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바라보면 원망, 주를 바라보면 은혜

최병희목사, 전주아름다운교회담임,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최병희목사, 전주아름다운교회담임,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이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종종 뉴욕 에비뉴 교회에 출석하였다. 조셉 목사는 예배를 드리면서 링컨의 성경책을 보았다. 낡은 성경 한 곳에 여러 번 짚어진 손자국과 눈물 자국이 보였다. 시편 377절의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는 구절이었다. 링컨이 이 말씀을 수없이 읽고 명상한 흔적이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 베푸실 때까지, 은혜 베푸심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하다.

기다림의 뜻을 알고 이해하면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 약속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계획 속에 현재의 내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때 마음이 상하지 않으며 약속의 성취를 보게 된다. 지금 한국교회는 인구 20%에 근접하는 900만 교인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교회에 대한 신뢰도와 호감도는 크게 떨어져 있다. 한국교회는 믿음의 선배들이 민족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선배들처럼 사회를 향한 교회의 책임과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40년 광야 생활로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에 가나안 땅이 보였지만 만만한 여정이 아니었다. 그들은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의 샘물, 옷과 신발이 찢어지지 않는 기적을 체험했다. 하지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불평들을 쏟아 놓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불뱀에 물려 죽는 심판을 내렸다. 그렇지만 회개하는 백성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린 놋뱀을 보게 함으로 살아나게 하셨다. 하나님은 놋뱀을 쳐다보면 살아나는 길을 열어 주셨다. 놋뱀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믿고 바라보았을 때 능력이 임하였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우리도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마음이 상하면 안목이 좁아진다. 출애굽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이 상하여 가나안 땅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현실만 바라보면 마음이 상하게 된다. 그러므로 고난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을 보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 특히 사순절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199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대통령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당시 인구의 10%도 채 되지 않는 백인들이 80%가 넘는 흑인들을 지배하며 인종차별을 하였다. 그리하여 만델라는 흑인 인권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44세에 반역죄로 구속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 갇힌 그는 백인들에 대한 증오심이 가득했다. 더구나 결핵까지 걸려 건강이 악화되었다. 함께 감옥에 갇힌 사람들 가운데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만델라는 하나님께 따지며 물었다. "하나님,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백인들을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만델라는 화가 났다. "아니, 어떻게 그들을 용서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음성에 항복하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백인들을 용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응어리졌던 원한과 증오가 사라졌다. 그렇게 용서하면서 만델라는 평안해지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동터오는 태양을 바라보며 감사했다. 저녁에는 감옥 창살을 통해 비쳐오는 별빛을 보고 감사했다. 다른 죄수들은 일하러 끌려가면서 원망과 불평을 내뱉었다. 하지만, 만델라는 감옥보다 더 넓은 자연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며 일터로 나갔다. 그리고 파란 하늘과 새소리를 듣는 기쁨으로 일했다.

교도관의 허락을 받아 자기만의 적은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가꾸며 생명의 신비를 느끼고 감사했다. 그러자 몸과 마음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그렇게 감옥에서 감사하며 살다가 19902월에 석방되었다. 27년간 감옥에 있었지만 건강한 모습으로 나올 수 있었다. 출옥한 만델라는 "나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하여 세계를 감동시켰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백인이나 누구라도 원망하거나 복수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실에 닥친 문제로 소망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하였다. 원망은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 나오는 습관적인 불평이다. 불평하는 사람은 언제나 없는 것만 생각하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재 있는 만나를 감사한 것이 아니라 없는 것으로 불평하였다. 현재 있는 메추라기를 감사한 것이 아니라 없는 것으로 불평하였다. 불평은 감사를 잡아먹는다. 원망은 감사를 질식시킨다. 마귀는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하게 만든다. 공동체 속에서 불평과 원망을 계속하게 하여 문제를 크게 만든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면 원망이 떠나고 살아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장대에 달린 놋뱀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을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나 믿지 않고 보지 않는다면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보지 않은 백성들처럼 죽을 수밖에 없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살리라.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살리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지식을 내려놓고 믿음으로 놋뱀을 보아야 살아난다. 불신은 죽음이고 확신은 생명이다. 믿는 만큼 순종하고, 믿는 만큼 응답받고, 믿는 만큼 축복을 받는다. 예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생명의 역사가 임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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