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의 영성 “내려놓음, 신뢰, 만족”

 

김영수 목사│명지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호서대학교 일반대학원 목회상담학 수료,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신학 졸업 (Th.D), 나사렛대학교 음악목회학과 외래교수, 프레이즈 예술신학교 음악치료과 주임교수, 평택대학교 평생교육원 음악치료 외래교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상담대학원 외래교수로 그의 저서로는 [심방성구찬송집 (침신대 출판부)], [세메이온 기적강해 3권(갈릴리출판사)], [하늘나라 찬양강해 2권 (갈릴리 출판사)], [아가쏘스 늘찬양강해 전집 10권(기쁜날 출판사)], [성경말씀에 따른 관련 찬송 (기쁜날 출판사)], [찬양과 예배의 실제(기쁜날 출판사)], [야곱의 12아들과 그 지파(기쁜날 출판사)], [21세기 찬송가 해설강해 6권(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양예배핸드북(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송가큐티 (도서출판 누가)], [21세기 새찬송가 해설집(기쁜날 출판사)], [여성인물강해(기쁜날 출판사)], [목회종합자료백과 21세기 찬송가큐티3권(기쁜날출판사)], [월간교회성장 설교뱅크에 찬송설교 2년 6개월 정기 연재], [찬송가 강해 630편 완성]가 있다.
김영수 목사│명지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호서대학교 일반대학원 목회상담학 수료,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신학 졸업 (Th.D), 나사렛대학교 음악목회학과 외래교수, 프레이즈 예술신학교 음악치료과 주임교수, 평택대학교 평생교육원 음악치료 외래교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상담대학원 외래교수로 그의 저서로는 [심방성구찬송집 (침신대 출판부)], [세메이온 기적강해 3권(갈릴리출판사)], [하늘나라 찬양강해 2권 (갈릴리 출판사)], [아가쏘스 늘찬양강해 전집 10권(기쁜날 출판사)], [성경말씀에 따른 관련 찬송 (기쁜날 출판사)], [찬양과 예배의 실제(기쁜날 출판사)], [야곱의 12아들과 그 지파(기쁜날 출판사)], [21세기 찬송가 해설강해 6권(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양예배핸드북(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송가큐티 (도서출판 누가)], [21세기 새찬송가 해설집(기쁜날 출판사)], [여성인물강해(기쁜날 출판사)], [목회종합자료백과 21세기 찬송가큐티3권(기쁜날출판사)], [월간교회성장 설교뱅크에 찬송설교 2년 6개월 정기 연재], [찬송가 강해 630편 완성]가 있다.

많은 교회가 코로나 엔데믹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좀처럼 채워지지 않고 있는 예배당 좌석을 보면서 고민하고 있다. 일부 교회는 성도 수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30%선으로 떨어진 채 회복이 되지 않고 헌금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쪽에서는 소그룹 사역과 성경공부 모임이 활성화되었다고 하고, 유명 목회자의 설교나 찬양 사역 유튜브 영상 인기가 높아졌다고 한다. 일명 '가나안' 성도가 늘었고 비제도권 교회가 늘어났다고 한다. 예배당에 가지 않는 것을 당연시 여기며 본 교회나 타교회 예배 영상을 보는데 만족하는 성도들이 늘었다. 이들을 디지털 노마드족 또는 디지털 순례자라고 부른다.

세상에서도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첨단 기기의 보급으로 인해 고정된 한 장소가 아닌 휴양지에서 자유롭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프리랜서들이 늘어가고 있다. 회사에서조차 IT계열의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자택 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시공간의 물리적 족쇄에서 풀려난 사람들이 하나둘 집을 팔고 슈트케이스와 배낭만 들고 지구 구석구석으로 삶의 반경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런 노마드 시대에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영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래서 노마드의 영성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며 주제를 마감하려고 한다.

 

. 내려놓음

코로나 19로 인해 자연스럽게 교회를 떠나 디지털 순례자가 된 가나안 성도들처럼, 나는 IMF로 인해 건축했던 교회를 내려놓고 상가교회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최근에는 상가마저 내려놓고 카페교회에서 두 교회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는 동안 성도 수는 급감했다. 하지만 목회자의 영성과 성실함, 교회 부흥을 위한 목회적 열정 등이 항상 교회당의 규모, 성도의 수와 비례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기에 낙심하지 않고 메타버스의 교회로 도약하기 위한 진통을 겪는 것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얻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가정교회를 하지 않는 것은 성도들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디지털 영성을 추구하다 보면 디지털 영지주의에 빠질 수 있듯이 나 또한 그렇게 될 수 있기에 예배와 설교와 공동체 모임을 통한 영성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공유교회를 유지하려고 하는 이유다.

