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나서 삶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지갑 속에 가지고 다니는 아내의 사진을 꺼내서 본다고 한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어려운 순간에도 아내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란다. 그의 친구가 신기해서 그에게 물었다. “친구여, 자네 아내 사진을 들여다본다면 어떻게 용기가 생기나?”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자네 내가 아내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뭐라고 생각하는지 아나? 이것도 감당했는데 무엇을 못 감당하랴’라는 생각이 들어서 새 힘을 얻는다네!”라고 하더란다. 살면서 얼마나 시달렸으면 아내의 사진을 보면 힘을 낸다고 말할까? 웃자고 만들어 낸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한편으로 참으로 애증이 깊이 담긴 이야기라 생각된다. 

여러분, 사랑의 반대가 무엇인지 아시는가? 미움? 아니다. 무관심이다. 무관심하게 되면 잔소리도 하지 않고 간섭도 하지 않고 남남이 되고 만다. 한마디로 사랑이 없는 거다. 


1. 호세아가 낳은 세 자녀

본문은 바로 하나님의 애증에 관한 이야기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 고멜을 데려다 아내로 삼으라고 명하셨다. 호세아는 많은 생각 속에서 마침내 음란한 여인 고멜을 데려와 가정을 꾸몄다. 그래서 자녀를 낳았는데, 아들 둘에 딸 하나 이상적인 가정을 꾸몄다. 자녀들의 이름은 이스르엘, 로루하마. 그리고 로암미다. 그 뜻은 이렇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Jezreel)”(3~5절) 
이 이름은 이스라엘(Israel)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뜻은 정 반대다. 아는 대로 이스라엘은 야곱이 형과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얍복강 가애서 밤새도록 고민하고 있을 때 나타난 천사와 싸워 받은 이름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으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셨다. 
* 창 32:26~28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 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호세아의 첫 아들의 이름이 이스라엘과 비슷하다. 이스르엘! 뜻은 "하나님이 흩으시다(God scatters)," '하나님이 심으신다(God sows)'란 의미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싸워 이긴 승리의 이름이라면, 이스르엘은 저주의 이름이다. 첫아들의 이름이 저주인 “흩어버리겠다”고 하시니 참으로 당황스럽고 난감했을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이름을 지었을까? 이미 하나님께서 고멜을 아내로 맞아 드리라고 하실 때, 이유를 “나라가 크게 음란해졌기 때문이다(호 1:2)”. 그 결과로 얻어진 첫 아들 이름이 “이스르엘”이나 호세아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흩어버리겠다고 작명하신 것에 대하여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둘째는 딸로 “로루하마(lo-rohamah)”(6~7절) 
뜻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 자”다. 앞 자 "로(lo)"란 말은 부정을 나타낸다. “루하마(ruhamah)”는 특히 아버지가 아들에게 베풀어 주는 사랑, 관심, 그리고 긍휼을 의미한다(시 103:13). 이처럼 루하마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적극적으로 베푸시는 사랑과 긍휼이다(사 30:18). 그런데,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첫 딸을 “로루하마”라 지으라고 명하셨다. 
* 호 1:6~7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원문에는 '다시는(6절)' 앞에 접속사 ‘왜냐하면(ki, for)"이 있다. 이유를 밝히는 말이다. 6절원문에는 한글 번역에 생략된 “계속하여(alosep, continue), 더하여” 란 말이 있다. 하나님께서 ’더는 계속하여 긍휼히 여길 수 없다(I have no more have mercy. NIV, I will no longer show love to the house of Israel)‘는 강한 뜻을 밝히신 이름이 로루하마다. 그러니까, 로루하마란 이름은 아버지가 딸에게 계속하여 혹은 끝까지 긍휼을 베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부른 이름이다. 이럴 수 있는가? 얼마나 예쁜 딸인데 -- 여기서 딸은 북조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셋째는 둘째 아들로 “로암미(lo-Ammi) (8~9절) 
뜻은 “내 백성이 아니다(not my people)”이다. 원문에는 “나는 네 편이 되지 않을 것이다(I my self will not be for you)."로 되어있다. 생각해 보면, 이 “로암미”란 이름은 앞의 장남 이스르엘, 장녀 로루하마보다 강력하다. 즉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는 앞의 ‘이스르엘의 저주’, ‘로루하마의 은총이 떠남’보다 더 강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임을 부인’하는 절망적 표현이다. 이는 자기 백성을 이방인, 남과 같이 취급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를 원문에서는 “나는 너를 위해 있지 않다 혹은 나는 너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I will not be for you, or to you)"라고 표현했다. 즉 ‘하나님께서 더는 네 편이 되지 않겠다!’는 뜻이다. 다윗은 항상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신뢰했다. 
* 시 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 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그렇다. 하나님은 본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다. 피난처요 반석이요, 소망이며 구원이셨다. 그들의 아버지이시며 요새셨다. 하나님이 내 편이라면 무엇이 걱정되고 누구를 두려워하겠는가?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항상 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신뢰했다.
* 시 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그런데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더는 그런 역할을 하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차남을 로암미로 부르라고 하신 것이다. 얼마나 절망스러운 계시적 이름인가!


