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먹으라"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대표, 변화산기도원협력원장(춘천), 서울신대(Th.D). 저서로서는 주기도문 등이 있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대표, 변화산기도원협력원장(춘천), 서울신대(Thㄱ.D). 저서로서는 주기도문 등이 있다.

코로나 시대 교회예배에 대한 갈등이 심하다. 대면예배와 비대면 예배를 주장하는 논쟁이 단순한 바이러스의 문제를 뛰어넘어 정치 이념 논쟁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혼탁함 그 자체이다. 서로간의 입장과 논리가 있다. 이 말을 들으면 맞고, 저 말을 들으면 또한 맞다. 좌우를 판단하기 참으로 어려운 숙제이다.

충남 천안 '안서교회' 고태진 담임목사가 남긴 글이 큰 화제가 되었다. 

"예배드리면 죽인다고 칼이 들어올 때, 목숨을 걸고 예배드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나 예배 모임이 칼이 되어 이웃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면 모이지 않는 것이 신앙입니다."

누리꾼들은 목사가 남긴 말을 이렇게 해석했다. "예수의 뜻으로 돈버는 사람과 마음 버는 사람 차이"라고 했다.

이 말이 맞다고 하는 분들은 쾌재를 부르며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해서 퍼 나를것이고, 이 말이 맞지 않다고 여기는 분들은 속상한 마음을 달랠것이다.

이 시대를 해석하는 어떤 말들도 우리 모두의 마음을 속시원하게 해주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고, 목표가 다르고,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준점을 잃어버리면 상황에 따라 춤추는 볼품 사나운 자신의 못난 모습을 보게된다.

혼란한 시대에 우리에게 기준점을 잡아주는 것은 결국 말씀이다. 그러면 말씀을 어떻게 읽는 것이 성경적인 영적 독서 방법일까?

"렉치오 디비나(lectio divima) vs QT"

라틴어 “렉치오 디비나”를 번역하면 ‘거룩한 독서’, ‘영적독서’(성독)라고 부른다. 렉치오 디비나를 통한 독서방법은 텍스트를 4단계로 구분한다. 텍스트 읽기(lectio)- 텍스트 묵상(meditatio)- 텍스트 기도(oratio)-텍스트 관상(contenpiatio)이다.

렉치오 디바나는 개인 경건생활에 중요한 지침서이며, 초대교회나 사막의 교부 시대나, 오랜 기독교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교회에서는 묵상 방법인 QT 형식으로 소개 되었다. 한국교회 묵상 방법인 QT는 관찰-해석-적용, 3단계 과정으로 이루어졌고, ‘삶의 적용’에 강조점을 두었다. 렉치오 디비오는 ‘하나님과의 교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영적 독서: 성경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

렉티오 디비오 영적 독서 방법의 출발점에서 기초는 성경은 무엇인가?’에 대한 확고한 고백에서 출발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이 영광을 보닌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그 분이 누구인가? 바로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고 곧 예수님이라는 사실이다. 영적독서의 출발점은 바로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려서 안된다.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것에 실패를 하거나,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에 굴복하지 않거나, 그 사랑에 반응하는 것을 실패하게 되면, 내 지식이 나를 교만하게 만들고 비인격적인 삶으로 살아가게 된다.

 

"영적 독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영적 독서를 시작함에 있어 두 번째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기록된 말은 죽은 말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생명이 없다. 문자는 문자일뿐이다. 모든 문자는 죽은것이지만 부활을 기다리는 죽은 말이다. 기록된 말을 읽을 때 살아있는 음성으로 들어라. 그러면 죽은 말이 부활한다. 언어의 생성 과정을 보면 먼저 말이 있고 그 다음에 언어로 기록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조들은 오랫동안 기록된 성경이 없었다. 문서없이 하나님을 믿었고 순종하였고 예배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음성을 통해 전해졌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죽은 언어가 살아있는 음성으로 들릴 때 말씀이 부활한다.

