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순 목사의 농촌선교이야기 (2)

 

윤형순 목사 / 감리교농촌선교훈련원, 천주교의정부교구 도시농부학교 담당 역임, 시민단체 텃밭보급소 교육팀장 역임
윤형순 목사 / 감리교농촌선교훈련원, 천주교의정부교구 도시농부학교 담당 역임, 시민단체 텃밭보급소 교육팀장 역임

앞에 쓴 글에서 기후위기의 현실과 그 원인, 그리고 인류 뿐 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들의 미래에 기후의 변화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될지 살펴보았다. 기후의 급격한 변화가 우리에게 미칠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농사와 식량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제품들은 날씨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온도의 변화에 따라 자동차의 생산량이 줄어들거나 핸드폰의 불량률이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나 농사는 기온이나 습도가 조금씩 오르고 내릴 때마다 수확량에 큰 변화가 온다. 장마가 휩쓸고 가면 그 해 농사를 접어야 하고 습도가 오르면 작물이 곰팡이나 병해충에 시달리게 된다. 폭염과 냉해로 수확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 한해 농사를 모두 망치게 되어 눈물을 흘리며 밭을 갈아엎기도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먹을거리는 그 지역 사람들의 수천 년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문화의 근본이다. 그렇기에 다른 종류의 채소나 곡류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 배추 1포기의 가격이 평소 가격의 5배 넘게 치솟아 15,000원까지 올라갔던 2009년의 배추파동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배추김치는 포기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였음을 잘 보여준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배추가 없으면 양배추로 김치를 담으면 된다고 말했다가 국민적 분노와 정치적 역풍을 맞았었다.

우리가 주식으로 삼는 쌀의 재배는 온도에 큰 영향을 받는다. 평균온도가 1도 올라갈 때마다 10퍼센트씩 수확이 감소된다. 20세기보다 평균기온이 2~3도 정도 상승될 것으로 예상되는 2040년 이후에는 우리나라의 쌀 수확량이 20~30퍼센트 감소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한 온도가 높아지면 해충과 병이 많아져서 농사에 더 큰 타격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2006년 충북지역의 과수원 6만 평에서 발생한 갈색여치의 피해는 2012년 경기남부 지역과 전라북도 장수군까지 번졌던 사례가 있다. 또한 바다의 온도상승은 강력한 태풍을 만들어낸다. 태풍으로 생기는 홍수는 양분을 머금은 지표면의 흙을 쓸어낸다. 그래서 농지의 지력을 약하게 만들고 작물의 수확량도 줄어든다. 기온의 상승은 농업의 중요한 한 축인 축산 역시 큰 타격을 받게 만든다. 축사의 온도가 오르면 가축의 폐사가 증가한다. 돼지를 키울 때 28도에서 32도로 기온이 4도 상승하는 경우 체중이 13퍼센트가 감소하고 새끼돼지의 폐사율이 58퍼센트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막대한 양의 북극 빙하가 녹으며 해수면이 높아질 경우 농경지가 물에 잠겨 줄어든다는 것이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3도 상승할 경우 해안지대의 30%가 바닷물에 잠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얕은 해안지대의 농경지 대부분이 바닷물에 잠기게 된다는 것이다. 일부 한랭지역에서는 얼어붙었던 땅이 녹아 농사가 가능해지겠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농경지가 바다에 잠기게 되어 결국 극심한 식량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농업은 기후위기의 문제에 있어서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가해자의 성격과 해결자의 성격을 함께 갖는다. 농업도 기후위기의 가해자 중 하나이다. 농업 분야에서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3.5퍼센트가 나오고 있다.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화학비료는 질산암모늄을 원료로 한다. 그래서 화학비료를 생산하고 사용할 때 중요한 온실가스 중 하나인 아산화질소를 배출한다. 대규모 관행농으로 가면 더욱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트랙터 같은 농기계와 건조기 같은 장비를 쓸 때 경유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 때 나온 배기가스가 온실가스가 되는 것이다. 또한 경유 뿐 아니라 석탄과 화목 같은 다양한 화석연료를 이용해서 비닐하우스나 온실의 난방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화석연료가 농작물의 생산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고기를 좀 더 많이 먹기 위해 더 많은 소와 돼지가 필요해졌고 이러한 고기의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 공장식 축산이 대세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축산방식에서 축분 폐기물과 함께 대량의 메탄가스가 나오고 있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0배나 빠르게 지구의 온도를 높이고 있다. 평소 우리가 고기를 먹는 횟수와 양을 10퍼센트만 줄여도 지구를 뜨겁게 만드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농산물의 유통 또한 온실가스의 발생이란 측면에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철도와 화물선, 비행기를 통해 바다를 건너 다른 대륙까지 과일과 곡물, 생선과 고기가 운송된다. 그렇게 미국산 소고기와 노르웨이산 고등어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우리 동네까지 배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운반되는 농축산물의 유통과정에서 발생되는 온실가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양이다. 농업과 관련된 유통 등의 분야까지 포함해서 계산하면 농업 분야의 온실가스의 발생량은 전체 온실가스 발생량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기후위기의 가해자로서의 농업에 관해 좀 더 구체적인 수치로 살펴보고자 한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2014년 보고서에 의하면 경제 분야별 온실가스의 배출 비율 중 농업, 삼림 및 기타 토지이용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4%를 차지한다. 2018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통계에 의하면 먹거리 분야에서 생산되는 온실가스가 26%에 이른다. 이를 다시 100%로 환산하여 분야별로 계산해보면 가축 및 어업에서 31%, 먹거리 공급망에서 18%, 작물 재배 27%, 토지이용 24% 등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자료에 의하면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에서 축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14.5%로 다른 자료에 나온 수치보다 더 큰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논밭이나 들판과 같은 공간은 농업을 통해 유지되며 온실가스를 줄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농경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난개발을 통해 숲이 파괴되고 있는 현재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온실가스 감축량은 계속 줄어들 것이고 상대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2019년의 IPCC 특별보고서는 기후위기의 현 상황과 연결된 농업과 먹거리의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농업분야가 전 세계 담수의 70%를 사용하고 있으며 농업과 임업의 면적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되었고 동시에 자연생태계(산림,초원,습지)가 손실되어 생물다양성이 감소되었다. 또한 1인당 육류 소비량이 많아지는 만큼 가축의 사료로 쓰이는 곡물의 소비량 또한 늘어나며 누군가는 굶주리게 되는 문제가 생겨났다. 식량을 공정하게 분배하지 못하는 이러한 문제 때문에 세계 인구 중 20억은 성인비만과 과체중에 시달리고 있으며 반대편 9억은 영양결핍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농업은 기후위기 문제를 풀어줄 해결사의 역할도 감당할 수 있다. 작물은 성장 과정에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땅속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화학 생산물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대규모의 관행농이 아닌 소규모의 유기농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비중을 꾸준히 낮춰주고 있다. 농경지의 토양은 작물의 생산기능 외에 탄소 저장, 유기물의 분해를 통한 자연 정화, 생물다양성 보존, 녹지보존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기능 중 앞서 이야기한 토양의 탄소 고정 능력을 살펴보면 작물재배를 통해 3천 평당 5.5톤까지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 또한 녹지를 만들고 유지해 증산작용을 하며 지표면과 대기의 온도를 낮춰준다. 농업이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의 심각한 상황을 되돌리고 환경파괴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농업·먹거리 운동의 대응 방향과 원칙을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온실가스 배출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근본적인 농사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화학비료, 각종 화학농약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 대량의 곡식을 소비하며 메탄가스를 줄이는 축산업의 규모를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유기농산물의 소비와 채소, 곡물의 소비를 장려하며 단일작물의 대량생산보다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단일작물을 대량생산하기 위한 각종 기계, 자재, 에너지의 사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고 축산분야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바다와 육지가 온실가스를 흡수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산과 숲, 들판과 농경지가 탄소를 흡수할 수 있도록 생물 자원을 보존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파괴되고 황폐하게 된 숲과 산림을 복원해야 할 것이다.

