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균 이사장, 나는 사지가 마비된 척수장애인이다

  • 입력 2021.09.10 16:39
  • 수정 2021.09.1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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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행복한 재단 정하균 이사장을 까페에서 만났다. 휠체어에 의지해 앉아 있는 외모에서 풍겨나는 첫인상은 강인해보였다. 전이해가 없이 처음본 분이라 후천적 사고로 장애자가 되었겠구나 생각을 했다.

정 이사장은 19852월 교통사고로 사지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그의 나이 29세이다. 아들이 첫돌을 앞에 두고 난 사고로 인해 그의 삶은 엉망진창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어둠에서 일어나서 빛의 사람이 되기까지 현실의 높은 벽과 싸워야 했다. 그의 처절한 삶의 이야기가 그가 쓴 [희망은 내일을 꿈꾸게 한다]에 수북하게 쌓여 있다.

정 이사장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늦은 밤 11시 한강 둔치를 걸었다. 시원한 바람과 강건너 아파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들, 대교 가로등의 빛들을 나는 좋아한다. 사방이 짙은 어둠에 깔린 것보다 도시의 빛들을 보면 마음도 펑 뚫리는 듯하다.

잠이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 서재실에 가서 정 이사장이 주신 책을 펼쳤다. 그가 쓴 자전적 이야기는 커피향 그윽한 까페의 유혹처럼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있었다. 중증사지마비의 삶이 얼마나 현실에서 혹독한지를 여과없이 투명하게 보여주었기에 그 진솔함이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했다.

이상묵교수(서울대학교, 한국의 스티븐 호킹)는 이렇게 추천서 첫줄을 시작했다. “겨울산은 속을 다 볼 수 있어 아름답다.” 

정 이사장이 자신의 수치와 밑바닥을 다 들어냈기에 이상묵 교수는 마치 겨울산 같다고 비유했다. 끝은 서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정 이사장이 처절한 슬픔과 고통의 옷자락을 다 벗어버렸기에 독자들을 깊은 감동의 세계로 몰입하도록 인도한다.

새벽녘이 다가오면서 마지막 장을 넘겼다. 삶의 처절한 이야기들을 읽을 때면 함께 가슴을 쓸어내렸고, 고통의 끝자락에서 일어나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때는 나도 승리자가 된 기쁨을 얻었다.

그는 절망의 심연 깊은 곳에서, 생의 의지를 불태웠던 처절한 시간속에서 얻어진 흔적들은 보석들이 되었다. 독자들이 그 보석을 캐낸다면 절망에서 희망으로 삶의 자리가 옮겨질 것이다.

정하균이사장(가운데),  최원영목사(본헤럴드대표, 가운데), 주욱중목사(조은비전교회, 우)
정하균이사장(가운데),  박민양원장(수정치과), 최원영목사(본헤럴드대표, 가운데), 주욱중목사(조은비전교회, 우)

사지가 마비된 척수장애자로서 겪어야했던 처절한 문장들이 책 곳곳에 녹아 있다.

29살 교통사고로 인해 어머니는 빚을 얻어 사고 처리를 했고, 결국에는 집을 팔아 빚 잔치를 하고 말았다. “이 소리를 듣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 날의 사고로 나 하나만 희생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 집안을 통째로 삼켜버렸다.”고 한다.

사지마비로 인해 겪어야 했던 고통들은 현실이 되었다. “다리보다 손을 쓸 수 없는 게 더 불편했다...콧 구멍을 후빌 수 없어서 코를 씰룩거리는 것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웠다. 얼굴에 앉은 파리를 쫓으려고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파리도 내가 팔을 못쓰는 것을 아는지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나는 파리조차 이길 수 없었다.”

그는 꼼짝없이 병실에 누워 옛 추억을 떠올렸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 고생을 한 가족들, 연탄을 재생하던 기억, 병실에서의 암울한 생활까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면서 손을 내려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손에 시커먼 연탄이 묻어 있었던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은 멀쩡했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절망이 가장 큰 문제였다. 어둠을 이기는 것은 빛이다. 작은 촛불 하나를 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두움을 몰아내는 작은 촛불은 바로 내 마음가짐이다.”

병실에 누워 현실을 돌아보니 사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들은 세 살이었고 살 길은 막막했다. 차라리 세상을 떠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고층에서 뛰어내릴 수도, 동맥을 끊을 수도, 약을 먹을 수도 없었다. 구 어떤 시도와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죽지 못할 바에야 살아야 했다.”

사지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 있다는 것을 가정하면 그 자체가 공포라고 한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 수 없다. 아내가 약속이 있어 오후 3시에 돌아온다고 하고 외출을 했을 때 3시가 되기 전에 아내가 돌아온다면 다행이지만 사정이 생겨 시간이 늦어지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4시가 되면 공포에 떨게 되고, 5시가 넘으면 절망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친구가 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친구들에게 부탁을 해서 장례식장에 갔다. 친구들은 장애인을 부축해 본적이 없었다. “힘으로 나를 업어서 휠체어에 앉히려다 다리가 휘어 감겼다. 그 순간 다리가 부러졌는데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상갓집에 다녀와서 옷을 갈아입는데 다리가 부어 있었다. 그제야 머리가 흥건히 젖을 정도로 식은땀이 났던 이유를 알았다. 느끼지 못했지만 내 몸은 식은땀이 날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병원에 가서 깁스를 했는데 뼈가 붙지를 않아서 1년 동안 고생을 해야만 했다. 감각이 없으니까 회복도 더뎠다.”

