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춘택 선교사 사역 소개
(1)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에서 7년을 목회하고, 1987년에 미국 유학중에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2)OMS 소속 선교사로 K국에 1992년도에 도착해서 19933월에 중앙아시아 최초의 신학교(명칭 변경, 자르선교센터, 자르이라는 의미)를 설립해서 10년간 사역했다.
(3)2002년도에 중국 신장성 우루무치, 재경대학에서 영문과 교수로 일하기 시작해서 중국의 3개 대학에서 14년간 영문과 교수로 사역했다.
(4)2016년도 가을학기에 다시 k국으로 선교지를 옮겨, k국 대학에서 영문과 교수로 일하면서 동시에 선교센터를 중심으로 기도
와 컨퍼런스 사역을 지휘하고 있다.

 공춘택 선교사(좌, K국선교사, 자륵선교센터 이사장,), 최원영목사(우, 본헤럴드대표, 본푸른교회담임)
 공춘택 선교사(좌, K국선교사, 자륵선교센터 이사장,), 최원영목사(우, 본헤럴드대표, 본푸른교회담임)

공 선교사를 구리 모 카페에서 만나 차를 마시며 선교지 상황을 나누게 되었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과의 만남은 늘 기쁨이 있고, 사명의 길이 주는 깊은 여운이 있기에 행복하다.

공 선교사는 중국 3개 대학에서 14년간 영문과 교수로 있으면서 제자 훈련과 교회 개척 사역을 하며 제법 많은 열매를 맺었다. 그러나 20168월에 선교지를 다시 카작으로 옮기면서 영어 교수 사역은 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도사역 만큼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K국 대학생들은 이미 무슬림이기 때문에 기독교 하나님은 무조건 거부하므로 전도의 열매가 없었다고 한다. 영어 교수 사역은 청년 대학생들을 전도하기 위한 방법인데, 전도의 열매가 없으면서 내적인 갈등도 겪었고, 기도를 해도 상황에 변화가 없기에 이 사역을 계속해야 되는가? 의문도 들었다고 한다.

공 선교사는 얼굴과 눈이 반짝이면서 기쁨에 가득찬 모습으로 말을 이어갔다. "이런 내적 갈등이 나를 괴롭혔을뿐아니라 선교센터 10명의 직원 인건비와 운영비를 책임져야하는 힘든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선교 사역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코로나의 위기가 10년 동안 꽁꽁 막혔던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선교센터 주변에 두 마을이 있는데 약 2만 명이 거주하고 있고, 90% 이상이 무슬림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카작도 어려움으로 인해 실직자들과 밥을 굶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고" 한다

"아딜" 온 가족이 주님을 영접함- 카작에 불고 있는 전도의 바람
"아딜" 온 가족이 주님을 영접함- 카작에 불고 있는 전도의 바람

공 선교사는 선교센터 직원들과 알마타에 거주하는 선교사님들에게 굶고 있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선교센터에서 빵을 구워 나눠줍시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사역입니다. 빵과 구호 식량을 나누며 얻는 모든 영적 열매는 나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의 것입니다.” 기도 요청을 했다. 그런데 한인 선교사 10가정이 매달 한가정당 10만원씩 모아 100만원을 빵 나눔 사역에 동참하면서 10년 동안 막혀 있던 전도의 문이 열렸다.

