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독서만이 살 길이다”

작가 조신영은 [성공하는 한국인의 7가지 습관 루트 앤 윙’]에서, 영어 단어 7글자 “NOWHERE”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어떤 이들은 ‘No where’로 읽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Now here’로 읽을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부정적인 관점의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No where’ ‘어디에도 없다고 판단할 것이고, 긍정적인 관점으로 판단하는 분들은 ‘Now here’ ‘지금 여기에존재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부정적인 관점에 사로잡혀 있으면 마이너스의 인생이 되고, 긍정적인 관점으로 판단하면 플러스 사고로 인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

"독서는 마이너스 인생을 플러스 인생으로 전환시켜주는데 최고의  길잡이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춘천변화산기도원협력원장,  등........ 저서로는 주기도문, 그리스도의 제자 세우기, 충성된 일꾼되어가기, 등이 있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춘천변화산기도원협력원장,  등........ 저서로는 주기도문, 그리스도의 제자 세우기, 충성된 일꾼되어가기, 등이 있다.

조 작가는 인생의 근본 토양을 갈아엎는 힘이 바로 뿌리 깊은 독서에 있다고 보았다. “이 시대의 독서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며 길들여지느냐 돌파하느냐의 문제인 셈이다.”고 강조한다. “누군가 나의 취미를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독서라고 말할 것이다.” 조 작가에게 독서란 곧 수학과 같았다. 그녀는 수포자였다. 1년에 1,2권정도 책을 읽을 정도였다. 그런데 단시간 안에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이유는 절박함이었다고 한다. 절박함은 곧 생존본능 과도 같았다고 전한다.

다산 정약용 생가
다산 정약용 생가

조선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를 든다면, 다산 정약용(1762-1836)이다. 그는 실학의 대가이다. 그는 28세에 대과에 급제하고, 나이 39세 형조 참의(, 법무부 차관보)로 성공의 시간을 보낼 때, 인생 최대 위기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신유사옥이라는 천주교 박해 사건에 연류되어 집안이 풍비박산 되고, 강진에서 18년간 고통스러운 유배생활 중에 조선역사상 불후의 역작 목민심서를 비롯한 500여권을 집필하였다.

최효찬의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다산 정약용 편에 보면, 정약용은 인생의 길이 막힌 두 아들에게 서신교육으로 자녀교육을 했다. 다산은 자녀들에게 4가지를 훈계했는데, 첫째는 문명세계(서울)를 떠나지 말 것, 두 번째 독서에 힘쓸 것, 세 번째는 재물은 나눠줄 것, 네 번째는 근() (), 두 글자를 유산으로 남겼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명문가문은 근과 검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겼다. 부지런하고 검소한 생활은 명문가문의 규칙이요 삶의 질서였다.

다산은 폐족이 된 집안을 일으켜 세울 현실적인 방안을 아들들에게 알려주었다. ‘서울을 떠나지 말라고 했다. 가문이 몰락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문화와 문명의 중심지인 서울에서 살라고 부탁했다. 왜냐하면 시골보다는 교육환경이나 정보습득에 훨씬 더 유리하고 기회가 더 많다고 보았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오직 독서만이 살 길이다라고 편지를 보냈다. “이제 너희들은 몰락한 집안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더욱 잘 처신하여 처음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 좋은 일이지 않겠느냐? 폐족으로서 바르게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고 했다.

다산은 큰아들이 유배지로 찾아오자 아들에게 시험 삼아 큰 잔으로 술을 한 잔 마시게 했다. 그런데 큰 아들은 술을 마시고도 전혀 취하는 기색이 없었고, 아우의 주량을 물어보니 형인 자기보다 두 배는 된다고 말했다. 다산은 아들의 말을 듣고는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다산은 폐족의 집안에다 술주정뱅이가 되어서야 되겠느냐? 어찌 글공부에는 아비의 버릇을 이을 줄 모르고 주량만 아비를 넘어서는 거냐?’면서 술을 끊을 것을 당부했다.

다산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귀양살이가 부끄러워 책이라도 남겨 자신의 허물을 벗고자 저술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고되고 고통스러운 유배생활이 다산을 조선 역사 최고의 사상가로 세워지게 되었다. 삶의 자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인생의 그림이 달라진다는 교훈을 얻는다.

다산의 가르침을 받은 두 아들은 폐족으로 높은 벼슬에 오르지는 못해도 학문을 통해 성인이나 문장가가 될 수 있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잃지 않고 학문에 전념해서, 독서를 통해 당대 문장가로 우뚝 서게 된다. 장남 정학연(1783-1859)과 둘째 정학유(1786-1855)은 당대에 이름을 떨친 시인이 되었다.

 

존 웨슬리 (John Wesley, 1705.8.31.-1791.8.31.)는 '책의 사람'이다. 그는 감리교 운동을 시작한 인물로, 영국과 미국의 감리교 창시자다. 영국국교회 (Church of England)에서 안수를 받았으며 신학자이며 사회운동가이다.

존 웨슬리는 1천여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한마디로 독서광이었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약 400여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웨슬리는 부모로부터 철저한 독서지도를 받았다. 어머니는 그의 경건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면 아버지는 학문과 독서지도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아버지 사무엘은 아들에게 꼭 읽어야 할 책을 추천하였다.

평생 다양한 책을 읽었던 존 웨슬리는 그를 따르는 핵심 지도자들인 메도디스트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메도디스트란 참 그리스도인”(a real Christian)을 말한다. 존 웨슬리는 메도디스트 설교자들과 모든 메도디스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경건한 독서 200여권을 직접요약하고 발췌하여 편집하였다

존 웨슬리의 독서 영역을 보면 평생 고전기독교 신학그 외의 모든 분야를 탐독했다. 또한 웨슬리는 한 책의 사람’ ‘성경 좀벌레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성경을 깊이 읽고 묵상했다. 웨슬리가 독서를 하는 목적은 단순한 지식 총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경건의 목적으로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했다. 그는 아무 책이나 읽는 것이 아니라 독서 계획표를 만들어서 체계적으로 읽었다.

지혜로운 인생의 길을 원한다면 배우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의 저자 캔 블랜차드(Ken Blanchard)배우기를 그칠 때 성장도 멈춘다.”(When you stop learning you stop growing)고 했다. 명문가문에 대한 비전이 있다면, 인생에 근본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책의 사람의 되라. 독서의 계절 여기서부터 변화를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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