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훈 대기자의 취재기】 강화도 봉천교회 이재익목사를 찾아서

대담 : 본헤럴드 대기자 임승훈목사

인터뷰이 : 이재익목사(봉천교회 담임)

일 자 : 202296일 전화인터뷰 및 현장방문

 

Q1. 먼저 본헤럴드 독자들에게 스스로를 소개해 주시죠.

= 저는 감신대를 졸업하고, 신대원을 다녔습니다. 봉천교회는 3번째 부임하여 담임하고 있으며 19954월에 부임했으니까 올해로 28년째가 되겠습니다.

 

Q2. 당시와 현재의 봉천교회의 상황을 비교해주세요.

= 부임해 보니까 교인분포는 60세 이상의 어르신이 93%를 자치하는 전형적인 농촌의 지역교회였습니다. 28년이 지난 지금으로 보면 70세 이하는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이겠습니다. 현재는 지역교회를 넘어서, 지역 외 지역 다시 말하면 강화읍내에서들 많이 출석하는 상황이지요. 강화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120년 이상의 기독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강화군내에는 185개의 교회 중에 감리교회는 130여개(4개의 지방회)71%가 넘는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Q3. 동리마다 교회들이 한두 개씩은 있다는 말인데요. 다른 교회의 형편은 어떠한지요.

= 동리마다 교회들이 있지만 대개가 80세 중반으로 넘어가는 형편이지요. 한번은 전통 있는 모교회의 헌신예배를 다녀왔는데 젊은이가 거의 없는 것을 보니 매우 안타까웠으며, 강화지역의 교회들이 대다수 다음세대를 잃었다고 보겠습니다. 실제로 가나안성도들이 많고요, 중직자의 자녀들마저도 미신자들이 다수라고 하겠습니다. 예전에는 교회에 가면 주일학교를 비롯해서 중고등부, 청년 등 피라미드의 교인구성을 보였지 않았나요?

 

Q4. 현재의 교회들이 노쇠화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 노쇠화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현대교회들이 더 이상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다니고 싶은 교회라는 매리트(또는 매력)를 잃었다고 하겠습니다. 쉬운 말로 목회자, 장로의 자녀 중에 우리 부모처럼 살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나는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라고 말하는 자녀들이 더 많을듯합니다. 뜻있는 자녀들은 말합니다. ‘교회에 나가겠다고 말하게 해 달라.’라고 말이죠.

부모들의 신앙에 대해서 가족들, 자녀들, 배우자들의 평가는 냉혹합니다. 과거처럼 주일을 성수한다? 십일조생활을 잘한다? 교회에 나가 봉사활동을 한다? 이런 이유로는 현대인들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부모들의 이중성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의 매리트라든지 가치에 대해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이죠. 신앙인이든, 불신앙이든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맛을 찾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실증이 나는 것이죠.

 

부모 세대들의 이중적 모습과

메리트를 잃은 교회

 

Q5. 그렇다면 교회의 매리트, 신앙인의 매력, 그것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 실례로 전도운동이나 전도세미나를 살펴볼까요? 우리 주변의 신자들을 우리교회로 데리고 오는데 불과합니다. 부흥회를 통하여 첫 신앙을 회복하고, 완전 회개하고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본래 목적이 아닌가요? 그래서 예전에는 부흥회를 가리켜 천국잔치라고 하였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 생명록에 새겨지는 천국잔치였죠. 예전에는 우리의 신앙을 뺏으려는 악한 세력이 다가오더라도 담대하게 목숨을 내놓겠다는 결의가 있었죠. 그런데 요즘 신앙생활을 잘한다 하면 주일성수와 헌금생활, 봉사활동 정도로 요약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내면의 변화는 없습니다. 중직자의 배우자도 자녀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저들도 속상해합니다.

예수를 믿고 새사람이 되었다.’라고 한다면 속사람예수의 사람이 되어야죠. ‘속사람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죠. 우리의 육적인 생활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하나님을 회복하여 변화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나의 신앙이 부모님, 담임목사님, 부흥강사님, 선배님만을 닮기 원한다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목표가 거기에 있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사람을 닮으려 하지 말고

예수님을 닮으려 하라

Q6. 우리들의 목표가 잘못된 것이로군요, 그럼 어디에 목표를 둬야 할까요?

