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선】 한국교회를 살리는 해법, 모든 신학교에 최고의 교수(?)를 영입하라

  • 입력 2022.08.02 11:38
글자 크기
프린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학교에서 성경을 배우지 못한다

이대희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그동안 성경학교와 신학교,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해오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 "크리스천 가이드"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30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야기대화식 성경연구"와 "30분성경교재 시리즈"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저서(“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 “유대인의 파르데스공부법“ "되새김 120일 쉬운 통독" 등 다수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이대희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그동안 성경학교와 신학교,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해오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 "크리스천 가이드"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30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야기대화식 성경연구"와 "30분성경교재 시리즈"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저서(“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 “유대인의 파르데스공부법“ "되새김 120일 쉬운 통독" 등 다수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성경을 시녀로 몰아낸 교회 못자리인 신학교의 현실

35년 전에 설렘으로 신학교에 입학하여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정작 신학교에서 성경을 제대로 공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 신학교라면 어디나 공통적인 모습이다. 혹시 기독교 교육에서는 성경공부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많은 기대를 갖고 과목을 찾았지만 아무리 전체 학년 커리큘럼을 살펴보아도 성경자체를 가르치는 과목이 없었다.

그렇다고 성서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성서학에서는 성경 각 책에 대한 신학적 연구와 학자들의 학문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나마 각권 책에 대한 과목을 열심히 수강했지만 본문 자체를 연구하기 보다는 신학적 특징을 공부하는데 머물렀다. 성경을 공부할 수 있는 영역이 기독교교육인데 유일한 성경과목은 성경교수법이었다그것은 성경공부 방법을 소개하는 정도였다. 필자가 10년 동안 여러 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했지만 역시 기독교교육방법론과 이론이었고 성경자체를 공부하는 과목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35년이 지난 지금에도 신학교는 변하지 않고 있다. 잘 알려진 신학교의 수강과목 조차도 M. Div 3년 동안 수강할 과목이 선택과목까지 합쳐 무려 200여개가 넘는 다양한 과목이 개설되었지만 성경자체를 공부하는 과목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이것은 진정 신학교 속에는 성경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이것이 지금 신학교의 현실이다. 그것이 목회자를 힘들게 했고 결국은 한국교회의 위기에 처하게 한 요인이 되었다. 성경의 기초가 흔들리다 보니 세상에서 이길 힘을 상실하게 되었다.

필자는 왜 이렇게 신학교육이 구성되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후에 알게 된 것은 종교인을 만드는 종교교육이 기독교 교육의 뿌리라는 사실이었다. 기독교인 만드는 교육이 핵심이다. 중요한 성경은 공부하지 않고 졸업한다. 제대로 성경을 공부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 성경자체를 가르칠 교수가 없다 보니 신학교에서 성경은 사리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독교 교육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아도 결국은 성경자체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황에서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런 신학교 교육구조는 기독교교육에도 영향을 주었다. 물론 설교학 등에도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성경본문 연구가 없이 설교 기술을 주로 배우는 것이 설교학이었다.

이렇게 공부한 신학생들이 졸업하여 교회 현장에서는 기독교교육의 이름으로 방법론에 치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교육시스템은 교회학교에 그대로 이어져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약화되었고 성경보다는 교재를 공부하는 공과 학습이 전부가 되고 있다.

지도자들도 성경을 잘 모르니 성경을 깊게 가르치지 못하고 성경보다는 교재중심으로 방법론에 치중했다. 이것이 지금 우리 한국교회 교회학교 솔직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교회가 점점 성경에 멀어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고 있다. 성경을 제대로 배워 보지 못한 상황에서 성경을 아는 것처럼 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신학교에서 성경을 공부 제대로 배운 적이 없이 졸업하고 실제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자기 방법으로 얼마 하다 그만두고 다른 길로 가는 것은 당연한 모습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한국교회가 절대적인 성경을 가르치기 어렵고 그런 지도자가 적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원론으로 구성된 신학교육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신학교의 교육에서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지금의 신학교교육은 헬레니즘의 교육철학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학교에서 최고의 학위는 Ph.D( 철학박사)이다. 헬레니즘의 중요한 특징은 이원론이다.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지금 신학교육의 가장 문제점은 교과과목의 이원적 구조형태이다. 이론과 실제가 분리되어 있다. 이론 학문과 실제 학문이 각자 다르게 나가다 보니 독자적인 방향으로 학문이 형성 되고 발전 되지만 다른 학문과 연계가 힘들다. 특히 실천 학문에서는 원리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현장에서 학문이 나오는 특징 때문에 원리와는 무관하게 교육이 이루어진다. 백화점식으로 다양한 과목을 이수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스스로 그것을 하나로 연결하며 통합화하는 신학적 작업이 신학교에서부터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교회는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커리큘럼이 먼저 일원화 되어야 한다. 다양한 학문이 어느 학문의 이론으로 일원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신학에서는 해결점이 있다. 오직 성경을 통해서 학문의 통합화를 이룰 수 있다. 아무리 신학의 각 분야의 학문이 대단하다 해도 성경을 넘어설 수 없고 성경을 떠나서 독자적 학문을 구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자기 학문의 자리를 고수하기 위하여 성경을 중심에서 몰아낸 교만 된 행위를 회개하고 다시 신학의 학문이 성경으로 헤쳐 모여야 한다. 성경을 신학의 시녀로 만든 죄를 회개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모든 신학의 학문이 성경적인 학문의 접근과 실천에 근거한 교육이 필요하다. 이론의 학문적인 근거와 또 신학적인 뿌리도 궁극적으로는 성경에 기초를 두어야 하는데 여전히 철학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신학교의 모든 학문은 성경 속에서 철저한 연구와 검증과 토의가 새롭게 이루어져 본질인 성경교육에 집중해야 한다.