척수장애는 살이 타도 모르고 뼈가 부러져도 모른다. 살이 썩어 들어가서 뼈가 허옇게 보이는데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정 이사장은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중증척수장애자이다. 그런데 인간으로서 자존감에 상처를 긁어내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벗은 몸"이다. “벗은 몸으로 남들 앞에 버젓이 누워있으면서도 내 몸을 그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을 때 나는 상당한 비애를 느낀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옷을 입고 생활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뜻도 된다. 사람은 자기만 알고 싶어 하는 비밀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비밀이 없다. 내가 무슨 빛깔의 똥을 쌌는지도 남들이 다 안다. 나는 비리를 저지를 수도 없다. 남의 손을 빌어 어떻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라고 항변한다.

그를 위축시키는 것은 "활동보조를 돕는 분들이 자주 바뀌는 것"이다. 옷을 벗는 것이 낯설지 않게 될 만하면 활동보조인이 바뀐다. 활동보조인들은 나의 손과 발이기에 그분들 없이 삶이 불가능하다. 자주 소변통도 갈아주어야 한다. 혹시 실수를 하면 옷을 벗기고 씻기고, 하는 모든 과정이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전무하다.

척수장애인이 된 이후로 먹는 즐거움이 사라졌다고 한다. 다치고 나서 먹여주는 밥을 먹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한다. 늘 사람들은 나에게 머슴밥처럼 밥숟가락에 수북하게 올려서 준다. 늘 비빔밥을 먹는 심정이라고 한다.

그는 휠체어를 이용하게 된 후 정말 배고픈 날이 많았다. 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점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외출을 하게 되면 보통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운다고 한다.

아직도 한국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차별적 환경이 많다. 그는 경사로는 성숙한 사회로 가는 척도다....사회적 약자와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사회적 배려가 아주 자연스러운 세상이 되어야 복지사회다. 장애인 편의 시설은 추가비용의 대상이 아니라 사업의 본예산에 편의시설 설치비용으로 당연히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그들에게 특별히 무엇을 더 주는 것이 아니다....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일 선상에서 출발하게 해주는 것이다. 법과 제도와 세금으로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회의원 시절 정하균 이사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혼 힘을 기우렸다. 그 결과 두 번이나 국정감사우수의원으로 선정이 되었을뿐아니라 올해의 정책리포트 우수상’(2008), ‘거짓말 안하는 정치인 베스트 5’(2009)에 선정되었다.

그의 정치적 감각과 예리하고 탁월한 분석력을 돋보이게 하는 대정부 질문 일화가 있다. 대정부 질문을 위해 직접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역사에서 촬영을 했다. 역사에서 4호선과 5호선으로 갈아타는 과정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는 동영상이었다. 휠체어 리프트로 한 층을 내려가는데 16분이 걸렸다.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를 짚은 것이다.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은 엘리베이터든 휠체어 리프트든 오르내릴 수만 있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을 한다. 한 층 내려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16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를 직접 실감하지 못한다.

16분 동영상을 대정부 질문에서 아무런 말도 없이 영상만 틀어주었다.

그리고 총리에게 질문을 했다.무척 지루하셨죠?”

그리고 칠레에서 일어난 광산 매몰 사건을 상기시켰다. “칠레 광부들이 지하 622미터의 매몰된 현장에서 한 명씩 구조캡슐에 의해 지상으로 올라오는 데 걸린 시간이 16분이었는데, 휠체어를 탄 한국 장애인은 한 층을 올라가는데 그만한 시간을 소비해야만 합니다. 남들이 1분도 안 걸려 내려갈 거리를 16분 걸려 내려간다는 것은, 평등한 것이 아닙니다. 기회의 평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셨길 바랍니다.”라고 대정부 질문을 마감했다.

21세기 지금은 장애자와 비장애자가 함께 공존하는 사회이다. 장애자에 대한 배려가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다. 장애자가 전국민의 10%540만이 된다. 정 이사장이 쓴 이  책은 장애자들을 이해하기 위한 실제적인 지침서와도 같다. 장애자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비장애자들은 자기 수준에서 장애자들을 돕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에서 맞지 않을 때가 많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배웠다.

 

"장 불행해 보이는 남자의 가장 행복한 이야기"이다. 전동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세상을 움직이는 정하균의 이야기의 본질은 "희망"이다. 그는 세상을 향해 소리를 친다. "희망은 바로 당신 안에 있다."고 포요하고 있다.

희망이 사라졌다고 절망의 늪속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분들에게, 나는 끝났어 더 이상 살 용기도 힘도 없다고 땅 끝에 힘겹게 서 있는 분들에게, 마지막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 책에서 '희망'이라는 보석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를 바라보며, '아직 우리 조선은 끝나지 않았어'라고 읊조렸던 그 심정으로 다시 삶의 의지를 불태우기를 바랄뿐이다. 모든 생명은 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정하균이사장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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