여기서 나는 노마드의 영성의 첫 번째인 '내려놓음'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내가 생각했던 가치나 이념을 넘어서는 가치를 발견했을 때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날 수 있는 용기와 기쁨과 담대함이 노마드의 핵심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새롭고 자유한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은혜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다.

교회라는 틀, 목회자의 권위의식, 존경, 지도자, 기득권 등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돈이 전부인 줄 알며 살던 사람이 삶의 즐거움을 발견했을 때 돈에 매여 살던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고 승진, 사업의 규모가 더 커지는 것만을 향해 살던 사람이 건강의 중요성을 알고 난 후에는 다른 가치를 품게 된다. 학부모 역시 다른 아이보다 조금 더 뛰어나게 만들려고 유명하다는 학원에 자녀를 보낸다. 자녀의 마음과 행복에는 관심이 없다. 세상에서 뛰어나게 되는 것이 행복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땅이 전부라고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 그렇다. 보이는 것, 소유와 성취에 매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영원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명한 말이 있다.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지만 가정은 살 수 없고 침대는 살 수 있지만 잠은 살 수 없으며 관계는 만들 수 있지만 사랑은 경험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수준의 가치에서 벗어나 더 중요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때 새롭고 자유한 삶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닌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천국이라고 말하는 본향(本鄕), 아버지의 집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영원한 가치를 발견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 이 땅의 것에 매인다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삶이다.

모세가 바로의 궁궐에서 머물고 있을 때 나라를 구원하려는 의협심과 왕자로서의 권위, 배움, 학식, 무술 등 얼마나 많은 것이 모세를 얽어매놓고 있었을까? 모세 나름대로 쓰임을 받고자 무척이나 애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절박감, 애씀이 허사가 되어 미디안 광야로 쫓겨나 양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좋은 학식과 무술과 궁궐의 예를 터득한 사람인데, 하나님은 어째서 모세를 광야로 내보낸 것일까?

그 중심에는 내려놓음의 비밀과 축복을 발견케 하기 위함이다.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모세는 하루하루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그 가운데 거하는 하나님을 찾도록 훈련시켰다.

성공적인 하루란,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성취해 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날의 일과 중에 네가 나와 얼마나 소통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훈련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해야 할 일에 대한 목록이, 교회성장이 우상이 되고 있다.

모세는 광야에서 이런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형성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최우선의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내는 지도자로 세워주셨다.

믿음의 사람들이 해야 할 가장 우선되고 중요한 일은 내 곁에 가까이 주님을 모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차하면 일과 시간에 쫓겨 하루를 내 의지로 살아놓고 자기만족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려놓음은 늘 깨어 주님의 인도와 사랑을 구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윤활유다. 이 윤활유가 떨어지면 모든 기계가 뻑뻑해지고 마모가 쉽게 진행되어 파손되듯이 무너짐이 없도록 우리를 지켜주는 안전장치가 내려놓음이다. 욕심, 서두름, 명예, 권력, , 자기주장 등 어떤 것이든지 주님과의 동행을 가로막는 것은 하루빨리 내려놓기를 원한다.

 

. 신뢰

모세가 미디안 광야 가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름을 받을 때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과의 신뢰의 문제였다.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라.”(3:10)는 사명을 받을 때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4:10)며 핑계를 댄다. 그러면서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4:13)하며 버티기를 시작한다. 이런 불신뢰의 모세를 각종 이적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한다. 그러니 담대하게 나가라며 사명을 부여한다.

이스라엘 백성도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주시는 데도 조금만 어렵고 힘이 들면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한다. 심지어 홍해가 앞을 막고 있고 뒤에서는 애굽 군사들이 군대를 이끌고 따라올 때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14:11)며 원망한다.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속에서 자신과 하나님을 원망하며 애굽의 포로 생활로 돌아가려는 백성들을 바라보고 모세는 어떤 생각과 어떤 행동을 보였나?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13)고 말했다.