2. 작명의 의도와 역사적 배경

흥미로운 점은 하나님께서 이런 이름들을 지으라고 명하실 때 의도가 있고 역사적인 배경이 있어서 호세아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이 이 자식들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알 수 있도록 하셨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첫 아들을 저주의 이름 “이스르엘”로 지으라는 의도를 이렇게 설명하셨다. 
* 호 1:4~5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장차 예후의 집이 어떻게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 사건의 배경을 알려면 엘리야 선지자 시대로 올라가야 한다. 
* 왕상 19:15~17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엘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세워주신 사명에 따라 엘리사가 후임 선지자로 세우고, 그 예언에 따라 예후는 아합의 왕자 70명 살해하고 바알 신당을 전멸시켜(왕하 10:19~24).무너트리고 북조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이런 그를 하나님은 칭찬하셨다. 
* 왕하 10:30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그 역시 완전하게 하나님께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정치 권력에 심취하여 여로보함과 같이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길로 갔다. 결국 그의 왕가는 4 대가 지난 후(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함 2세, 스가랴) 무너졌다. ‘’호세아의 활동 시기가 여로보함 2 세 시대이니까, 혼란스러운 나라가 계속될 것 즉 하나님의 저주가 지속적으로 진행될 것을 예언하시며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명명하신 것이다. 

둘째, “로루하마”라고 명명하신 이유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유를 밝히신다. 
* 호 1: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북조 이스라엘에 대한 이름을 주시면서 남조 유다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왜 그럴까?  역사적으로 볼 때, 북조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하여 주전 722년경에 철저하게 망한다.  하나님께서 로루하마라 이름 지은 대로 전혀 긍휼을 베풀어 주지 않은 결과다. 그에 비하여 남조 유다는 비록 100여 년이 지난 후에 바벨론에 주전 658년에 망하긴 했으나, 바벨론 포로에서 70년이 지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된다.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유다와 달리 이스라엘에게는 없음을 로루하마라 작명하신 이류를 밝히셨다.  


3. 애증어린 하나님의 사랑

이렇게 강력하게 북조 이스라엘을 저주와 외면으로 사랑과 긍휼을 베풀지 않으신 하나님은 아예 “로암미! 내 백성이 아니다!” 라고 하신 그 하나님이 반전의 메시지를 선언하셨다.  
* 호 1:10~2:1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무슨 말인가? 하나님이 어떻게 표리부동하실 수 있는가? 그렇게 저주와 미움으로 내 팽겨 친 북조 이스라엘 10지파에게 대하여 이런 반전의 메시지 즉 놀라운 축복을 하실 수 있는 것인가? 참으로 애증이 함께 철철 넘치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철저하게 앗시리아에 패하여 산지사방에 흩어져 민족 신앙과 정기를 다 잃어버렸을 이스라엘을 다시 모으시고 부흥시키셔서 셀 수 없을 만큼 위대한 민족을 이르게 하시겠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다시 “내 백성(암미)”이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부르시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 모두가 하나가 되어 통일 이스라엘이 되게 하시겠다는 예언이다. 이는 이스르엘이 이스라엘이 되고, 백성이 아닌 자에게 내 백성이라 부르시고, 긍휼을 베풀지 않았단 미움의 자매 즉 이스라엘 민족을 긍휼과 사랑을 듬뿍 부어 위대한 민족, 위대한 나라로 만드시겠다는 계시이다. 

이 계시는 다름 아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로 그 언약의 성취이다. 
* 창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신실하신 하나님의 예언 성취

이로써 우리가 깨닫는 귀한 영적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다. 
본문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미워하시고 긍휼을 베푸시고 저주까지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런 행위는 사랑의 행위이다. 살아있는 존재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다. 단순히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정성을 쏟으면 가상하게 여기셔서 무조건 받으시고 내가 요구하는 대로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지금도 동일한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민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둘째, 살아계신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사람이 낳기 전에 이름을 명명하면서 역사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 지를 보여주신다. 본문에서 보듯이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 각각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장차 일어날 역사의 주인이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역사 가운데서 당신의 구원의 뜻을 드러내어 실행하신다. 이는 시간과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 개인은 물론,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믿는 성도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식이다.  

셋째, 하나님은 애증의 역사 속에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완성하신다. 
* 호 1:11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장차 유다와 이스라엘이 한 가지로 통일국가가 되어 한 우두머리를 지도자로 세울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역사적으로 통일 이스라엘은 다윗 왕 시대에 성취되었다. 그러나 호세아 활동 시기는 그 시대보다 훨씬 후대이다. 그러면 이 예언의 말씀 무엇인가? 한 우두머리는 누구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장차 오셔서 갈기갈기 찢어진 세계의 언어와 풍습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하나로 모으시고 구원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라는 예언이다.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구원의 역사가 완성될 것을 계시하셨다. 
요계 5: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결론

하나님은 그저 지어 놓기만 하시고 무관심하신 신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까지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아시는가? 인생이 하나님의 저주로 불행하고 힘들다고 생각되는가? 지금 이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이 놀라운 말씀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임을 알기 바란다.  
* 요일 4:9~12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 이 놀라운 진리의 말씀으로 구원의 뜻을 살피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지금도 역사는 요동치고 있습니다. 전염병과 전쟁, 각종 자연 재해로 온 인류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택한 백성들을 품으시고 말씀으로 경고하시고 구원의 진리로 인도하심을 깊이 느끼게 하옵소서. 주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구원을 얻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박 병은목사(덴버 둘로스 장로교회 담임)

●학력: 총신대학교 기독교 철학과 (BA)
            합동신학대학 대학원(M. Div)
            Talbot Theological Seminary (M. TH)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CA (D. Min 수료)
 
 ●경력: 남서울 교회(서울, 교육전도사)  
            성림 교회(안양, 개척)
            오렌지카운티 한미교회(Garden Grove, CA)
            그랜드래피츠 한인교회(Grand Rapids, MI)
            둘로스 장로교회(Denver,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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