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특별한 기도의 날이다. 나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리라

이일화_1963년 대한민국 출생으로 목사, 저술가, 세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는 대한민국 정부의 국세청(National Tax Office) 공무원으로 일한 바 있으며, 신학과 경제, 사진 등 열다섯 권 가량의 저술이 있다. 
이일화_1963년 대한민국 출생으로 목사, 저술가, 세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는 대한민국 정부의 국세청(National Tax Office) 공무원으로 일한 바 있으며, 신학과 경제, 사진 등 열다섯 권 가량의 저술이 있다. 

 

다시 맞는 크리스마스

오늘은 맘껏 독서하리!
그러나 내일은 예배 후 남은 시간을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리라.

내 인생의 1987년 12월 25일은 잊을 수 없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1987년크리스마스날 예배후 나 홀로 기도의 지리에 나아갔다. 다급함과 지루함과의 긴 줄다리를 하는 기다림의 시간이 반복되었다. 그런 답답함의 시간속에 주님은 하늘의 빛을 주셨다. 바로 그날 1987년 12월 25일 기다림이 하나님의 응답으로 바뀌었던 카이로스의 시간이었다.

그 날을 나는 일평생 잊지 못한다. 매년 크리스마스 예배 후에는 그 남은 시간을 기도의 자리에 나아간다. 그 때를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나는 늘 외치는 반복적인 언어가 있다.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자주 하는 언어이다.

"기도해 보면 안다. 소리내어 기도해 보면 안다. 이 기도가 주님께 드리는 기도인지를, 그리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기도인지를."

간절한 기도는 생전 처음 보는 생면부지의 사람을 통해서라도 주님께서는 간절함에 응답하시며 말씀하신다.

바로 1987년 오늘이 그랬다.

바로 이것이 신앙의 신비이다. 또 그래서 알았다. 숨어 있는 성령의 은사를 받으신 분들이 의외로 많구나! 각양의 은사,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대로. 나에게는 신비하게도 다급한 꼭 기도의 자리에 나아갈 때면 이런 분들이 계셨다. 그 기도의 응답은 주님께서 예비하신 길과 때가 찼을 때만이 주어 지는 길이었다.

 

12.31 서울로 발령 통지를 받다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주님께서 응답하심을 본다. 그 응답의 예견도 신비이지만, 그 결과도 신비이다. 대학을 가겠다고, 영주에서 서울로 그렇게 오려고 할 때, 지금까지 막혔던 길이 풀리며, 12월 31일 신년을 기점으로 서울로 발령 통지를 받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신학대학을 가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내가 입학하고 난 이듬 해, 내가 입학한 야간 정규신학대학 클래스 과정이 없어지고 주간으로 편입되었다. 야간에서 주간으로 시간표가 바뀌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시간표의 변경이 아니라 인생의 판이 뒤집혀지는 계기가 되었다.

1987년 그때를 늘 생각한다.

생전 처음 보는 나에게, 주님께서 더 좋은 길을 예비해 두셨는데 왜 그리 걱정하느냐고, 주님의 뜻을 전하던 일행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영주제일교회를 다니신다던 키가 크신 그분과 키가 작은 세 분의 여성 일행들. 소스라치게 놀란 건, 생면부지의 처음보는 나를 보고, 내가 그리 좋아하던 여성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의 친구가 아니냐고 할 때. 그리고 그 고모라며,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기도 응답의 신비라는 이야기 외에 무엇으로 설명할까?

내가 좋아했던 젊은날의 여성은 도도함과 품격과 지극히 이성적인 귀부인의 분위기를 가졌던 친구다. 그도 나처럼 늙어가겠지. 아직도 귀티가 그리 나겠지. 결혼식을 본 이후 이제는 그 친구를 본적이 없다. 나보다 한 살 아래이니 곱게도 늙었으리라. 서울 장로님 아들과 결혼했다는 소식, 공교롭게도 교회의 이름이 내가 어릴 적 다니던 교회의 이름과 같다. 난 지금 그 교회와 두어 정거장 가까운 교회에 와 있다. 주의 길을 가던 그 해, 그 여동생의 연락으로 토요일 결혼식을 마지막 보고, 그 후 아름다운 인생을 살리라 믿으며, 가끔 회심에 잠긴다. 서울로 떠나고 싶어 했던 이유도 그 친구 곁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한 가닥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주님의 인도하심은 신비이다. 그 이상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도 보면, 주님의 계획속에 들어있는 하나의 과정이리라.

내년이 만 육십이 되는 해이다. 국민(초등)학교 1학년 때 흥역으로 휴학하고, 다시 학교를 다니는 바람에 늦었음에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나이가 한 살 작다. 지나보면 은혜이다. 모든 것이 은혜. 육십을 앞 둔 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마음에 홍역을 치룬다. 즐거움 보다는 1987년 그 해가 유독 생각난다. 기나긴 방황의 끝에 다시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하는 나는 기도의 자리가 필요하다.

 

 

은퇴 후 3년_결단의 시간_12.25

모든 것을 정리한 후, 사도 바울처럼 다시 믿음을 살핀지 꼭 만 3년, 그리고 인생 육십부터라는 그 해를 앞두고, 주님만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긴 시간을 주님 앞에 구해야 한다. 바로 내일. 내가 주님 앞에 내 길을 물어야 할 시간이다. 

크리스마스 날이 되면, 즐거움보다도 결의에 차야 한다. 바로 오늘! 그 이브 날이다. 꼼짝 않고, 성경말씀과 신앙서적에 심취해야 할 시간이다. 낼은 반드시 주님께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그 크신 계획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난 크리스마스 날이면, 사람들이 찾는 그 즐거움 대신 교회의 마룻바닥을 찾아 해가 가기 전에 주님의 길을 열어 주시기를 주님께 구해야 한다. 응답은 주님께 있으니까?

1987년 전 해, 신학을 공부하기 전, 그때 크리스마스 무렵도 노회 청년 소식지에도 그렇게 썼다. 다시 맞는 크리스마스, 예레미야처럼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께 눈물과 기도로 탄원을 하는 것이 옳다고. 

매 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내게는 즐거움 대신 비장함이 있다. 주님을 만나야 한다는 다급한 심정이 있기 때문이다. 내 년 육십을 된다. 내 인생도 풀어가야 할 절박함도 있구,  연초 대량의 전도지 인쇄를 계획하고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주님, 제 마음 아시지요. 주님! 제 갈 길을 인도하소서. 주님! 제가 가야할 길로 가게 하소서. 아멘.

1987년 그 시절 그때 보던 성경책. 늘 내 마음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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