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독서칼럼] 신경숙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 입력 2022.03.28 14:01
  • 수정 2022.03.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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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실종을 계기로 ‘잃다’와 ‘잊다’가 같은 말이었음을 뼈아프게 깨닫는다.

신경숙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순수문학으로 대단한 쾌거를 이뤘다. 이 소설을 대하는 모든 독자들은 한결같은 공감대를 경험한다. 가슴 밑바닥에서 샘처럼 솟아나는 그 뜨거운 아픔과 죄송함과 미안함으로 울컥 울컥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다. 가슴속에 잊쳐졌던 엄마의 존재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잃다잊다’의 의미


소설은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생일상을 받으러 상경한 노모가 지하철 서울역 구내에서 동행하던 남편을 놓친 뒤, 길을 잃고 사라진 칠순의 늙은 엄마는 이렇게 가족들과 헤어졌고, 이 헤어짐이 그의 마지막이 되었다. 가족들은 엄마를 잃어버리기 이전에 이미 엄마를 거의 잊고있었다. 그리고 엄마의 실종을 계기로 잃다잊다가 같은 말이었음을 뼈아프게 깨닫는다.

누구에게나 비켜갈 수 없는 마음의 짐이다. 엄마는 평생 가족에 대한 헌신과 배려와 고단한 노동으로 채워왔다. 이런 엄마를 잊어버렸다. ‘잃다잊다는 것은 같은 단어라는 것을 공감하게 된다. 소설은 네게의 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있다. 앞의 세장은 큰 딸, 큰아들, 그리고 아버지가 고해의 주체이다.

그리고 마지막 4장은 사라진 엄마가 일인칭 화자로 등장하여 둘째딸의 집, 평생 숨겨온 마음의 의지처인 곰소의 그 남자 집, 남편과 아이들 고모가 있는 고향집,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태어나 자랐던 엄마의 집을 차례로 돌며 세상과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눈 것으로 되어있다.


큰딸, 늘 엄마에게 화만 냈다


큰딸이 도시로 이사 나온 뒤 늘 엄마에게 화를 내듯 말했다. 엄마가 뭘 아느냐고 대들듯이 말했다. 엄마가 돼서 왜 그래? 책망하듯이 말했다. 엄마가 알아서 뭘 할 건대? 무시하듯 말했다. 엄마가 너를 혼낼 힘이 없어진 걸 안 뒤의 너는, 엄마가 거긴 왜 갔느냐고 물으면 일이 있어서요, 짤막하게 대답했다... 엄마에게 너에게 생긴 일에 대해서 길게 얘기 해 본적이 언제던가. 언제부턴가 엄마와 너의 대화는 간소해졌다. 그것도 얼굴을 마주보고 하기보다는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이루어졌다. 너의 말은 주로 밥은 먹었는가, 아픈데는 없는가, 아버지는 어떤가, 감기 조심하라, 돈을 부쳤다, 라는 것들이었다.”

딸이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부엌에 있는것이 좋았냐고, 음식 만들고 밥하고 하는 것이 어땠었냐고. 엄마는 물끄러미 딸을 바라보면서 부엌을 좋아하고 말고가 어딨냐? 해야 하는 일이니까 했던거지. 내가 부엌에 있어야 너희들이 밥을 먹고 학교도 가고 그랬지. 사람이 태어나서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사냐? 좋고 싫고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거지.” 이것이 엄마의 마음이었다.


큰아들 형철이와 대화


큰 아들 형철이와 대화속에서 엄마는 모든 것이 처음해본것이라고 고백한다. 17살에 시집와서 너는 내가 낳은 첫애가 아니냐...너의 모든 게 나 한테는 새세상이다.” 배가 부른것, 젖도 처음 물려봤고, 이 갓난아이를 내가 낳았나. 왈칵 두렵기도 해서 처음엔 고물고물한 네 손가락을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다. 하두 작아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어. 손가락과 발가락이 커져가는 것을 보고 참 기뻤다. 아장아장 걸었을때, 학교 보낼때, 네 이름표와 손수건을 가슴에 달아줄때 나는 의젖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종아리가 굵어지는 것을 보는 재미는 너무 행복했다. 이것이 엄마의 행복이었다.

자녀들의 계획속에는 엄마와 함께 하는 계획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자기의 계획만이 있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니 엄마의 자리가 너무크게 다가왔다.


아내를 잃어버린 뒤 남편은 생각에 잠긴다


남편도 아내를 잃어버린 후 아내에 대해 생각에 잠긴다. 아내한테 미역국 한번 끊여줘 본 적 없으면서 아내가 해주는 모든 것은 어찌 그리 당연하게 받기만 했을까? 남편은 집을 내키는 대로 떠났다가 돌아오면서도 아내가 이 집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남편은 자기 빠른 걸음 때문에 일생이 어딘가로 굴러가 쳐박혔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일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내를 잃고 처음으로 매마른 눈에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자신의 빠른 걸음걸이를 생각할때마다 가슴이 터질 듯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고 거의 한달이 다 되어가자 그와 그의 가족들은 다들 뇌 한귀퉁이를 손상당한 사람들처럼 허둥지둥거렸다.”

마가 있을 때는 귀찮은 존재였다. 엄마가 없어졌을때 그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또한 빈자리가 큰 만큼 한쪽이 무너져내려갔다.

마음에서 잃어버렸던 엄마를 다시 찾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엄마를 부탁해가 주는 상징언어는 '잃다'와 '잊다'이다. 이것이 같다는 것을 잊었던 현대인들에게 깊은 감동과 눈시울 불거지게하는 깨달음을 던져주고 있다. 

교회라는 울타리안에 '잃은 영혼'과 '잊어버린 영혼'이 존재한다. 누가복음 15장의 특징은 잃은 것에 대한 비유로 가득 채워져 있다. (1)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마음, (2)잃은 드라크마을 찾는 여인의 간절함, (3)잃은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기다림이 진하게 담겨져있다. 세 비유의 초점은 잃었다가 다시 찾았을 때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주님의 말씀중에 이와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18:14). 작은자 하나도 잃지 않는 것이 천부의 마음이다.

'잃다'와 '잊다'는 하나의 의미요 같은 언어이다. '잃은 자'는 다시 찾고, 공동체에 늘 있는 분들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모두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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