인교회 담임목사
임인호 / 서울신학대학,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호서대학교대학원 신약학박사, 서울신대-호서대-중앙신학교 외래교수 역임, 동인교회 담임목사

누가복음서는 다른 복음서와 다르게 서론이 있습니다. 앞선 저자들처럼 충분히 자격이 있는 자신이 데오빌로처럼 믿음 있는 자에게 알고 있는 바에 확신을 주기 위해서 이야기하고 있음을 말하면서 이를 위해서 본문을 차례대로 구성하였다고 말합니다. 2부에서는 요한과 예수의 탄생예고와 탄생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서술하면서, 요한과 엘리사벳을 통해서 예수가 어떤 분이지 드러내다가, ‘세례, 족보, 시험/유혹’ 이라는 3가지 일화를 통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9주 동안 쓴 1, 2부 내용입니다.

3부 예수의 갈릴리 사역(4:14-7:50)은 4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 누가는 예수를 회당에서 가르치고 전파하는 분으로 스케치합니다(4:14-44). 두 번째 예수 사역을 위해 필요한 제자직에 대해 기술합니다(5:1-6:16). 세 번째, 이런 제자에게 당부하는 예수의 평지 설교(눅6:17-49) 그리고 네 번째 예수가 그 분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룹니다(7:1-50),

3부 첫 번째 단락(4:14-44)은 다음과 같이 구성됩니다.

포괄(inclusio) 회당에서 가르침(4:14-15)
A. 회당에서(4:16-37)
  1) 나사렛회당 설교(4:16-30)
  2) 가버나움 회당 가르침(4:31-37)꾸짖음(35)
B. 회당 밖에서(4:38-41)
  1) 시몬의 장모 열병 치유(4:38-39)꾸짖음(39)
  2) 치유(4:40-41)-꾸짖음(41)

포괄(inclusio)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심(4:42-44)

포괄 부분은 예수가 회당에서 가르치고 회당에서 전파하였음을 말합니다. ‘가르치고 전파하는’ 동사는 모두 미완료 동사로 예수의 ‘가르치고 전파하는’ 사역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간 예수께서 성전에서 랍비들과 함께 묻기도 하고 대답하는 모습을 통해서 12살 예수는 랍비와 대등하게 아니 오히려 랍비들의 중심에 있다고 말한 앞의 서술과도 맥이 통합니다. 성전에서 선생다운 모습을 보여준 예수는 이제 회당에서 가르치며, 사람들이 붙잡고자 해도 회당으로 전파하기 위해 갑니다. 이렇게 누가는 선생으로서의 예수의 모습을 부각합니다.

예수께서 회당에서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말하는 포괄(4;16상반절, 30절)이 품은 내용은 나사렛 회당 설교(4:16-30)입니다. 말씀의 성취(16하반절-21)와 비유의 성취(23-27)를 말하는 예수에 대해 백성들은 놀라면서 부정적으로 반응(22, 28-29)합니다. 예수는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말씀을 읽고(16c-20a) 그 내용이 성취(20b-21)되었다고 가르칩니다. 예수가 읽은 말씀은 다음과 같이 교차대칭구조입니다. A 읽기 위해 섰다(16c). B 그에게 주었다(17a). C 이 책을 열어(17b). D 성경말씀(18-19). C' 이 책을 닫고(20a). B' 다시 시중드는 자에게 책을 주었다(20b). A' 앉았다(20c).

 

이 말씀은 사61:1-2절과 58:6절이 결합된 것으로 읽기 부분의 중심입니다. 번역성경으로 이 부분을 읽는 것보다 헬라어 성경으로 보는 것이 본문 파악에 유리합니다. 그래서 헬라어 본문을 직역해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18. 주의 영이 내 위에, 이를 위해 그 영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전하도록 나를 기름 부었다. 포도들에게 자유를 그리고 눈먼 이들에게 다시 봄을 전하도록, 눌린 자들을 자유로 파송하도록,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하도록 그가 나를 파송하였다. 인용된 말씀에는 2개 본동사 ‘기름 부었다’ ‘파송하였다’가 나옵니다. 두 동사의 주어와 목적어가 같습니다. 동사를 중심으로 본문을 파악하면 내용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주의 영이 기름 부어진 것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서 나를 파송합니다. 3개의 부정사 "전하도록, 파송하도록, 전하도록" 는 이 파송의 목적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가, 눈먼 자에게 다시 봄이, 눌린 자에게 자유가 없이는 주의 영의 기름부음과 파송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라 말하기 힘들 것입니다.

여기엔 한 가지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역과 기름부음’의 관계입니다. 누가복음서는 언제나 ‘기름부음’이 먼저이고 ‘사역’은 그 다음입니다. 동일저자의 사도행전에도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합니다. ‘성령과 권능’이 먼저 주어지고 증인으로서의 ‘사역’이 주어집니다. 예수도 제자를 파송할 때 제자를 불러 먼저 ‘능력과 권세’를 주고 ‘파송’합니다(9;1). 하지만 현실에서 이 문제는 선후가 바뀔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생기는 많은 교회 문제가 여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역’이 먼저인가? ‘기름부음’이 먼저인가?하는 문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교회 갱신을 생각할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는 이사야 말씀이 오늘 성취되었다고 설교합니다. 설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3개 미완료 동사-증거하다, 놀라다, 말하다-로 표현됩니다. ‘증거하다’라고 개정역이 번역한 이 단어를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은 ‘칭찬(감탄)하다’는 의미로 번역합니다. 이들은 예수의 말씀에 감탄하며 ‘은혜로운 말’이라 놀라지만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는 모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비슷한 표현이 사도행전에도 나옵니다. 스데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린 자들이 오히려 스데반을 향해 이를 갑니다(행7:54).

모순적인 행동을 보인 백성들에게 예수가 말한 비유는 이들이 자신에 대한 의구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의원아, 네 자신을 고쳐라. 우리가 들었던 가버나움을 위해 한 것들을 너는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사역)” 이 말을 놀란드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자기 자신의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주제에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냐? 이들은 예수에게 뭔가 기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없기에 한번 해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비슷한 내용이 23:35절에도 나옵니다, "저가 다른 사람을 구원하였으니 제 자신도 구원할 것이다"

예수를 ‘요셉의 아들’이라 말하는 것 역시 부정적입니다. 누가복음서에서 예수는 한번도 ‘요셉의 아들’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며, 하늘소리, 족보, 그리고 시험/유혹일화가 말한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를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부각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말씀에 놀라면서도 예수를 ‘요셉의 아들’로 보는 이들의 눈은 청맹과니입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예수는 "어떤 선지자도 자기 고향에서 은혜의 선지자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에는 선지자의 운명이 담겨 있고 예수의 운명이 담겨 있습니다(7:16,39;13:33; 24:19 행3:22-23; 7;37). 그리고 예수는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이방인 과부에게만 간 엘리야,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지만 수리아 나아만만을 깨끗하게 한 엘리사 이야기를 말합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자들이 분노해서 예수를 산 정상에서 밀치려 합니다. 이들의 모습에는 조상들의 모습이 투영됩니다(6:23; 11:47, 49-50; 13:33-34; 20:9-19 행7:52; 28:25), 그래서 복음은 이제 구약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이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기 예수를 앉고 예수를 ‘이방의 빛’이라고 한 시므온의 고백대로 예수는, 복음은 이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