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2-4)“


<야고보서>가 기록될 당시 기독교인들은 로마황제 <네로(Nero, 주후 54-68 재위)>에게 극심한 박해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를 말살시키고자 했던 네로 황제는 많은 기독교인들을 아주 끔찍한 방법으로 처형했습니다.

야고보 사도 역시 본 서신을 기록한 후 체포되어 순교의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였기에 <기독교신앙>을 포기치 않은 신자들은 누구나 고난의 삶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로마제국내의 모든 기독교인들에게는 핍박과, 가난과, 궁핍과, 세상에서의 고립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도에게 닥치는 시련과 고난 이면에는 하나님의 숨겨진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시련과 고난> 가운데 <인내>를 배우게 하시고, 인내가운데 <연단> 되어 흠 없고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의 위대한 웅변가요, 정치가요, 철학자였던 <키케로(Cicero, 주전 106-43)>는 ‚고난이 크면 클수록 영광도 크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은 대부분 용광로 같은 <불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성도에게 닥치는 <시련과 고난>은 현실적으로는 고통이지만, 실제로는 <영광의 길>로 인도하는 <축복의 도구>입니다.

그러기에 야고보 사도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권면합니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이 <시험>이란 단어를 <페이라스모이스(πειρασμοῖς)>라고 표기하는데 이 단어는 <시련(triel)>과 <고난(hardship)>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성도>는 이 <시련과 고난>을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야고보서 1:2)“

<시련과 고난>이 주는 <영적 유익> 때문입니다.

카프만 부인의 <광야의 샘>이란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누에고치들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여러 마리의 누에고치가 나비로 탈바꿈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너무도 작은 구멍을 통해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그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혹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누에고치 속의 나비들은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힘겹게 그 작은 구멍을 빠져나왔고, 그리고는 제각기 날개를 활짝 펴고 공중으로 훨훨 날아올랐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 작은 구멍을 통해 빠져나오려고 애쓰고 있는 한 누에고치를 발견하고서, 나는 그 수고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가위로 그 누에고치의 작은 구멍을 넓게 잘라 주었습니다. 그런데 누에고치 속의 나비가 내가 넓게 열어준 구멍으로 쉽게 빠져나오긴 했지만, 나비에게는 그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쉽게 누에고치 속에서 빠져나온 이 나비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려고 하는데, 날아오르지를 못하고 땅바닥에서 제자리만 계속 맴도는 것이었습니다. 날아오르고 싶어도 날아오를 수 없는 그 가련한 나비를 보면서 나는 내가 그 나비를 돕는다고 한 행동이 그 나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안겼는가를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누에고치 속의 나비가 그 작은 구멍을 통해서 온 힘을 다해 빠져 나와야 그 몸의 영양분을 날개 끝까지 공급하게 되고, 또 빠져 나오는 동안 날개가 계속 마찰되면서 날아 오를 수 있을 만큼 강해 진다는 사실을 나는 간과했던 것입니다.“

때로 성도가 원치 않게 겪게 되는 극심한 시련과 고난이 실제로는 성도로 하여금 영적으로 보다 성숙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신앙의 사람으로 온전히 다듬어지게 하는 소중한 훈련의 계기가 됩니다.

그러기에 <고난의 용광>로를 통과한 <시편기자>는 기쁨과 감격 속에 고백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71) "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는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의 참 뜻을 고난의 체험을 통해 깊이 깨달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2. <성도>는 이 <시련과 고난>을 <인내>로 이겨내야 합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야고보서 1:3)“

<시련과 고난>에 끝까지 <인내>하는 <성도>는 <영광의 면류관>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1:7)“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1-7)“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선언합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18)“

