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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최원영 칼럼] 흩어진 나그네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그리스도인의 사명은 흩어진 나그네들에 대한 돌봄임을 잊지말라

 

◐베드로서 편지 대상

베드로는 베드로 서신의 대상을 소아시아에 “흩어진 나그네”(벧전1:1)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두 단어가 주는 의미가 크다. “흩어진”과 “나그네‘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성경을 관통하는 하나의 줄기이다.

성경학자들은 ‘나그네’라는 말을 상징적이고 영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천성을 향해 가는 그리스도인을 ‘나그네’라고 부른다. 그러나, 베드로가 편지를 썼을 때 단지 영적인 의미로만 쓴 것은 아니다. 독자들이 처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일차적인 목적일 것이다. 소아시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이 처한 환경이 고통스러웠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평안과 위로와 권면을 주기 위해서 쓴 것이다.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들을 위로하고 권면하기 위해 서신을 썼다. 첫째는 고난 받는 불신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 것인가? 그것은 “선한 양심”과 “선한 행실”이다. 선한 양심과 선한 행실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이다. 흩어진 나그네들의 삶이란 바로 그의 삶의 자리에서 이웃과 소통하는 것이다. 바로 선한 양심과 선한 행실이 그리스도인의 무기라고 했다.

둘째로,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자부심 을 심어주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 불렀다. 너희를 어두운 곳에서 불러내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기 위해서 부르셨다고 한다.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긍휼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위로하고 있다. 흩어진 나그네들을 향한 베드로의 위로와 권면이 참으로 설레임을 주고 있다.

◐성경강조 : 흩어진 나그네

성경은 흩어진 나그네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베드로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흩어진 나그네”로 규정하고 있다. 성경은 나그네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성경의 인물들은 흩어졌고, 그리고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이스라엘 백성도, 느헤미야도 한결같이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 흩어진 나그네로 살면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그 차이가 나그네의 삶을 가르는 기준점이다. 흩어진 나그네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 없이 살면 그 삶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흩어진 나그네로 살면서 늘 주님과 동행하면 그 삶은 복의 통로이며, 사명의 장인 것이다.

요셉은 흩어진 나그네로서 험악한 삶을 살아냈다. 요셉은 험악한 삶을 살았지만, 나그네로서 신앙의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요셉은 17세에 인신매매 당했고, 흩어진 나그네로서 삶이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애굽에서의 삶은 만만하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언어와 풍습과 문화를 배워야 했다.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아무리 요셉이 총명하여 이집트어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애굽땅에서는 그는 영원한 이방인이요, 타인이요, 나그네이다. 요셉은 신분상 노예이다. 요셉이 아무리 이집트에서 적응하려고해도 그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장벽이 있다. 그는 종인 것이다. 비록 그가 보디발의 눈에 들어 가정 총무가 되었다하더라도 그의 신분은 종이며, 낫선 나그네이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일개 성적노리개로 여겼다.

요셉의 삶에서 우리가 찾아야 하는 중요한 포인트는 요셉이 무조건 애굽에 적응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는 자기 정체성을 지켰다. 보디발이 요셉을 향해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39:3). 보디발은 요셉의 말과 행동을 살펴보았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았다. 요셉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전수받은 문화적 정체성, 신앙적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애썼음이 분명하다.

요셉은 바로왕앞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41:16).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창41:25).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이다”(창41:32).

요셉은 나그네로 애굽에서 살면서 애굽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려고 힘썼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잊지 않았다.

요셉은 형들에게 세 번이나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의 구원을 위해 자기를 먼저 애굽에 파송하였음을 말했다. 형들이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보냈다고 해석했다. 표면적으로는 애굽의 노예로 팔려왔지만, 영적인 깊은 의미는 팔려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다. 요셉은 사명으로 해석했다. 흩어진 나그네들이 귀담아 들어야한다. 우리의 삶의 자리는 팔려온 것이 아니라, 떠밀려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그 현장으로 파송한 것이다. 삶의 자리는 곧 사명의 자리인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소아시아 성도들을 향해 “흩어진 나그네”라고 불렀다. 우리는 하나님이 흩어서 보낸 나그네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하면 나그네의 삶은 서럽고 고달프고 자기 연민에 빠진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보냈다는 사명을 깨닫는다면, 나그네의 삶은 축복의 길인 것이다.