= 예를 들어 보지요. 말발굽의 편자를 틀에서 찍어낸다 해보죠. 10100, 1000개를 같은 틀에서 찍어낼 때 꼭 같은 편자가 나올까요? 처음 열 개 스무 개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1001천개를 찍어낼 때는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죠.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전통대로 따라가 보자, 선배들을 따라해 보자. 이런 방식으로는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우리는 이제 다시금 말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살아보자.”, “성경의 원리가 무엇이냐라고요.

혹자는 그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요.” “왜 그렇게 만이죠?” 우리는 완벽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유치원생은 유치원생답게, 초등학생은 초등학생답게,............., 자기의 수준만큼 생활해나가고 이어나가면 되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께서 원하는 대로, 그분의 뜻대로? 그것에 10분의 1만큼이라도 살 수 있다면 부부싸움이라든지, 부부갈등은 녹아질 겁니다. ‘인상 쓰고, 욕지거리하고, 그건 안된다.’가 아니라 여기까지의 족함을 알면 변화되고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요?

 

Q7. 말씀을 바꾸어서 카페나무 이야기로 들어갈까 합니다. 굳이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카페를 매개로 그 변화를 시도했는가?

= 카페는 행복함 나누기입니다. 카페는 교회와 사회가 더 좋은 데로 나아가기 위한 도구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의 행복을 나누는겁니다. 우리 카페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90%가 넌 크리스천입니다. 지나가다 들렀든, 소문 듣고 들렀든 교회 앞마당에 위치한 카페잖아요, 교회로 반걸음 다가올 수 있는 위치인거죠.

주변에 시험든 사람들이 많지만 오게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들을 섬긴다든지, 도움을 준다든지, 변화를 주고자 해도 그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새가족이 왔을 때 저들과 만날 수 있는 장소는 교회당, 주택뿐이었지요. 집집마다 이웃과 관계형성이 잘 되어있다면 건물은 필요 없을 텐데....

어린아이들이 비, 바람이라도 막을 수 있는 시설이 있다면 좋으련만.... 그래서 교육관을 지으려했습니다. 제가 목사니까 먼저 기도했지요. 음성이 들리는 겁니다. “또 너희들만을 위한 교육관을 짓고자 하느냐?” 반문되면서,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지으면 좋겠다는 감동이 주어졌지요.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나눈다? 빵집은 어떨까? 소통과 관계를 만드는 것은 카페(최고의 퀄리티를 담보하는 빵과 커피를 만드는)가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너희들만 위한

공간을 지으려 하느냐?

 

Q8. 겉모습이나 속살은 꼭 같은데 카페나무를 운영하기 시작하고서는 여러 가지로 달라졌다는 말이군요.

=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죠. “교회(교우들)의 첫 인상이 너무 좋아요. 매너가 좋아요. 평안해요. 요즘 교인 같지 않아요.”라구요. 저는 이것을 우리교회의 속살 내보이기라고 표현합니다. 교회의 모습은 모두 근엄하죠. 하지만 너무 차갑고, 너도나도 사랑이라 외치지만 이기적이며, 제한적인 모습에 질려합니다.

저희교회는 18년째 회의 중에 다투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기획위원들은 큰 문제꺼리도 작은 것으로 만들 줄 압니다. 물을 잘 머금는 스펀지는 누가 두들겨 패도 아무소리 없이 맞아줍니다. 물을 퍼부으면 흠뻑 빨아들입니다. 웬만한 문제는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싸우는지 아시나요? 어린아이들이 잘 싸우는 법이지요. 성숙하지 못해서 싸움이 일어나고요.

 

Q9. 영적으로 성숙해졌다는 말씀이군요.

