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너무 어렵게 살지 마세요』라는 책에서 던져주는 메시지가 참 좋았다. 우리 시대를 이끌어 가는 정신적 멘토들이 던져주는 삶의 지혜를 단문으로 던져주고 있다.
“오늘이 나에겐 가장 큰 보물입니다.
사랑에는 마침표가 없다.
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
오늘 주어진 생의 의미를 만끽하면 맛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공은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좋은 친구를 갖기 원한다면 먼저 좋은 친구가 되세요.
행복하려면 남편과 아내가 잘 놀아야 합니다.
당장 나만의 산티아고로 떠나세요. 지금 간절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표정보다는 불행이라는 언어가 익숙한 삶을 살고 있기에 행복하려면 이렇게 살면 좋겠다고 멘토들이 던져준 메시지이다. 메시지에 큰 공감이 간다.
물건적인 질 VS 정신적인 질
코로나가 우리 사회를 덮고 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3만5천불 시대의 문을 열었다고 대통령은 자랑했다. 그런데 국민들은 행복보다는 불행하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물건적인 질은 좋아졌지만, 정신적인 공허감과 마음의 불편함을 억누르고 살고 있는 분들이 많다. 행복하려고 공부를 했고, 행복하려고 일터에서 삶을 던졌는데 결론은 불행하다는 것이다.
얼굴의 생김새가 다르듯이 행복이란 잣대도 그 기준과 크기와 깊이가 다를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떨 때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았다. 누군가의 책에서 보았던 중심 테마가 늘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내 인생에 대한 예의를 갖춰봤니”
“한 번쯤 미쳐봤니”
“죽을 만큼 불태워봤니” 라는 말이다.
원색적인 표현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에 전존재를 던질 때 행복이라는 기쁨을 얻는다. "그럼 지금 너는 행복하니" 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는 행복하다. 무엇을 가졌기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삶을 지탱해줄 가장 큰 "구원의 기쁨"과 "비전을 향한 사명의 길"에서 서성거리고 있기에 하루하루가 살만하다고 느낀다.
구원, 행복의 최상의 상태
신학적인 용어인 구원을 무엇이라 정의를 내려야할까?구원을 행복의 최고의 상태로 표현하면 좋을듯싶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종교적인 생활을 한다. 왜, 돈도 되지 않는 영적인 일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까? 그 이유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바로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행복이란 진정한 선물은 물질에 있지 않고 '영원한 의미'를 담은 것안에 있다. 영원한 의미가 곧 보물이며 그 보물이 행복이다.
행복은 구원의 최상의 상태이다. 영혼과 마음이 맑은 상태가 될 때 행복하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의 은혜로 충만한 상태가 된다.
구원받으면 행복과 기쁨과 감사가 회복된다. 행복과 불행의 기준점은 구원의 은혜로 충만한가? 아니면 결핍되어 있는가?의 문제이다.
사도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제시했다. 이렇게 우리가 산다면 우리의 영혼의 상태가 어떨까? 행복과 불행은 환경이나 조건에 지배받지 않는다. 우리의 영혼과 마음이 구원의 은혜로 충만하면, 우리는 스스로 행복이란 선물을 얻는다. 행복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마음이 불편하고, 마음에 죄의 때가 껴있고, 성공의 관점이 잘못될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고 여긴다.
"자신도 모르게 너무 괴물로 변하지는 않았는지..
지나 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라.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점검해 보라. 이 말은 기독교적인 용어로 ‘회개’하라는 메시지이다. 회개란 돌아가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너무 괴물로 변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괴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십자가의 거울로 바라보면 상처 난 못난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회개하면 구원의 최상의 상태로 돌아간다. 그때 우리는 행복이란 선물을 다시 찾는다. 마음이 행복하면 견딜 수 있고, 이겨낼 수 있고, 고난의 길을 거뜬히 통과할 수 있다.
자영업자가 성공하기 참 힘든 나라이다. 자영업자들과 벤쳐 창업가들을 만나면 늘 걱정이 앞선다. 대부분 재정적인 어려움에 빠져 있다. 또한 끝나지 않는 미로에 갇혀 있다. 이들에게 행복과 불행의 가치는 무엇인가?
많은 분들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을 한다. 그러나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창업가는 데스밸리를 통과해야 한다. 그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해서 성공이란 자리에 오르는 분들은 극히 적다. 데스벨리에서는 잘 견뎌야 한다. 현실과 성공 사이에는 실패할 확률이 100가지가 넘는다. 창업가가 생존하기에는 아주 힘든 구조이다. 모든 재정적인 구조를 창업가 자신이 짐을 져야 한다. 그리고 실패한 사람들이 90% 이상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창업가들에게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 혁신적인 창업가가 없이는 발전은 없기 때문이다. 비록 실패했다할지라도 꿈을 위해 자신의 삶의 시간들을 미친 듯이 불태웠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을 선물 받은 것이다.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은 사람은 실패를 한 것도 없지만 삶을 게으르게 살았기에 그 자체가 불행한 인간이 된다.
구원의 최고봉은 행복이다. 행복은 거룩한 일에 도전할 때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 선물은 세상적인 가치의 크기와는 상관없다. 도전속에 담겨진 행복은 맛 본 자만이 누리는 천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