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인예배 설교문 (2)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이 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 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하시니“ (요한복음 11:11-15)

 

성경은 인생을 아침 안개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육체가 풀과 같다고 했습니다(벧전 1:24). 피었다가 사라지는 인생인 것입니다. 나사로는 죽었다가 살아난 인물입니다. 잠깐이었지만 그의 죽음의 순간을 통해 배우는 교훈이 있습니다.

 

1. 잠들었다고 합니다(11).

그러므로 깨우러 가노라고 하십니다. 죽음은 고달픈 세상에서 열심히 살다가 긴 잠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924절에 보면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도 "소녀가 죽은 것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 잔다는 말은 일어난다, 깨어난다는 말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죽어도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자고 일어나면 하늘나라에 있는 것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2. 믿음을 주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15).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주님은 빨리 가지 않으셨습니다. 그 결과 나사로는 죽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도를 갖고 늦추신 듯합니다.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주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 제자들에게 믿음을 갖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의 죽음은 가족들에게 치명적인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죽음은 그냥 무의미하게 지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교훈을 주고, 믿음을 갖게 합니다. 순교한 스데반의 죽음의 순 간을 지켜본 사울은 훗날 주님의 제자로 쓰임 받은 것을 알지 않습니까? 그는 스데반을 통해 죽음 이후를 새롭게 생각하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3. 부활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하셨습니다. 주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는 진리를 보여주시려고 나사로가 죽은 후에 찾으신 것입니다. 나사로는 죽었으나 아주 죽은 것이 아니고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찾아오자 부활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지 않습니까? 성도의 죽음의 현장에서 우리가 눈물을 흘려도 됩니다. 애통해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가족들도 매우 슬픈 시간을 보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죽음은 부활이 이어집니다. 당장에는 슬프지만, 부활의 소망을 갖고 애통하는 마음을 넉넉하게 이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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