202010월 넷 째 주부터 일주일에 두 번 구제 사역을 시작했다. 3개월 간 빵과 구호식량 그리고 생필품을 나누기 시작하자 무슬림들이 마음을 열고, 20212월 첫째 주부터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매달 10가정 정도가 예수를 믿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공 선교사는 영적 대 부흥은 우리 직원들이 어느날 갑자가 영적 거장이 되어 이런 전도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공 선교사 후임으로 지난 10년간 사역했던,크리스 캐플러(OMS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영어 교수 사역을 한 후,  신학교 교장으로 선교 사역)선교사로부터 시작해 수많은 기도의 용사들이 선교 센터에 모여 무슬림 마을들을 위해 올린 중보기도가 팬데믹을 계기로 부흥이 일어난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공 선교사가 말하기를 우리 선교센터에서 시작된 중보기도의 사역은 아이러하게도 크리스 캐플러 선교사 가정의 아픔에서 시작되었다. 2004년도 내 뒤를 이어 신학교를 맡아 운영 하던 중 2008년에 정부에 의해 신학교가 강제 폐쇄 되었다. 신학교 사역이 없어지고 나서는 많은 방황과 기도 후에 중앙아시아 기도원이라는 간판으로 바꾸어 달았다. 그러나 간판을 기도원으로 바꾸어 단다고 갑자기 기도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중보기도를 시작한 부부: 크리스 캐플러 선교사

사역 자체가 멈추어 버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춥고 텅 빈 커다란 건물 속에서 크리스 캐플러 선교사 부부는 매일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주님을 부르며 중보기도를 계속했다. 한 달도 두 달도 아닌 1년 이상을 부부가 두 손을 올려 간절히 기도했다. 1년 정도 지나자 기도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현지 직원들이 기도에 동참했고, 한 참 후에는 한인 선교사들이 교파를 초월해 중보기도에 동참했다. 기도가 잘 된다는 소문이 나자 컨퍼런스 장소로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렴한 사용료를 부과하며 외부의 도움 없이 가까스로 운영되는 선교 센터로 발전했다고 한다.

크리스 캐플러 선교사는 카작에서의 성공적인 사역을 인정받아 OMS 아프리카 선교 책임자로 발탁되었고, 지금은 미국에서 교회 사역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공 선교사는 낡은 선교센터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컨퍼런스 장소로 활용하던 중 팬데믹 상황으로 운영에 대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매달 10명의 인건비를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빵 사역을 요청했을 때, 직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공 선교사는 월급은 내가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K국 사람들은 가족 유대가 강해 가족의 전통 신앙인 이슬람교를 바꾸기가 어렵지만 일단 신앙을 바꿔야 한다면 온 가족이 같이 바꾼다. 최근에 주님을 영접한 굴누즈는 나는 하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내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내 영혼에 빛이 빛나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방황했었지만 앞으로는 주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내 영혼을 보호해 주실 줄 믿습니다.”라는 영상 편지를 남겼다.

예전에는 복음을 전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주민들이었다. 그런 그들 중 정말 많은 사람이 복음에 대해 폭발적 반응을 보인다. 이렇게 온 마을이 폭발적 수준으로 응답하는 모습을 실제 상황에서 경험 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이것은 기도의 결과로 되어 진 성령님의 사건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공 선교사는 강조한다.

복음의 폭발적인 반응과 다르게 박해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금년 3월 초순부터 서서히 박해가 시작되었다.  지역에서 정부 청사를 중심으로 소문이 퍼졌다. “저 신학교에서 (우리 선교센터를 아직도 신학교라고 부른다) 온 마을을 개종시키기 위해 빵과 식량을 나누어 준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빵과 구호품을 거부하는 주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선교센터 반대쪽에 있는 동네에서는 이미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만 빵과 식량을 나누어주고 있고, 선교센터가 위치한 동네에서는 집중적인 방문과 구호, 전도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새가족: 굴누루와 3자녀 
새가족: 굴누루와 3자녀 

