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19:2-4)


 

●말씀 묵상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고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저희가 가로되 주여 저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19:1-27)


낙타가 바늘귀로그리고 부자 삭개오!

어제(38), 예루살렘 순례길 막바지에 이르신 예수께서, 여리고 길목에서 구걸하던 한 소경을 고치셨고, 오늘은 여리고의 악명 높은 세리장삭개오를 구원시킨 일화이다. (오늘 열 므나의 비유또한 묵상하게 된다.) 삭개오는 우리가 유년 주일학교 시절부터 많이 들어서 귀에 익숙한 이름이다. 그가 유난히 키가 작고’ ‘뽕나무에 올라간 일로 유명하다. 누가는 그를 이렇게 소개한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1-4, 개정)

 

여리고는 애굽 노예살이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거쳐, 약속의 땅 가나안에 첫발을 디딘 곳임을 어제 묵상에서 언급하였다. 영적靈的으로 2의 출애굽 여정의 끝자락에 이른 예수님께서 이곳 여리고에 들어오신 것은 큰 상징적 의미가 있다.

지리적으로도 여리고는 예루살렘의 관문이라 할 수 있다. 갈릴리를 포함한 북쪽 지역의 유대인들이 종교의례를 지키기 위해 (적대적인 사마리아를 피하여) 예루살렘(성전)에 가려면 여리고를 통과해야만 했다. 요단강 하류 유역의 비옥한(오아시스)땅으로 야자수 도성이라 불릴 정도로 대추야자palm dates와 발삼balsam향료가 대량 생산되었고, 그 무역으로 부촌을 이루었다. (예루살렘 성전과 가까운 거리라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도 많이 모여 살았다.)

이런 지리적 여건과 무역의 요지를 이룬 여리고에 자리한 세관이야말로 거액의 세금을 거둬들여 로마 정부 재정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곳의 세관장이 바로 삭개오였다. 세리란 동족의 혈세를 뜯어 일부는 로마에 바치고 대부분은 착복하는 직업으로 알려져 유대사회에서는 매국노죄인으로 취급했다. 성경에도 세리와 죄인으로 적시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관장이요 부자인 삭개오라고 소개한 의도가 이해된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예수께서 이곳 여리고를 지나신다는 소문이 삭개오에게 들렸다. 어제 여리고 길목에서 구걸하던 소경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를 그토록 간절하게 불렀던 것처럼, 아니 그 보다 훨씬 더 애타게 기다리던 삭개오였던 것 같다. 그 메시아 예수님을 보려고 뛰어나갔지만 사정은 만만치 않았다.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3-4, 개정).

키가 작다는 말은 신체적으로 왜소한 체구를 뜻하지만, 사회적, 도덕적으로 죄인 곧 장애인(난쟁이? cf.21:20) 취급하는 뭇사람들의 무서운 눈초리를 피해 길가의 뽕나무로 숨어 들어간 것 같다. 만일 그 사람들 앞에 나타났으면 몰매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놀랄 일이 생겼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5)

 

아니 이게 말이나 될 소리야? 뭇사람들은 웅성거렸지만,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였다(6). 아니나 다를까!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7).

수군거리다murmur는 광야 생활 중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였다(디아공귀조, 14:2, LXX)와 어원(공귀조)이 같다.(27. 15:1-10 묵상.) 사도 바울이 엄히 경고한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10:10).

수군거리고원망해서는 아니 될 일을 그들이 감행한 것을 암시한다.

삭개오가 그들의 수군거림에 응대한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8)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한삭개오가 주님으로 부르는 것을 보라. 단순한 존칭이 아니고, 그의 진솔한 신앙고백이다. 어떻든, 이 구절이 번역 상에 큰 물의를 빚어왔다. 주겠사오며I will give(NRSV), “갚겠나이다I will pay back는 미래시제로서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표현인데, (희랍어)원문은 현재시제로서 지금껏 그렇게 해 오고 있음(didomi=I give)을 표현한다.

이 글은 문맥상 미래형 현재시제로 번역해야 주님을 만난 삭개오가 회개하고 당장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나누어 줄 것이라는 미래형 선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해명이다. (여기 소유란 모든 재산이라기 보다 수입을 뜻한다. 수입의 절반을로 해석 할 수 있다.)