= 오래도록 신앙생활을 해도 영적으로 어린아이 같으면 싸우기를 잘하죠. 직분은 장로인데도 성숙하지 못하면 화를 잘 내죠.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영락없이 초신자에게 시비를 걸고 문제꺼리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주인인 사람은 예수의 사랑으로 품어줍니다. 신앙이 넉넉하고 장성한 사람은 장성한 사랑을 베풀어줍니다.

 

넉넉하고 장성한 사람이

장성한 사랑을 베풀어

저희 봉천교회는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변해있더군요. 교우들이 불편을 감수할 줄 알고, 싸움하는 소리가 없어졌으며, 흔히 세상말로 갑질한다.’라고 하죠. 그런 것이 없어졌습니다. 저희교회의 영적인 사다리는 역()피라미드 구조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일수록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상석에서 먹고자 하지 않으며, 먼저 앞치마를 두르고 섬기기를 좋아합니다. 새신자들을 귀빈(VIP)이라고 하는데요, VIP들을 잘 섬기고 받듭니다.

 

Q10. 섬김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매우 귀찮아하는데 목사님은 어떻게 해서 그런 교육이 가능했는지요.

=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은 아무리 설교해도 변화되지 않죠. 꾸준하고도 지속적인 신앙교육을 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새가족들이 우리교회에 정착하는 일은 성숙한 사랑으로 품어주어야 가능하죠. 섬김이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 우리가 받은 은혜를 되돌려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고, 이는 곧 훈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죠. 훈련을 시키니까 제일먼저 가정에 변화가 오더군요.

VIP(초신자들)을 위해 엄마, 아빠, 아이들이 함께 교회에 나와 작은 봉사를 하게 되고, 자매들은 파티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며, 형제들은 힘든 일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는 등 자연스런 변화들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Q11. 카페사역은 올해로 12년차가 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그러면 2010년부터 한 것이로군요.

= 사실 카페사역은 일반 기존교회의 모습과는 여간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 시설 내에 카페 하나 더 생겼다는 것으로는 카페사역이라 할 수 없죠. 그것은 하나의 매개일 뿐이죠. 공동체를 강조하고, 소그룹을 가르쳐야 하기에, 감리교의 구역조직인 속회를 활용했죠.

초기에는 고통스런 일들도 많았죠. 서로 사랑하는 원리, 서로 연합하는 원리들을 성경대로 가르치기 시작했죠. ‘건강한 교회는 섬김과 사랑이다.’라고 하니까 기존의 교회 직분자들, 특히 나를 이 교회로 초청해준 장로님을 중심으로 담임목사 추방운동이 일어나더군요. 참 힘들었죠. 그분은 명절 때가 되면 담임목사에게 잘했습니다. 식사 초대하고, 와이셔츠, 넥타이 선물에 용돈까지 극진히 섬기던 분이었는데 돌변하더군요.

왜냐하면 기존에 하던 틀을 깨야했고, 바꾸는 것은 힘든 일이거든요. 주일성수, 헌금, 교회 내 봉사 이것이 모범신앙의 기준은 아니잖아요? 담임목사만을 잘 섬기는 것이 신앙의 기준도 아니잖아요? 기존의 모범신자들은 믿음이 약한 분들에게 무례하게 굴었죠. 자신이 모든 것에 기준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죠. 교회에 나와 정착하지 못한 신자들은 그런 모멸을 감수해야 했죠. 얼마나 힘들겠어요. 새가족이 아무리 몰려온다 한들 누가 정착을 하겠습니까?

 

Q12. 교회를 개혁하고 목회의 틀을 바꾸어나간다고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 과정에서 고민도 많았겠습니다.

= 교회를 변화시켜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교우들 모두가 상급을 받게 하는 일은 무엇일까? 신앙인들의 행복의 기준을 다시 세우고, 목회의 기준도 다시 짜야 했죠. 나를 초청해준 한 사람의 원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과 목표에 맞도록 목회의 기준을 다시 세우기로 작정했으니 많이 불편했을 겁니다.

예배와 목회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을 긍휼히 여기고, 세상에서 손가락질 당하고 힘들게 살던 자들에게 위로를 주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저는 약 1년간 어려움을 겪습니다. 잘 인내하고 기도하며 견디었더니, 다수의 성도들이 목회자를 지지해주더군요, 대다수가 나를 지지해주니 그분은 한순간에 외톨이가 되고 말았죠.

