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다고 한다. 출산율 0.79 이는 한 여성이 평생 한 명의 자녀도 낳지 않는다는 뜻이다. 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소멸될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가정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점점 더 늘어간다.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결혼 그리고 가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인생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1b~2)

선지자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음란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맞아 가정을 이루어 세 자녀까지 두었다. 그런데 아내 고멜이 결혼 전에 사귀었던 남자를 못 잊고 가출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다시 명하셨다. 
* 호 3:1b~2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이 구절의 원문은 “다시 가라. 친구에 의하여 그리고 매춘으로 사랑받는 그 여인을 다시 사랑하다”이다. “또 가서”란 말은 이미 앞에서 한번 하신 바를 한 번 더 하셨다는 뜻이다. 즉 첫 번하신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호 1:2)”는 명령을 다시 하셨다는 것이다. “다시 가서!” 다른 남자의 사랑을 받아 음란한 여인이 된 바로 그 여자를 사랑하고 너를 위하여 아내로 데리고 오라“는 명이다. 

이때가 어떤 상황인가? 아내가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상황”이다. 여기서 말하는 “타인(another) “은 남편의 사랑을 받으면서 동시에 다른 남성과 사귀어 양다리 걸친 음부가 되었음을 뜻하는 표현이다.”타인“이란 단어가 용례 상 남편으로도 사용되기도 했기 때문이다(렘 3:20). 즉 고멜은 남편의 사랑 속에서 살면서 먼저 사귀었던 전 애인을 못 잊고 가출하여 음란에 빠진 불륜을 해고 있다.  

하나님은 왜 이 명령을 다시 하신 것일까? 1절이 설명한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어떤 행위 즉 다른 신을 섬기며 건포도 과자(떡)을 즐긴다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호세아 너는 고멜을 사랑하고 아내로 삼아 데려오라!’라고 명하셨다. 

‘건포도 과자(떡)’는 고급 음식을 상징한다. 일례로 다윗 왕이 법궤를 다윗 성에 올려 올 때 이를 기뻐하면서 온 백성에게 기념으로 나누어 준 것이 바로 이 건포도 떡이었다(삼하 6:19). 아마도 고멜은 그 값진 음식과 사치 즉 쾌락과 생계를 위하여 옛 애인을 따라갔을 것이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 여자”를 사랑하라고 다시 명하셨다. 이 여인에 대한 이런 설명이 있다. 

* Lange, "그 여자는 고멜로, 호세아 앞에 간음을 행한 여자로 나타난 바로 그 여자이다. “ 
* Pusay, "이 때, 이 여자 고멜은 이미 호세아와 별거하여 살았음을 뜻한다. “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첫째 이때 호세아와 고멜과의 관계. 둘째 지불한 물건의 가치이다.  

1) 먼저 둘 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별거 상황일까 아니면 이혼 상태일까? 
호세아가 지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그에게 그녀에 대한 권리 즉 소유권이 당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Pusay는 별거를, Richard Chisholm은 이혼을 주장한다(Robert Chisholm Jr. handbook on the Prophets, p 346). 

만약 호세아가 여전히 아내에 대한 소유권 혹은 권리를 갖고 있었다면, 굳이 값을 지불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간음한 그 타인을 법으로 제재했을 것이다. 그가 그러지 못하고 값을 지불한 것은  이미 그녀는 누군가의 소유가 되었기에 때문일 것이다. 합리적인 설명으로 보인다.
  
2) 다음은 호세아가 고멜을 데려오기 위하여 지불한 것이 얼마의 가치가 될까? 
은 15개는 15세겔에 해당한다. 한 호멜 반 역시 15세겔 정도 된다. 모두 30세겔이다. 이 정도는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출애굽기 기준으로 당시 종 한 사람의 몸값에 해당한다.
* 출 21:32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의 상전에게 줄 것이요 그 소는 죽일 것이니라. 

이 과정에서 호세아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배경에는 바로 이스라엘의 간교한 배교로 하나님을 속인 죄에 대한 질책이 깔려 있다. 이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다. 
* 렘 3:20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의 남편을 속이고 떠나감 같이 너희가 확실히 나를 속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즉 이스라엘 백성은 고멜과 같이 남편을 속이고 옛 애인을 못 잊고 다시 음란에 빠진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은 거짓말을 하고 바알과 각종 우상을 섬기며 타락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은 과연 호세아가 가출한 아내를 데려오려는 것이 율법적으로 허용되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당시 율법 내에서는 허용되었다(삿 19:2). 
* 레 22:13 만일 그가 과부가 되든지 이혼을 당하든지 자식이 없이 그의 친정에 돌아와서 젊었을 때와 같으면 그는 그의 아버지 몫의 음식을 먹을 것이나 일반인은 먹지 못할 것이니라.  