예수님은 천국을 씨뿌리는 비유로 설명하면서 말미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13:3-9)라고 했다. 밧모섬에 있던 요한이 소아시아 7교회에 보낸 설교를 보면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2:7).

말이 먼저이다. 말 다음에 글이 생겼다. 먼저 듣는 것이 중요하다.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라. 이것이 영적독서 방법이다.

시편기자는 주께서 나를 위해 귀를 파셨으니”(40:6). 다른 번역을 보면 주께서 내 귀를 뚫으셨으니” (NIV), 표준새번역은 주께서 오히려 내 두 귀를 열어 주셨으니”, KJV 은“주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니라고 번역했다. 화강암 돌덩어리처럼 꽉 막혀 버린 우리의 마음 상태에서 성경을 읽는다고 해서 그 말이 부활하겠는가? 부활하지 못한다. 생명력이 없는 말만 지식으로 얻을 뿐이다. 시편기자는 말한다. 머리에 붙은 귀를 파내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열어주셨다는 것이다. 성경 텍스트를 읽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먼저 말씀을 듣겠다는 마음 자세가 더 먼저이다. 마음의 상태가 먼저 좋은 땅이 되어야 씨가 떨어져 열매를 맺는다.

 

"영적독서(렉치오 디바나) 4단계"

성경은 곧 하나님이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먼저 듣는다. 이 전제 조건 위에 렉치오 디바나(영적독서) 독서 방법 4단계를 이해하면 좋을 듯싶다.

첫째,  텍스트를 읽는다(레치오).

둘째, 텍스트를 묵상한다(메디타티오). 묵상할 때 단순하게 공상하는 것이 아니다. 공상과 묵상은 다르다. 묵상은 계시된 예수님 중심으로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말씀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묵상이다. 그 중심은 예수그리스도이다.

세 번째, 텍스트를 기도한다(오라티오). 읽은 말씀을 묵상하고 그리고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다.

네 번째, 텍스트를 붙들고 산다(콘템플라티오, 다른 표현 관상’).  유진 피터슨이 쓴 [이 책을 먹으라]에서 관상을 이렇게 해석했다. 어떤 것도 낭비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저장해 두지 않고, 삶에서 그것을 다 써 버리는 것이다.”  반드시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살아내는 삶이 관상이라고 했다.

영적인 성경 읽기는 읽는 다살아낸다를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인 것이다. 태초에 계셨던 그 말씀이 육신이 되셨으며, 현재에도 주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반응할 때 바로 영적독서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영적 독서’(렉치오 디바나)는 기독교가 세상에서 소금이 되고 누룩이 되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경을 읽고,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한 후 살아내는 습관이 선조들은 영적독서라고 불렀다.

 

"이 책을 먹으라"

유진 피터슨은 우리를 지켜주는 성경 말씀 목록 위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을 먹으라고 했다.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먹으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성경은 거룩한 공동체에 영양분을 준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성경을 배우거나 연구하거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흡수해야 한다.

밧모섬에서 요한이 먹은 책은 성경이다(10:9-10). 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비블리온’(biblion)인데, 영어로는 성경’(Bible)으로 번역된다.

바벨론에 있던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두루마리 책을 먹으라’,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2:8-3:3)고 했다.

에스겔과 동시대에 예루살렘에서 살았던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계시를 보여 주었다. 예레미야가 고백하기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15:16)라고 했다.

밧모섬의 요한과 바벨론의 에스겔과 예루살렘의 예레미야는 이 책을 먹는방법을 배우는데 엄청난 에너지와 지성을 쏟아 붓고 기도했다.

히브리인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한 하나님이 가르쳐준 방법이 있다. 쉐마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무엇을 들으라고 했는가?(8:4-9). 바로 하나님은 유일신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사랑하는데 전부를 다 걸으라고 했다. 올인하라고 했다. 올인이란 마크 배터슨은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해석했다. 이 책을 먹는데 올인해야 한다. 그러면 길은 열린다.

사도바울이 베뢰아에서 말씀을 가르쳤다.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17:11-12).

베뢰아 사람들은 성경을 먹었다. 이 책을 먹었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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