어려움을 당하는 동안 계속해서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시도했습니다. 기도하는 분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방언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러시더군요. “넌 어떤 목회를 원하느냐? 큰 교회를 원하느냐? 재정이 넉넉한 교회를 원하느냐? 성도가 많은 교회를 원하느냐? 소돔과 고모라가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 받은 것을 모르느냐?” 하시더니 이 교회는 의인 10명이 없느냐?”라고 하시는 겁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죠. 여기서 훈련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시작한 것이죠. 그 말씀은 하나님을 훈련하라는 게 아니라 의인 1명을 기르는 것이라고 받아들였죠.

내가 청빙은 받았으나, 과제는 크고 많은데,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죠. 각종 세미나는 많은데 교회의 관리, 운영에 대한 것뿐이었습니다. 교인을 교인되게 하는 것, 타고난 죄성(罪性)을 알려주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도록 하는 것은 가르쳐주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국교회의 대다수 목회란 성경대로가 아니라, 선배들의 모습대로 따라가는 모양이라는데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Q13. 돌파리 의사가 환자를 죽인다는 말처럼 명의는 학력이 문제가 아니고 겉모습의 문제가 아닌 것이죠. 환자들을 살려내는 것이 관건인데 말이죠.

= 죄된 성도들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성품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라도록 할 것인가?’가 관건인 것을 발견하였죠. “의인 1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라고 하는 데 포커스를 맞추고 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도시교회든, 큰 교회든, 농촌교회든 작은 교회든 교회의 사정과 형편, 위치가 문제가 아니라, 교인들 특히 변화하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변화의 맛을 보여주고, 변화를 맛보게 하니까 신앙에 변화가 오고 가정에도 변화가 오고, 가정과 신앙에 변화가 오니, 교회의 능력이 회복됨을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녀세대가 부모세대를 이어서 건강한 교회로 이어지더니,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세워짐을 보게 되었습니다. 과거엔 내가 주인이었다면 이제는 주님이 주인이심을 고백하게 되어 주님께서 제자 삼고자 했던 바로 그런 제자들이 세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와 늘 싸우던 분들이 불편함을 극복하고 조강지처와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받는 모습이라든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남을 목격합니다. 일터에서 이웃과 함께 받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합니다.

 

Q14. 변화의 계기와 변화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과 보람도 크겠군요.

= 10년간 맨땅에서 헤딩하였죠. 그런데 2천년 중반부터 지금까지 많은 성도들이 생활 중에서 전도하는, 변화된 삶을 보게 됩니다. 정확히 2006년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구미남교회에서 가정교회세미나가 열렸습니다. 미국 휴스턴교회의 최영기목사를 강사로 초청하고 연 세미나에 제가 참가하고는 나의 고민을 털어냈죠. 하우스처치를 실행에 옮기기로 작정하였죠. 가정교회 세우기를 우리교회 변화의 촉매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가정교회 세우기가

교회 변화의 촉매

교육관, 생명의나무동을 세우고, 2006년부터 생각과 삶의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삶의 공부는 생각이 아니라 습관 바꾸기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나쁜)습관이란 거만한 말투, 부정적인 자세, 권위적인 태도 등입니다. 그에 대한 기준과 목표는 성경대로입니다. 주님이 약자들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자녀들을 어떻게 대하라 하든가요? 이웃을 어떻게 하라 명하셨습니까? 소외된 자, 배반한 자까지 우리 주님은 다시 훈련시켜 제자를 삼으셨지 않습니까?

 

그렇다. 강한 훈련만이 강한 군인을 만들고 전쟁에 승리하는 이치처럼, 강한 제자훈련을 통해서만이 의인은 만들어지며 하나님 나라 확장사역이 크게 전개될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갑작스레 진행된 전화인터뷰였지만 매우 만족하고 감사하였다. 기자는 이재익목사님과 커피나무동 미팅을 약속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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