그러나, 삭개오가 지금 주님과 수군거리는뭇사람들 앞에 서서자기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하소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자기 자랑이 아니다.)그러므로 원문 그대로 진행형 현재시제로 번역하고 또한 그렇게 이해함이 옳다. 세리들을 몽똥그려 모두 죄인으로, 세리장을 큰 죄인(괴수)으로 정죄하는 것은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하소연이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팎에서 이같은 일들, 곧 내 눈에 거슬리는 사람을 악인(죄인) 취급하는demonize (심지어 이단으로까지 정죄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결코 삭개오를 죄인으로 부른 적이 없다.

지금이 아니라면, 그럼 언제 삭개오가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되었을까? 세례 요한이 요단강 유역(여리고 근교)에서 세례를 베풀 때, 많은 세리들이 세례를 받았는데 삭개오 역시 거기 있었던 것 같다.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하고(3:12-13).

그들에게 요한이 외쳤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3:8).

그는 또한 예고하기를 자기는 그리스도(메시아)가 아니고,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3:15) 그분을 기다리라고 외쳤다. 그때로부터 삭개오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짧은 목을 길게 빼고기다려왔는데, 드디어 그 날이 왔다. 그러나 뭇사람들의 정죄하는 무서운 눈초리를 피해 뽕나무위로 숨어들었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그리스도께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다정스레 자기 이름을 부르며(cf.10:3),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자청까지 하시니, 이런 황공무지가 어디 또 있겠는가!

삭개오가 아무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삶을 살았을지라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예수님을 그리스도요 메시아로 영접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는 일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를 암시한다.

예수님께서 마침내 구원을 선포하신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9)

 

예수님께 등을 돌린 한 부자 관원(18:23)과는 달리, 세관장 부자 삭개오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일을(18:25) 마침내 성사시켰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목적을 요약하신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0)

 

잃어버린 자죄인은 같지 않다. ‘잃은 자, ‘잘못된 장소in the wrong place에 빠진 상태를 뜻한다. 15장에서 부터 잃은 양” “잃은 은전” “잃은 아들의 비유를 통하여 보여주신 잃은 자를 찾아서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회복, 곧 구원을 이루신다. 아브라함의 자손 신분을 회복시킨다.

, 여기 예루살렘을 바로 목전에 둔 여리고에서, (로마의 앞잡이) 세관장 부자 삭개오의 집에 구원이 임하는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제자들을 비롯한 뭇사람들의 메시아 왕국에 대한 기대가 최고조에 달했다.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11)

 

우이독경牛耳讀經 이라고나 해둘까. 예수님께서 수차례 (누가에 의하면 6) (십자가)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먼저 올 것을 예고하셨지만, 그를 따르던 무리(제자들 포함)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메시아 왕국이 당장에 임할 줄로 생각하여격앙되어 있었다. 선입관, 편견, 오해의 감정이 깊게 박혀 얼마나 바꾸기 어려운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비유를 들어 교정하신다. 또한, 누가복음 고유의 비유로서, 기록될 당시에는 지연되는 그리스도의 재림Parousia에 대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오해를 풀어주려는 목적이 짙게 깔려있다. 비유라기보다, 현대어법으로는 우화寓話, allegory로 분류된다.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12-14, 개정)

 

역사적 실화를 배경으로 이 비유를 말씀하셨기에, 당시의 청중은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유대 역사가 Josephus에 의하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헤롯 대왕이 죽을 때(4 BCE), 왕국을 삼등분하여 헤롯 안티파스, 헤롯 필립, 그리고 아켈라오Archelaus 세 아들에게 나눠줄 것을 유언하였다. 그런데 왕권승계는 대국 로마 황제의 비준을 받아야만 했다. 유대 지역을 분할받은 (장남) 아켈라오(2:22)가 로마 황제 아구스도Augustus(2:1)의 비준을 받으려고, “먼 나라로마로 떠났다. 그 사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50명 사절단을 아구스도 황제에게 급파하여 극악무도한 아켈라오의 유대왕권 승계를 불허토록 상소했다. 결국 황제는 아켈라오를 왕이 아닌 총독Ethnarch·Governor으로 재가했다. 이 일로 앙심을 품은 아켈라오는 돌아오는 즉시 자기의 왕위 승계를 반대한 유대 지도자들을 무참히 살해했다(19:27.참조).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있는 속국들이 왕권승계 비준을 받는 과정은 긴 세월이 걸렸고, 비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사례도 간혹 있었다.