3. <성도>는 이 <시련과 고난>을 <신앙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4)“

영국 사람들이 한창 싱싱한 <청어>를 좋아할 때였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살아 있는 <청어>는 굉장히 비싼 값에 거래됐습니다. 그래서 고기잡이 선원들은 <청어>를 산 채로 육지까지 가져오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청어>는 워낙 성질이 급해서 육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한 지혜로운 선원이 청어 수족관 안에 <상어>를 한두 마리 넣어보았습니다. <상어>는 순식간에 <청어> 몇 마리를 잡아먹었습니다. 그러자 그 많은 <청어>들이 <상어>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쫓고 쫓기는 동안 배는 육지에 도착했고 수족관 안의 <청어>는 모두 싱싱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청어잡이 어부>들은 이 같은 방법으로 그물로 잡아 올린 <청어>들을 산 채로 육지까지 운반해온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극심한 <고난>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당연히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심히 괴로워하고 슬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난 >때문에 <성도>는 영적으로 한층 더 <성숙>할 수 있고, <고난>때문에 <성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신앙의 사람>으로 더 훌륭히 다듬어질 수 있으며, <고난> 때문에 <성도>는 확신에 넘치는 강하고 담대한 <체험적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느니라! (로마서 8:28)“

특별히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의 <신앙체험>을 통해 기록된 <시편의 말씀>들은 어떻게 <시련과 고난>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1.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4:8)“

<파울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는 20세기의 대표 신학자인 <스위스>의 <칼 바르트(Karl Barth, 1886- 1968)>와 쌍벽을 이루는 유명한 <독일 신학자>입니다. <히틀러 정권>에 의해 조국 독일에서 추방당한 <파울 틸리히>는 미국으로 망명을 가 미국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강의를 했습니다. 그는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신학자였지만 미국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그에게 <영어발음>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영어에 익숙지 않은 그의 강의는 <독일식 악센트>가 튀어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영어 발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강의 시간 내내 학생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한 학기 동안 이런 일이 계속되자 <파울 틸리히> 는 점점 강의에 자신감을 잃어갔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사랑하는 조국에서 추방당한 고독한 망명객의 신세였습니다.낯선 땅에서 망명생활을 감내해야 하는 그에게 학생들의 비웃음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한없는 좌절감에 점차 의욕을 잃어갔습니다. 2학기가 시작되면서 그는 강의실 앞에만 서면 벌벌 떨게 되었고, 그와 함께 그의 마음의 병도 점점 더 깊어만 갔습니다.

하나님은 <롤로 메이(Rollo May, 1909-1994)>라는 학생에게 그의 이 같은 심적 고통을 보게 하셨습니다. 어느 날 경직된 마음으로 강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우편함에서 카드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카드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습니다. “교수님, 힘을 내세요! 우리가 웃는 것은 교수님의 발음 때문이지 강의 때문이 아닙니다. 교수님의 강의는 너무나 훌륭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웃더라도 힘을 내십시오! 우리 모두 교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롤로 메이 드림”

이 카드를 읽은 <파울 틸리히>는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저녁 식사도 거른 채 오랫동안 감동에 젖어 있던 그는 마침내 노트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아픔을 알아주는 것도 이렇게 놀라운데, 죄인 된 인류의 아픔을 치유하러 오신 주님의 역사는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이날 이후 <파울 틸리히>가 뜨거운 가슴으로 써 내려간 책이 유명한 <조직신학 2>입니다.

<파울 틸리히>로 하여금 위기를 극복케 한 <롤로 메이>는 미국의 유명한 실존주의 상담사가 되었는데, 그녀는 1938년에 <유니언 신학교>에서 <신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1949년에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정신 치료 분야>로 <교육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사랑과 의지(Love And Will)>, <창조할 수 있는 용기(The Courage to Create)> 등 여러 작품들을 썼습니다.

2.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시편 34:6)“

유명했던 권투선수인 <조 프레이저(Joseph William "Joe" Frazier, 1944-2011) >는 1964년 <동경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런데 당시 준결승에서 오른손 손가락이 하나 부러졌습니다. 금메달을 위한 마지막 경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는 호텔에 돌아와 부러진 손가락을 붙잡고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그는 아픈 손에 글러브를 끼고서도 상대방에게 KO승을거두었습니다.