2. 호세아의 애정 어린 간청(3절)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에 순종하여 고멜을 다시 데려오면서 돈을 지불하고 아내에게 간청한다.
* 호 3:3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무슨 말일까? 이는 호세아가 다시 맞은 아내 고멜에게, ‘오랫동안 나와 사랑을 나누자! 다른 남자와 음행하지 말고! 만약 네가 그렇게 한다면 나는 너와 더는 관계하지 않겠다!’라는 애정 어린 간정이면서 강력한 경고다. 

여기서 “많은 날 동안”이 문제의 표현이다. 이 말은 ‘여러 날, 어느 정도 긴 기간’을 뜻한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어느 정도 긴 세월을 함께 지내자!’는 제안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지내고”의 원문의 의미는 ‘너는 잠잠히 앉아서 나를 기다리라(Thou shalt sit still for me)! “이다. 즉 ‘이스라엘이 지난 행실을 회개하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오심을 사모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는 너를 데려왔기는 하지만, 아직 완전한 사랑을 나눌 단계는 아니기에 일정기간 자숙하며 조용히 기다리라는 뜻이다. 얼마나 인간적인 하나님이신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시편 기자의 기도와 같은 자세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 시 30:7~10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하나님은 고멜이 남편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쳐 회개하고 새 마음으로 사랑을 나눌 마음을 준비해야 하듯이, 북조 이스라엘 역시 깊은 자각과 회개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3b)” 이 구절에 대하여 두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네가(고멜) 외간 남자와 관계한다면, 나(호세아)도 너와 더는 관계하지 않겠다(부정적 해석, Keil)’. 둘째, 으로, “네가 만약 외간 남자와 관계하지 않는다면, 나는 고멜과만 관계하겠다(긍정적 해석, Calvin).”

즉 3절은 얼마나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애정이 변하지 않는 지를 잘 보여준다. 호세아는 아마도 이런 대화를 빈들에 가서, 지금으로 말하면, 둘만의 호젓한 곳으로 나가서 깊은 사랑의 대화를 했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세상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 온 돌 탕 교인이 부끄러움과 연약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자에게 성령으로 깊은 사랑과 위로 그리고 격려하신다. 이는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 눅 15:20~22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 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가락지’는 아들의 자격이 회복되는 것이고, ‘좋은 옷’은 아들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의미가 있고 신발은 신분을 보장하는 모습을 갖게 한다. 풍성한 다. 이처럼 남편(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갔던 아내(돌탕 성도)에게 긍휼과 사랑이 풍성한 남편(하나님)은 그를 기쁘게 맞으시고 품으시며 원래의 신분인 하나님의 자녀(성도)로 받아주신다.


3. 이스라엘의 남편이신 하나님의 애정 어린 호소(4절)

호세아의 간청과 같이 이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호소한다. 
* 호 3:4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3절과 4절의 “많은 날”은 역사의 진행을 생각하게 한다. 즉 북조 이스라엘은 남조 유대와 달리 예루살렘에 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하고 우상 숭배를 하며 타락했기에 주전 722년경에 앗시리아에 멸망당하고 만다. 당시 앗시리아는 매우 잔인하고 무자비하여 점령한 민족을 다른 지역으로 산개하여 그 민족 말살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이후 북조 이스라엘 10 지파는 당시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산지사방에 흩어져 살았다. 이에 반하여, 남조 유다는 주전 586년경에 바벨론에 져서 바벨론 포로로 잡혀 70년 후에 고토로 돌아왔다. 이 역사 속에서 북조 이스라엘은 “많은 날 동안 왕, 지도자, 제사, 주상, 에봇, 드라빔도 없는” 시대의 지속을 예언한 것이다. 