이 우화에서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떠난 귀인은 예수님 자신을 뜻한다. 불과 며칠 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고, 장사 된지 사흘 만에 부활하여 승천하셨다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재림하여 천하만국을 다스릴 그날을 암시하는 비유이다. 그러나 그 뜻을 제자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메시아 왕국,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는그들에게 이 우화를 주신 것이다. (마태복음25:14-30의 달란트 비유와 흡사하지만 전혀 다른 비유임을 말해둔다.)

왕이 다시 올(재림) 때까지 어떻게 살며 기다릴 것인가를 말씀하셨다. 열 명의 종에게 각기 한 므나씩 나눠 주며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명령하였다. 므나는 희랍 화폐(은화) 단위로서 성인의 3개월 품삯에 해당한다. (므나는 달란트의 1/60 가치) 이런 소량의 금액을 장사밑천으로 삼기는 극히 어려운 실정이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각 사람의 재능대로" 다른 양의 금액을 맡겼지만, 므나의 비유에서는 모든 종에게 한 므나씩 고루 맡겼다. 이 우화에서 므나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모든 종에게 한 므나씩 고루 나누어 준 것을 보면, 그리고 앞에서 삭개오의 집에 임한 구원을 선포하신 것을 참조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균일하게 임한) 구원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받은 것을 뜻함이 선명해진다. 누가의 중심 주제는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임을 우리는 이미 확증한 바 있다. 더욱이, 이 우화를 말씀하신 동기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임할 줄로 생각하는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누가는 소개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나라(34일에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already지금 여기here & now우리 가운데임하였지만(17:21), 그러나 아직not yet 완성되지는 않았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왕위를 받아 가지고다시 오실(재림)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내는 것이, 한 므나씩 맡은 종들의 장사할의무와 책임이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우리들이 지금 걷고 있는 신앙 순례길을 충실하게 진력할 것을 암시한다. 주인이 믿고 맡긴 므나를 가지고 그 종들이 어떻게 장사했는지 들어보자.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15-19)

 

하나님 나라의 보상은, ‘작은 일에 충성된 착한종들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신다.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법칙 때문이다. 사랑이란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법이다(23:11). 우리 주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22:27b).

반면에,악하고게으른 종은 그 본전까지도 잃게 된다.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고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20-24)

 

누가의 신학 관점에서 말하면,하나님의 나라수건으로 싸서방치해 두고, ‘죽어서 천국에 가겠다저 세상적other-worldly신앙인을 악하고게으른 종으로 규탄하는 것이다. 그 어떤 (능력)도 사용하지 않고 싸매 두면소실되는 법이다.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26)

 

한 므나를 수건으로 싸두고방치했던 그 종은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무서워함이라라며 도리어 주인을 탓한다. 주인을 탓하고, 하나님(운명)을 탓하고, 환경(이웃)을 탓하느라 아까운 세월(인생)을 낭비하였다. 다른 착하고 충성된 종들사랑으로섬겼지만, 악하고 게으른 종두려움으로맡겨진 일에 불충한 것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14:18, 개정).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

마라나타!(주여 어서 오소서! 고전16:22b, 공동)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1. “부자 관원(18:23)세관장 부자 삭개오의 다른 점을 비교해 보자.

2. “열 므나 비유(누가의) 하나님 나라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으로 벌어질 마지막 대 심판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

3. 누가복음 19:8 - “현재 시제인 원문 구절을 미래 시제로 번역함으로 야기되는 문제점들을 다시 생각해 보자.

 

●기도

 

세리장 부자 삭개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종식하고, 하나님의 자녀 (‘아브라함의 자손’) 된 신분을 바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이웃 사랑을 위하여 간구하자. 또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다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들로 살아갈 것을 재다짐하는 기도를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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