◐성경은 흩어짐의 역사

성경은 흩어짐의 역사이다. 바벨탑의 무너짐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지만, 그 사건으로 동일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여 전 세계로 흩어졌다. 그 결과 온 지구촌에 퍼져 문명을 이루며 살았다.

초대교회가 핍박이 찾아오자,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흩어졌다. 그 결과 복음이 예루살렘을 뛰어넘어 사방으로 전해지는 통로가 된 것이다 흩어짐은 심판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이다.

그러면 그 기준점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붙들고 사명의 장으로 살아내면 그 흩어짐이 축복의 통로가된다. 그러나 왜 나를 힘든 곳으로 흩어서 이런 고난을 받게 했는가? 원망과 좌절과 포기로 일관하면 그 인생은 쇠락하고 타락 마무리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흩으신 것은 나에게 주신 사명이 있고, 뜻이 있다고, 반응하고 깨닫고 주님의 힘으로 살아간다면 그를 통해서 놀라운 주님의 역사가 있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변화산기도원협력원장, (사)새길과 새일 부이사장, (사)글로벌비전 법인이사, 본국제신학교학장. 저서: 제자세우기40일영적순례(1권,2권), 주기도문이해, 사도신경, 충성된일꾼되어가기, 팔복 등

나는 2000년 3월에 구리시 변두리 지하실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하나님 왜 하필이면 구리입니까? 왜 하필이면 지하실입니까? 이렇게 항변 한 적이 없었다. 나보다 본푸른 교회를 잘 섬기고, 책임질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본푸른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어려움을 보면서 그런 마음을 가졌다. 나보다 이들을 더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이해해주고, 도와줄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구나 생각했다.

흩어진 나그네들이 잊지 말아야 할

하나님께서 애굽의 고통에서 구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조했던 말씀이 있다. 첫째는 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야 한다.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신15:15, 5:15, 24:18,2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 내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8: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신16:12)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방의 제사장 나라로 사명을 감당하려면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애굽에서 종이었던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광야에서 나그네였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다.

두 번째, 흩어진 나그네들이 기억할 것이 있다.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고 나그네를 사랑하는 것이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은 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출23:9, 22:21).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10:17-19).

이 사명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 나라들은 폭력으로 약자들을 억압하고 괴롭히고 빼앗지만, 너희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랑과 섬김과 포용으로 열방을 품는 하나님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명을 망각하거나 포기하게 되면, 버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명을 망각하고 우상숭배에 물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셨다. 그래서 포로가 되었다.

교회는 세상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싸우는 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세상을 온 몸으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려야 한다. 생명을 받쳐 사랑해야 한다. 세상을 섬겨야 한다. 그것이 제사장이 해야 할 일이다.

부추 꽃

단일민족에서 다민족 사회로

오늘날 다민족, 다언어, 다종교, 다문화 사회이다. 한국에 들어온 이주민들이 무려 250만명이나 된다. 세계 각 나라에서 다 들어왔다. 선교지에 나가 열심히 복음도 전하는 선교사님들도 더 많이 필요하다. 우리 안방으로 들어온 외국의 노동자들, 학생들, 결혼이주자들, 탈북자들, 고려인들 등은 흩어진 나그네들이다. 그들에게 선교하는 것도 우리 교회의 몫이다.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인재도 필요하다.

또한 사회적 약자들도 너무 많다. 일전에는 북한에서 내려온 모자가 굶어 죽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우리도 과거에 나그네였다. 우리 땅을 빼앗기고, 주권을 빼앗기고, 우리 언어를 빼앗기고, 우리 소산물을 빼앗겼다, 우리의 자녀들을 총알바지로, 성노리개로 착출당했다. 나라를 잃고 설움 받던 나라였다. 외국에 이민 가서 천대받고, 멸시받고, 김치 냄새 난다고 무시당했다. 우리 선배들은 천한 일을 하면서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사랑하셔서 이제는 세계나라에 무시당하지 않는 한국이란 당당한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있는 나그네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사랑과 관용과 긍휼로 보살펴야한다. 그것이 제사장이 하는 일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나그네의 사명이다. 우리 모두는 “흩어진 나그네”이다. 나그네로서 "흩어진 나그네"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보듬어 주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용납하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사명을 따라 산다면 그것이 축복의 인생이다.

※ "흩어진 나그네"란 주제에 대해 통찰력을 준 책은 배경락 저 [성경 속 노마드] 라는 책이다.


 

 

발행인 최원영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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