셋째, 누구나 먹을거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공정하게 나누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배고프지 않고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도록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는 정의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지역적인 차원에서부터 국가적인 차원, 그리고 전 지구적인 차원까지 식량으로 사용되는 농작물의 생산과 유통, 분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공정하게 변화시키고 먹을거리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한 예산과 정책, 국가간의 협력도 필요할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은 인간의 탐욕이다. 농사를 통해 얻는 농산물을 탐욕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먹을거리들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고 생명을 이어가게 만드는 식량이 아니라 돈을 벌어들이는 방편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막대한 양의 화석연료와 각종 화학물질을 사용하여 흙을 오염시키고 환경을 파괴하며 수많은 생명들을 죽음의 자리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기후위기의 상황을 가속시켜 인류의 파멸까지 앞당기게 될 것이다. 자연을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닮아가야 한다. 돈과 물질을 추구하기보다는 생명을 살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생명농업을 그 대안으로 삼아야 한다. 생명을 존중하는 철학과 가치관이 필요하다. 독성물질인 살충제와 제초제를 땅에 뿌리지 않으며 자연 속에서 다양한 생명들이 공생할 수 있도록 도울 때 스스로 자생력을 지닌 농업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비닐하우스에서 난방을 하며 겨울철에 여름 과일을 키우기보다는 절기에 따르는 농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다양성과 병해충 저항성을 지닌 토종종자를 지키며 낙엽과 퇴비, 빗물 같은 자연적인 자원을 순환시키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대규모 기업농보다는 수많은 소규모 가족농이 중심이 되어 여러 지역 공동체와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진정한 지역순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운동이 필요하다.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운송과정에서의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로컬푸드 운동에 기반을 둔 지역 먹거리 공동체가 필요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하자면 농업을 이익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농사는 모든 만물이 조화롭게 살아가게끔 만들어진 창조질서를 지키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일이다. 창조질서를 만드신 신에게 올리는 제사다. 지금 이 순간이 기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잘못된 가치관과 행동에서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다. 이러한 기후위기의 상황에서 농촌이 생명의 길을 지키는 마지막 요새임을 기억하고 농사로 생명을 살리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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