-박해 가운데서도 믿은 굴누루 자매 간증

제 이름은 굴누루입니다. 세 아이의 엄마이며 막내에게는 젖을 먹이고 있습니다. 저는 직업이 간호사인데 무급 육아 휴직 상태입니다. 남편도 팬데믹으로 일을 찾을 수 없어 현재 무직 상태입니다. 우리는 임대 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2월에 자원봉사자인 알미라와 술탄의 도움으로 자녀들과 함께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현재는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남편은 자주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선교 센터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성경을 내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2개월간 두 자녀와 함께, 특히 딸과 함께, 계속해서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내 이웃들도 저와 함께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친척과 친지들로 부터의 핍박 때문에 주님을 주로 고백하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제 친척들도 저에게 강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저는 누구를 믿 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주님이 내 마음 속에 살아 계십니다. 제가 믿기는 내 삶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남편을 향한 마음도 점점 열려가고 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께 우리에게 음식을 제공할 수 있도록 헌금해 주신 것을 감사하고 싶습니다. 이 일을 가능하게 하신 선교 센터의 행정력에도 감사를 드리고 자원봉사자인 알미라와 술탄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분들은 끊임없이 우리 가족을 방문해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도와주고 있습니다. 선한 사업으로 그리고 38일에 풍성한 잔치에도 초대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공 선교사는 한쪽에서는 박해가 있지만 팬데믹의 퍼져나가는 속도와 비례해 복음도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고 한다.

 

새가족 : 아이굴과 두 자녀
새가족 : 아이굴과 두 자녀

-새가족 : 두 아이의 엄마 아이굴 편지

"내 이름은 아이굴입니다. 두 아이를 가졌고요. 남편은 집에 밤 늦게 돌아오는데 아예 들어오지 않는 날도 많습니다. 매일 술을 마시고 여자들과 시간을 보내며 마약을 하지만 우리 가족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7 일에서 10일을 일하면서도 집에 돈을 가져오는 일은 없습니다. 점점 포악해지고 있고 가끔 구타도 합니다. 지난 겨울에 해산을 앞두고 있었는데 남편은 일주일간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당시에 집에 난방이 안되었습니다. 의처증이 심하기 때문에 내가 밖에 나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문제 때문에 지쳐 있는데 성경공부에도 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자주 싸우면서 차리리 우리를 떠나라고 해도 그러지도 않습니다. 

나는 일기를 씁니다. 알미라와 술탄이 나를 찾아오기 전날, 나는 분노하고 있었고 내 맘속에 있는 것을 적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내 하소연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멀리 있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자녀가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녀를 원치 않는데도 계속 자녀가 나오는 가정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런 대화를 하고 난 다음날 알미라와 술탄이 찾아왔고 나는 며칠 후에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이제 내 마음 속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현지인 디렉터  보고서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구호식량을 나누는 일에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동안은 분배하는 일에 약간의 잘못이 있었다 해도 올해 들어서는 구호 식량의 한 보따리도 잘못 배달된 부분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로 많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 편입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을 섬기는 일이 우리의 목표가 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회개한 사람들을 위해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물품을 모으고 어른들을 위한 잔치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우리 신학교 졸업생들을 연결하면서 필요한 물품이나 재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내일은 새신자들을 방문해 성경을 전달하고 성경공부를 인도할 예정입니다. 새신자들을 한군데로 모아 (주로 여성들) 대화를 하는데 이 일은 기독교 상담가인 쿨미에스가 인도합니다. 빵은 일주일에 두 번씩 구워 전달하는데 빵 나누기는 중단 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빵을 나누기 때문에 우리가 가정 가정을 방문해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이들을 회개로 인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술탄과 알미라는 어떻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지에 대해 훈련을 받았습니다. 보내주신 헌금 이 이렇게 귀하게 쓰이고 있음을 기쁘게 보고합니다." 

 

공 선교사로부터 선교의 열매들을 들으면서 복음은 기쁨 그 자체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살아가야할 이유를 찾기에도 충분했다. 

또한 복음이 부흥하는 곳에는 항상 기도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내려놓음을 기쁨으로 감당하며 봉사했던 분들의 헌신이 있는 곳에는 늘 감동적인 이야기가 흘러간다. 팬데믹으로 맘몬의 사로잡혀 눌려 사명도 복음도 다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오히려 위기가 곧 하나님이 일하시는 기회라는 것을 다시 느끼기에 충분했다.

 

-전도의 열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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