즉 3절의 “많은 날”은 북조 10 지파가 역사 속에서 겪는 시련과 환란을 통하여 겪게 될 회개와 그 과정에서 터득하게 되는 민족적 체질 변화를 위한 필요 시간을 말한다면, 4절의 “많은 날”은 그 이스라엘의 긴 시간 포로 기간을 뜻한다고 하겠다.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하여 마치 그 긴 시간 동안 고멜에게 “홀로 조용히 나를 기다리라”고 당부한 것 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오직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깊이 생각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그러면 모세 언약을 갱신한 새 언약을 체결하고 그에게 약속한 포도원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구속사 적으로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풍성한 구원을 약속하신다. 
* 호 2:14~15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우리 주께서 이렇게 설명하셨다. 
* 요 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나님은 이 역사 속에서 북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산지사방에 흩어져 왕도 지도자도 없는 국가 상실, 그 어떤 기념할 기념물, 종교적 행사를 위한 에봇과 드라빔과 같은 가족 수호신을 섬기는 종교조차도 제대로 갖지 못할 것이고, 즐겁게 지키는 그 어떤 축제 문화도 즐기지 못하는 절망스러운 상황을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이유는 북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 우상을 섬긴 때문이다. 이 예언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비참한 고난과 환란 속에서 오랫동안 겪게 될 것인지는 지난 역사가 잘 증명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 역시 이 점을 경고했다. 이는 성도가 만약 타락하면 그 후에 어떤 영적 빈곤과 비참함을 겪게 될 지를 깊이 생각하라는 경고다.   
* 히 6: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한편, 이 말씀은 한번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가진 자는 말씀과 기도 가운데 순종과 사모함으로 더욱 성숙된 자리에 까지 나가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성공적으로 완주해야 함을 격려하고 있다.  사도 바울 역시 성도의 구원의 완전함을 이렇게 언급하며 격려한다. 
* 롬 8:35, 37~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4. 화해와 보장된 언약 회복(5절)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장차 이루어질 언약 갱신과 회복 그리고 주어질 혜택을 말씀하신다. 
* 호 3: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이스라엘의 회복은 간단히 유다지파 만의 회복이 아니다. 이 고토 회복에는 이스라엘 자손 즉 야곱의 12 지파 모두 즉 다윗의 통일 국가 당시의 백성 모두의 회복이다. 역사적으로 4절에서 보았듯이 북조 이스라엘은 산지사방에 다 흩어져서 유대 지파와 온전한 일치를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서로간의 깊은 알력이 있었다. 예수님 당시 사마리아 지역 주민들은 유다 지파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했다. 그 사실을 예수께서 전도한 수가 성 여인 사건에 잘 나타난다. 
* 요 4: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하나님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에 나아가리라!” 라고 예언하셨다. 이는 다윗의 혈통으로 오신 예수께서 구속을 완성하셔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등극하시고 온 세상의 구원의 역사를 완수하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이 예언은 선지자들의 핵심이다(민24:14; 사2:2; 렘30:9; 겔 34:23~24, 37:24~25; 미 4:1~2).
* 사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 미 4:1~2 끝 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이 말씀들은 호세아 3:5 말씀의 반복이다. 즉 언약 백성은 때가 되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회복되어 겸손하게 손을 들고 하나님께 나와 허락하신 각종 좋은 것들을 받아 누리게 될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마 1:1)’이신 예수께서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로 오셔서 온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하셔서(막 1:15),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다. 복음을 믿는 그 나라 백성은 차별이 없이 그 복음을 마음으로 믿어(롬 10:10) 의롭게 되어 구원을 얻고 하나님 나라 즉 영생을 누리게 된다.

 

결론

대부분은 자기 자신의 욕심과 정욕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껏 살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욕심에 따른 것이다. 그 결과, 비참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성도는 이 세상을 본받지 않고 합리적인 생각과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다(롬 12:1~2). 그들에게 하나님은 풍성한 은혜를 주신다. 

야고보 선생의 권면을 들어보자.
* 약 1:14~17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하나님의 치밀하고 끈질긴 언약의 시행은 우리가 잘못할 그때마다 즉각 대응하여 다루지 않으시고 긴 시간 동안 기다리시며 살피시며 인도하신다. 주께서는 지금도 우리 인생의 전 여정을 다루어 가신다. 이 점을 기억하시라. 살아계신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과 긍휼 그리고 인내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그러기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성실과 절제 그리고 인내로 주의 오심을 사모하며 내 속에서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예민하게 반응하길 바란다. 그러면 현재는 암울하고 힘들더라도 장차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질 모든 좋은 것(Goodness of God)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게 될 것이다.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이 놀라운 진리의 말씀으로 비록 한심한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께 불순한 생활을 하지만 인내하시며 계속하여 격려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미 받은 은혜를 기억하여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우리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으로 부터 주어지는 각가지 신령하고 풍성한 은총을 받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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