모세의 배짱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서 나왔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이라는 확신과 신뢰,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으니 하나님이 나를 지키실 것이라는 확신과 신뢰,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돌보실 것이라는 확신과 신뢰,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니 이번에도 크신 능력을 베푸실 것이라는 확신과 신뢰, 하나님이 지금까지 동행하셨으니 앞으로도 동행하실 것이라는 신뢰와 확신에서 나온 말이다.

모세가 이렇게 되기까지 그 신뢰의 핵심에는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출 3:5)는 말씀이 있었다. 진정한 믿음은 주님을 신뢰하고 내 발의 신을 벗는 것이다. 즉 내 방법, 내 유익, 내 명예 등을 포기하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떠한 환난이 닥치더라도 절대로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푯대 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믿음이 세상이 이긴다.(요일 5:4)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모든 문제를 전폭적으로 내어 맡기고 믿음으로 달려나감으로 여호와 닛시 승리의 기쁨을 맛보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만족 (감사)

노마드의 영성 세 번째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다. 힘이 들고 어려울 때나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아니할 때도 주님의 인도하심과 채워주심을 믿고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살전 5:16-18)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해야 이유는, 사탄·마귀와 대적하기 위해서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가 기쁨을 빼앗아 간다. 감사하는 마음도 빼앗아 간다. 성경은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26:41)고 말씀하셨다. 산에 걸려서 넘어지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돌멩이에 걸려서 넘어지는 사람은 많다.’ 이스라엘 백성이 큰 성 여리고는 싸워서 이겼는데 그 다음 아이성에 가서는 패배했다. ,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더불어 감사해야 한다. 감사하는 삶의 특징은 그 삶에 기쁨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영국의 BBC뉴스는 정기적으로 종교 생활을 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수명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규칙적으로 교회 행사에 참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혈압이 낮았으며 우울, 불안증이 적었고 면역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북캐롤라이나주()의 노인 4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에서는 최근 6년간 사망한 사람들 중에 22.9%가 정기적으로 교회를 다니던 노인이었고 37.4%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말세의 징조는 감사하지 않는 것이다. 로마서 121절에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지적하였다.

베두인 유목민들은 그 황량한 사막에서 양 떼를 치면서도 늘 웃음과 미소를 잃지 않고 밝은 미래를 꿈꾸며 살아간다. 한눈에 봐도 유목민들의 삶이 초라하기 그지없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기뻐할 수 있는 것은 항상 만족하기 때문이다. 저들은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온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래서 지금 삶이 힘들어도 미래를 보며 감사하며 살아간다.

43일부터 수원에 있는 초··고등학교에 가서 학교 전반시설에 대한 안전·보건 컨설팅을 하고 있다. 수원까지 출·퇴근 하는 것도 힘든데 낯선 학교 길을 찾아 방문하는 것은 더욱 힘이 들고 어렵다. 그런데 월요일 연무초교를 방문했다가 (네비게이션 인도하는 대로) 정문이 폐쇄되어 골목에 주차했는데 학교 측과 큰 원한이 있는 사람이 주차 시비를 거는 바람에 엄한 꼴을 당했다. 밀쳐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쪘지만, 다행히 발꿈치만 다쳐서 안티푸라민 바르고 견디고 있다. 이런 어려움이 다가올 때 낙심과 원망의 마귀가 나를 잡아 올 수 있다. 그때 감사 찬양의 노래를 부른다.

환경의 주관자 예수님께서 반갑지 않은 상황을 처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로 인한 감사를 주님께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 마음속의 분노가 가라앉으며, 또한 주님이 그 상황 속에서 주의 뜻을 실현하여 그 속에 선한 일이 나타나도록 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날 어떻게 인도하시든지 항상 감사하는 노마드의 삶을 살게 하소서! 노마드의 영성을 통해 주님과의 일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걸어가게 하소서!”

무얼 그리 걱정하며 염려하며 아파하는가? “네 발의 신을 벗고.”(출 3:5) 토기장이신 참 목자인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73:28)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갈 때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삶은 항상 복되고 아름다운 천국 노마드의 삶이 될 수 있다.

결코 노마드의 삶이 만만하지는 않다. 외롭고 힘들다. 하지만 노마드의 현장에서 겪는 아픔을 통해 자신을 겸손히 내려놓으며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구하며 주님을 노래하는 이 귀한 노마드의 행복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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