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이야기 : 예수의 성장(2:40-52)

  • 입력 2021.02.18 08:54
  • 수정 2021.03.1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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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호 박사와 함께 가는 누가복음 산책 (7)

 

임인호 / 서울신학대학,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호서대학교대학원 신약학박사, 서울신대-호서대-중앙신학교 외래교수 역임, 동인교회 담임목사
임인호 / 서울신학대학,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호서대학교대학원 신약학박사, 서울신대-호서대-중앙신학교 외래교수 역임, 동인교회 담임목사

예수의 성장을 말하는 이 부분은 요한의 성장 부분과 병렬이 됩니다. 하지만 단 한절(1:80)로 요한의 성장을 말하는 것에 비해 예수의 성장부분은 분량적으로 많이 깁니다. 이 또한 요한보다 우월한 예수를 드러내는 누가의 방식입니다.

예수와 부모는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예수께서 12살 되던 때입니다. 절기의 관례대로 이들은 이렇게 했습니다. 부모들이 일을 마치고 나사렛으로 돌아가는데,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룻길을 간 다음에야 예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 와서는 예수를 봅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선생들 중에 앉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합니다. 이런 예수의 말을 들은 자들은 모두 예수의 지혜와 대답에 놀랍니다. 예수의 어머니가 말합니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그러자 예수께서 말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했습니까? 하지만 그 부모는 그의 말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와 함께 나사렛에 돌아옵니다. 예수는 부모에게 순종하였고, 그의 어머니는 예수가 한 모든 말을 마음에 간직합니다.

예수의 12살 일화는 12-13세 때 진행하는 유대인 성인식인 율법의 아들(바르 미츠바) 의식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를 통해서 유대인은 성인이 되며 율법의 아들이 됩니다. 예수의 12살 일화는 4복음서 중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누가는 왜 다른 복음서가 기록하지 않은 이 부분을 기록합니까? 이 일화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히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는데, 일화의 구성입니다. 구성은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도록 하기 위한 누가의 지혜이며 독자들에게 주는 일종의 힌트입니다.

먼저 지적할 점은 이 일화는 비슷한 말로 시작하고 마무리 됩니다. 이것을 ‘포괄, 삽입, 인클루지오(inclusio)’라고 부릅니다. 포괄(40, 52절)에는 예수의 성장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도록 성장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누가는 포괄을 통해서 예수의 12살 일화를 더 분명하게 담아냅니다. 그래서 전체 내용을 다 읽지 않아도 포괄만으로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포괄과 포괄이 품은 내용을 서로 보완하면 본문이 말하는 바를 보다 더 분명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12살 일화는 예수께서 잘 자라 강해졌고, 충분히 지혜로우며,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12살 일화(41-51)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A. 마리아, 요셉,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다(41-42). B.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머물지만 그는 주목받지 못했다(43). C. 그의 부모는 찾았고 그를 발견했다(44-46a). D. 선생들 중에 있는 예수(46b-47). C' 예수를 괴롭히고 책망하는 부모(48). B' 이해 못함에 대한 예수의 반응(49-50). A' 마리아, 요셉, 예수가 나사렛으로 돌아옴(51a).

중심부 내용을 제외하고, 각각의 내용은 서로 교차적으로 대칭을 이루면서 중심부 내용을 보조합니다. 중심부 내용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선생들과 묻기도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선생들 중에 앉아’있다는 말을 원문으로 보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위치입니다. 예수는 선생들과 함께 있는 것만이 아니라 선생들 ‘중앙’에 있습니다.

12살 예수는 선생들과 대등할 뿐 아니라 선생들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12살 예수가 이렇게 성장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이지만 그는 인간의 성장 단계를 거쳐 잘 성장합니다.

The Boy Jesus in the Temple by Grant Romney Clawson
The Boy Jesus in the Temple by Grant Romney Clawson

포괄에서 말하는 바, “예수의 지혜와 키가 자랐다”는 표현에서 ‘키’에 대해서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예수의 12살 일화에는 육체적 ‘키’에 대한 어떤 내용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의 키를 일반적으로는 신체적인 키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한 지는 의문을 제기할 만 합니다.

이를 위해서 ‘키(헬리키아/hJlikiva)’라는 단어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전적으로는 ‘나이, 수명, 키’의 의미가 있으며, 신약성경에는 8회 사용되었는데, 우리말 성경 개정역에서는 ‘키’로 4회(마6:27, 눅2:52, 12:25; 19:3), ‘장성’이라는 의미로 3번(요9:21, 23, 엡4:13) 그리고 ‘나이’로 1번(히 11:11) 번역되었습니다. 번역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단어는 육체적인 키라는 의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단어가 나오는 누가복음 구절을 생각하면, 12장 25절의 염려로는 누구도 ‘키’를 자라게 할 수 없다에서 ‘키’는 육체적 의미의 ‘키’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하지만 예수의 12살 일화와 삭개오 일화에 나오는 ‘키’는 더 생각하고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를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키가 작아서 볼 수 없습니다. 바로 이 구절 때문에 우리는 삭개오는 키가 작다고 단정합니다. 예수를 보고자 했지만 키가 작아서 보지 못했다는 표현은 뭔가 어색하며, 풀어야 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본문은 ‘키 작다’는 것과 ‘예수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연결시킵니다. 삭개오는 예수를 보기 위해서 나무 위로 올라 작은 자기 키를 키웁니다. 하지만 예수는 이런 삭개오에게 속히 내려오라고 말합니다. 키운 키를 작게 하라는 것입니다. 나무에서 내려온 삭개오에게 예수는 구원을 선언합니다. 삭개오는 키 때문에 자신이 예수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해서 키를 키우지만 예수는 그런 삭개오에게 말합니다. 키를 키운다고 해서 나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속히 내려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의 12살 일화와 삭개오 일화에 등장하는 ‘키’는 육체의 키라는 의미보다는 정신적인 키, 장성과 성숙의 의미로 해석할 때 말씀이 깊어지고 풍성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후에 삭개오 일화에서 다시 한번 분명하게 언급하겠습니다.

누가는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선생들과 묻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는 12살 예수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께서 충분히 지혜로워졌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예수의 말에 듣는 자들은 모두 예수의 지혜와 대답에 놀랍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지혜로운 예수가 한 모든 말을 마음에 둡니다. 이렇게 누가는 이 12살 일화를 통해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일을 충분히 할 정도로 지혜롭다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을 말함에 있어서 비유(은유)는 절대로 뺄 수 없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비유가 아니면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키의 은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서 우리는 깊이 있는 말씀 이해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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