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이일화목사, 사진작가, 세무서, 저술가, 국세청공무원, 서울신학대 신학과,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 @@@저서로는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믿는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 [기독교 교리 알고 보면 쉬워요], [내 마음의 기도소리], [예수님의 십자가], [Souns of Light-사진집], 전공서적 및 다수가 있다.
이일화목사, 사진작가, 세무사, 저술가, 국세청공무원,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 @@@저서로는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믿는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 [기독교 교리 알고 보면 쉬워요], [내 마음의 기도소리], [예수님의 십자가], [Souns of Light-사진집], 전공서적 및 다수가 있다.

 

"페북에 쏟아져 나오는 글"

페이스북에는 숱한 글들이 오르내린다. 바른 신앙관을 가진 글들도 많지만 우려스러운 글들도 많다. 글의 초점을 그리스도인으로 좁혀서 생각해볼 때, 정치적 이념 노선에 따라 글들이 너무도 극단적이고, 편향적이고, 편협적이다. 어쩌면 양극단의 이념 논쟁은 성경의 관점에서 너무도 멀어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선택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문제는 잘못된 방향의 글을 접한 분들이 그것을 사실인양 받아들일 때 우리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유수의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을 공부한 많은 분들의 글들을 페북에서 접한다. 박식한 지식을 담는 글에 금세 동의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때는 옳고 그름을 구별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전문적인 신학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학자들은 학문의 기준점을 정해준다. 그래서 영향력 있는 학자들의 학문적 파급력은 엄청 나다. 문제는 그 가르침이 잘못 되었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목사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볼 때가 많다. 목사는 적어도 옳고 그름의 문제를 성경에 비취어 정확하게 정의를 내려야 하며,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본질적 문제에 대한 부르심을 늘 살펴야 한다. 옳고 그름의 분별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식을 습득하는데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사진: 이일화작가
사진: 이일화작가

"공정과 정의의 문제: 삭개오로부터 문제의 답을 얻다"

현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던진 화두는 공정(공의)과 정의이다. 문제는 공정과 정의를 국정의 근본으로 삼았는데 오늘날 공정과 정의에 문제가 있다고 적지 않은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다. 공정과 정의라는 단어에 포함된 의미는 거짓이 없는 올바름, 즉 올바르다는 개념과 진실이라는 개념이 전제로 깔려져 있다.

저는 신학을 공부하고, 회계학과 교통공학을 공부하고, 경제 실물을 오랫동안 다루어 보면서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의 문제이다.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면서, 성경에 비취어볼 때, 두려운 것은 바로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는 분들이 기본적으로 거짓말과 권모와 술수와 탐욕으로 얼룩져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지점에서 절망한다. 그러면 교회는 어떤가? 일반성도들이 볼 때 교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구조와 방향이 성경의 원리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판단하기에 실망하고 교회 공동체를 떠난다고 본다.

공정과 정의의 문제를 생각해볼 때, 삭개오의 변화된 모습이 하나의 예로 제시할 수 있다. 오늘날 세무서장격인 삭개오의 변화된 이야기를 통해서 누가가 들려주고자 하는 본래의 의도는 무엇인가? 바로 구원받는 사람의 변화된 삶의 모습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강요가 아니라, 구원의 복음이 주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공정과 정의는 인간다움이 회복된 분들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움의 모습이다. 공정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때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요 빛이된다. 이것은 구원의 관점에서 볼때,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을 포괄한다.

예전에 경영학의 중심 주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단골 메뉴로 세미나의 주제가 된 적이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오늘날 지적 능력과 공부를 나름대로 많이 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묻고 싶다. 페북에 글을 남길 때 자신의 사회적 책임도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글이라고 다 글이 아니다. 자신의 글에 자신의 이름을 걸어야 한다.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 독자들도 옥석을 가려서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진: 이일화작가
사진: 이일화작가

"이분법적 사고의 문제점"

페북에서 종종 보는 글 중에, 종교지도자인 목사들이 불평등한 사회를 지적할 때, 이분법적 사고의 글을 접하게 된다. 기업가가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단언적으로 말하는 분들이 실물 경제 흐름에서 살얼음판 위에 갇혀 있는 기업가들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을까?

최태원 신임 서울상공회의소 회장이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들과 만나 코로나19 이후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최태원 회장은 "상공회의소는 회원사의 권익 대변은 물론이고 사회발전에 기여해야 할 책무도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상당히 어려운 시기이고 원래대로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수도권보다는 지방에서 매출이 줄고 경기도 더 안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새로운 시대를 맞아 국민들이 상의에 갖는 기대감이 있을 것인데, 이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자 숙제"라고 밝혔다. 또한 기업이 양극화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을 나누었다.

사회 경제적 정의를 부르짖는 집권자들에 의해 막대한 통화량이 시중에 풀린 지금, 그 돈들이 흐를 곳은 부동산밖에 없다.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막대한 보상금으로 풀린 돈은 또 부동산 값을 부추긴다. 그것도 사람들이 밀집된 지역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 경제적 현상속에서 경제정책의 실패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끊임없는 삶의 질문과 고통을 안길 것이다.

 

"독자들의 판단 능력과 글의 공적 책임"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시대를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자신의 안경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경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정답이 되지 않는다. 먼저 그리스도인 독자들은 페북의 글을 읽을 때 좌우를 통찰할 수 있는 분별력과 옥석을 가리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모든 글이 다 맞는 것은 아니다. 또한 글을 쓰는 분들은 너무 편협적이고, 단편적이고, 편향적인 사고로 점철된 글들을 사실인양 세상에 내놓고 대중들을 호도해서도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이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을 요구하듯이 글쓴이들은 자신의 글에 대한 공적 책임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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