그 후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금메달을 딴 것은 내가 내 목표의 달성을 위해 끈질기게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프로로 전향한 <조 프레이저>는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독보적인 프로복싱 <헤비급 세계챔피언>이었고, 또한 <무하마드 알리>를 이긴 최초의 권투 선수였습니다. 그는 은퇴 후 훌륭한 <전도사>가 되어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누구든 살다 보면 때로 어렵고 힘든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럴 때 가장 확실한 <문제 해결의 방법>은 바로 <부르짖음의 기도>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시편 50:15)“

김정효목사. 1983년 2월 스위스 사역시작, 취리히 중앙교회, 바젤한인교회, 인터라켄 쉼터교회 담임. 총신대학교신학 대학원졸업,  스위스한인교회 홈피 www.koreanchurch-swiss.com 
김정효목사. 1983년 2월 스위스 사역시작, 취리히 중앙교회, 바젤한인교회, 인터라켄 쉼터교회 담임. 총신대학교신학 대학원졸업,  스위스한인교회 홈피 www.koreanchurch-swiss.com 

3. <회개해야> 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8)“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는 그가 작품으로 유명해지자 방종한 생활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의 외동딸이 가출하여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뒤 행방불명된 그의 딸의 시신이 <세느 강> 위에 떠올랐습니다. 그는 딸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통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장례식 후 딸의 방에 들어가 보니 딸이 아버지에게 쓴 편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제 돌아오세요! 하나님과 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인생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제가 떠납니다!"

딸은 타락하고 방종한 아버지를 바른 길로 돌이키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했던 것입니다.<빅토르 위고>는 딸의 유서를 통해 이 사실을 깨닫고는 즉시 방탕한 생활을 청산했습니다. 그는 그의 자서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돌려세우기 위해 딸의 죽음이라는 충격을 내게 주셨습니다!"

방탕한 생활을 청산한 <빅토르 위고>는 <사회복지국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상담을 해주고 도와주는 일을 함으로써,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고, 이에 힘입어 <교육부장관>의 지위에까지 올랐습니다. 특별히 그는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이란 그의 작품을 통해 <회개의 결과>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회개>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아픔의 충격>을 주실 때가 있으십니다. 우리는 이 <아픔의 충격>을 바른 <신앙 회복>을 위한 <회개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편 51:17)“

 

4. <선을 행해야> 합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시편 34:14-15“

1820년 3월 24일 미국 뉴욕주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패니 크로스비(Fanny Crosby)>라는 여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생후 1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습니다. 감기에 걸려 열이 오르면서 눈병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사람이 애기 눈에 약을 발라준다는 것이 엉뚱한 약을 발라, 그만 장님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 1년도 채 못되어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 같은 불우한 가정형편과, 앞을 못 보는 불구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고, 명랑하게 잘 자라줬습니다. 그녀가 9살 되었을 때에, 그녀는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소경이지만 그래도 제 머리와 손을 사용해 주세요!“

그녀는 15살에 맹인학교(盲人學校)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그녀의 <문학적 재능>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그때부터 <찬송 시>를 쓰기 시작하여, 일생 동안 무려 <8000여편>의 찬송 시를 썼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닥쳐온 고난과 시련, 불행과 역경을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의 기도>로 <극복> 해냈고, <긍정적인 신앙자세>로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여,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더 소중히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은총을 덧입었습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그녀는 이와 같은 은혜로운 <찬송 시>를 많이 써서, 이 찬송을 부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 감화>를 끼쳤습니다.

한번은 그녀의 불구상태를 동정하는 어떤 목사님에게 이렇게 대꾸했다고 합니다.

„만약 내가 태어날 때 하나님께 한가지를 요청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지금처럼 소경으로 태어나게 해달라는 부탁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내가 천국에서 뵈올 우리 주님의 얼굴이, 내가 보는 첫 얼굴이 되게하기 위해서 입니다!“

시련과 고난은 이처럼 당하는 사람의 <신앙자세>에 따라서, 오히려 더 높은 <경지(境地)>에 다다르게 하는 <축복의 방편(方便)>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시편 91:14-15)“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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