예를 들면 현장의 교회성장학의 과목의 경우에 그것이 단순히 상황적인 성장으로만 이해되지 말고 성경적인 원리에 얼마나 근접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진단하면서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형태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장에서 나온 성공 사례를 다시 이론 학문으로 즉 성경신학적. 조직신학적. 교회사적으로 검토가 되면서 우리의 적용 가능성인 모델로 추출 되어야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교회의 성공 프로그램을 그대로 도입하는 식의 교육이 아닌 그것을 성경적, 신학적으로 비평적 성찰을 하면서 스스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도출해야 한다. 성경적인 원리와 방법으로 새롭게 응용하는 프락시스(praxis) 의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에서 실천(프락시스 praxis)은 실행(pratice)과 다르다. 실천은 오히려 실제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에서 시작하여 행해지고 있는 것을 성찰하고 이론화하는 것이다. 즉 프락시스(praxis)는 이론에 선행 시키는 것으로 행동(action) - 성찰 (reflection) - 행동(action)의 순환과정을 통해서 인간의 의식을 개혁하는 시행 방법이다. 반면에 재래식 기존 학습 방법은 원리 채택이 있은 후에 이에 따라 행동 계획을 수립해서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아니면 실행된 것을 외적으로 나타난 결과만 가지고 성찰 없이 이론화 하는 것이다.

교과목의 이원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현재 이론 학문과 실천 학문이 서로 만나야 하고 때로는 통합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성서학과 교수와 기독교교육학과 교수와 또는 설교학과 성서신학의 교수가 함께하는 팀티칭 과목이 있어야 한다. 학과목 자체도 이런 과목들이 마땅히 개설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성경 연구학과목은 어느 한 편으로 해결이 안 되는 성서학과 기독교 교육학과 영성학의 3과목이 함께 공존하는 과목이다. 나중에는 설교학까지 연결이 되면 최상이다. 이것은 어느 한 분야의 선택과목으로 들어 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요한 학문의 한 분야로 설정 되어야 하지만 지금 신학교 구조로는 어렵다.

지금 대다수의 신학교의 실정은 교회현장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성경 연구‘ (교회사역의 중심인 설교와 양육에 필수적인 부분)의 과목조차 기독교 교육의 한분야로 그것도 많은 것 중에 선택사항으로 이해되면서 오랫동안 서자 취급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무시하는 지금 신학교육의 현주소다.

 

교회 현장에서 절대적인

성경연구를 외면

신학교가 자기 전공과목에만 집중하다 보니 모든 과목을 통전적인 관점에서 연구하고 연결하는 능력이 약하다. 이런 영향력은 교회 현장에서도 어김없이 그대로 나타나 분리적, 개인주의적인 모습의 목회를 하게 되고 그것이 현재의 한국교회의 믿음과 생활의 분리된 모습을 낳았다.

또 한 가지는 서로 그물망처럼 나누어 졌고 분리 되어 있는 교과목의 단순화 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적어도 성서신학과 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의 통전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기초속에 이론 신학과 실천 신학의 통전화를 이루는 일이다. 성서신학을 이해 할 때 구약 없는 신약이 없고 신약 없는 신약이 없음에도 이것을 세부 전공으로 자꾸 분리시키는 것은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구약의 어느 선지서 어느 한 부분만 연구하면 구약학 박사를 주는 현행의 제도는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역사신학에서도 어느 한시대만 연구할 수 없는 연계적인 것임에도 그것을 분리하여 한 부분만 연구하게 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성서신학과 역사신학뿐만 아니라 실천신학과 조직신학에도 그대로 나타나 한 부분만 연구하는 기능인으로 전락하는 상황이 되고 있고 그것이 지금의 신학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으며 교회의 약화를 가져온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일치를 이루며 복원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부적으로 분리된 전공이 성경의 통전성을 헤치고 결국 학문과 전공이라는 옷을 입고 인본주의로 가게 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계속 분리하여 나가지 말고 서로 연계하면서 연속선상에서 신학교육의 일치를 이루는 전인적인 교과목의 새로운 구성이 시급하다. 지금이라도 성경의 원래의 모습으로 발상을 과감하게 전환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현대에 강조되고 있는 신학의 계속적인 세부적인 분리작업을 통하여 전문성을 강조하는 것은 모든 것의 해체를 의미할 수 있다, 이것은 무질서를 가져오는 무서운 패망의 요인이 된다. 하나님의 통전적인 세계를 자꾸 분리하는 것은 이원론의 영지주의적인 계략이다. 분리하면 할수록 능력은 상실되고 나중에는 인본주의로 전락하게 된다. 한 몸인 공동체를 분리적으로 이해하는 순간 그 공동체는 죽은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신학 역시 한 몸의 통전성을 상실하면 신학은 생명의 힘을 잃으면서 점차 사변신학, 화석신학이 된다.

 

최고의 교수를 영입하라

신학교여,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더 무너지기 전에 원형이요 생명이요 근원인 다바르인 성경으로 귀환하라. 그리하여 성경이 신학교를 이끌게 하라. 최고의 성경교수를 각 신학교가 영입하라. 그들로 하여금 신학교육을 주도하게 하라. 누구나 무료로 그들을 모실 수 있다. 성경66권의 저자를 교수로 영입하면 된다. 그러면 모든 신학교가 최고의 신학교가 될 수 있다.

이것에 소명을 가진 이사회와 총장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와 신학교, 골든타임이 얼마 없다. 이미 답은 나와 있다. 다만 순종하지 않을 뿐이다. 이 일에 부름 받은 한 사람 에스더 같은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순종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 일이 속히 일어나길 기도한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