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역사의 무대 위에서 그냥 살지 않고 질문을 하며 살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질문을 하며 살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던진 질문을 보면 처음에는 대상세계, 그러니까 인간의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을 보며 자연이란 무엇인가? 자연은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집중했다. 이런 질문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을 규명해 왔다. 또 자연에 대해 질문하는 인간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도 인간은 여러 관점 하에 인간을 나름대로 규명하고 있다. 아직도 잘 모르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하지만 나름대로 인간을 이해하고 산다.

또 인간은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이 어떻게 존재하시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 그것은 인간이 살면서 외부의 영향이나 주입, 그리고 학습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신형상과 함께 인간의 마음에 신의식을 심어 주셨기 때문이다. 이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물을 수밖에 없고, 또 하나님을 끊임없이 찾을 수밖에 없다. 아마 인간의 이런 모습은 신의식 때문에 인간이 존재하는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질문만 하지 않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이성의존 사색을 통한 방법이고, 또 하나는 계시의존사색을 통한 방법이다.

전자에 속한 자들은 유한한 인간의 마음에 신의 관념이 있다는 것은 인간 밖에 관념의 실체인 신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또 나타나 보이는 현상과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인과율에 기초하여 원인 없는 제 1원인인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한다, 또 우주 안에는 일정불변의 법칙과 질서가 있고 자신을 아름답게 디자인 하는데, 이것을 보면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한다. 또 인간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인 양심의 소리가 있는데, 이를 보면 양심을 주신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유한한 인간이 자신의 이성에 의존해서 논증한 것으로서 무한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는 데는 가치가 있으나 하나님을 만나고 믿게는 할 수 없다.

후자에 속한 자들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을 파악할 수 없기에 무한한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에게 찾아 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신 계시를 의존하고 그것을 사색하는 것이다. 즉 계시를 믿음으로 받고 중생이성으로 사색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존재를 바로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시의존사색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방식이 무엇인지, 또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또 그 특성은 무엇인지, 또 삼위일체라는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입증해주는 성경말씀은 무엇인지, 또 삼위일체를 반대한 대표적 이단들과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자들은 누구인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그러면 계시의존사색을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존재방식은 무엇일까? 이것은 이 땅에 존재하는 피조물, 즉 식물, 짐승,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존재방식이다, 이것은 하나님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존재방식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존재방식이란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계신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유한한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는 신비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이 성경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존재방식일 뿐 아니라, 기독교의 핵심교리이기에 성경계시에 근거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존재방식인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존재방식은 하나님이 영원세계에서 내신적(內神的)계시(서철원, 신학서론, 쿰란출판사,p.159. 2018.)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결정하셨다. 본래 인간은 피조물로서 의존적인 존재이기에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자존하신 분이기에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이에 하나님은 영원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내신적 계시, 즉 자기 안으로의 계시를 통해 결정하셨다. 그것이 곧,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존재방식인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하나님이라는 본체(실체;ὁμοουσία, essence)가 하나인데, 이 본체 안에 각각 독립된 인격체인 성부, 성자(영원발생), 성령(영원출래) 삼위(位)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삼위가 본체(실체)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신적본체가 동일하기에 성부, 성자, 성령이 완전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된다. 또 성부, 성자, 성령 삼위는 다른 위들로부터 분리되지 않고도 구별된, 그리고 다른 위에 종속되지 않은 인격체(지·정·의)이다. 그리고 삼위는 권세와 영광이 동등하다. 그러하기에 성부는 성자가 아니다, 성자는 성부가 아니다, 성자는 성령이 아니다. 성령은 성자가 아니다. 성령은 성부가 아니다. 성부는 성령이 아니라는 진술이 가능해진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내신적(內神的) 계시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결정하실 때 그 일이 영원세계에서의 일이기에 시간세계에서의 피조물처럼 의지에 의한 결정이 아니고 본성에 의한 결정이라는 것이다(서철원, 교리사, 총신대학교출판부, pp.255-226. 2003.). 또 하나는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 삼위일체로 결정하신 것은 반드시 자신이 영원세계에서 그렇게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이 시간세계에서 창조, 구속, 적용, 섭리 등의 창조경륜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존재 방식인 삼위일체가 영원세계에서 내신적(內神的) 계시를 통해 본성적으로, 또는 필연적으로 결정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은 자기의 객관화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존재방식을 시간세계에 보여 주셨다(서철원, 하나님론, 쿰란 출판사, op. p.77.2018.).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 한 후에 “나는 아버지와 하나”(요10:30), “하나님의 아들”(마11:27, 26:63~64; 막14:61~62; 요17:1~5,24), ‘아버지와 완전히 동일한 한 하나님’(요10:30), “로고스(말씀)가 곧 하나님”(요1:1), “만물이 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요1:3),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지목하고 피 흘려 교회를 사심”(행20:28). “아버지가 행하는 심판을 아들이 심판”(요5:27), ’주 예수 자신이 성령 보혜사를 파송‘(요16:7), ’성령이 주 예수의 것을 말함‘(요16:13~15), 등에서 알 수 있다.

이런 진술을 통해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핵심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세 가지의 중요한 명제를 찾을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은 영원히 서로 구별된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삼위)으로 존재하신다. 둘째,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삼위)은 각각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셋째,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삼위)은 각각 하나님으로서 신적본체가 동일하시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신적본체(하나님)는 한 분이지만 신성을 가진 분(위)은 셋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의 핵심진리인 삼위일체란 용어가 성경에 있는가? 사실 삼위일체란 용어가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 즉 한분 하나님 안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계신다는 사실을 성경전체 속에 분명히, 그리고 풍부하게 계시해 주고 있다.

이에 삼위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보자. 첫째, 삼위의 존재를 계시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자신을 부를 때 ‘우리’라는 복수대명사를 사용한데서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창3:22),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창11:7), 이 외 사6:8,창32:24,30,창16:7,13,삿13:18,사9:6 등이 있다.

둘째, 삼위의 신성을 계시하고 있다. 성부가 하나님이심은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고전8:6) 이 외 갈1:1 등에 있다, 성자가 하나님이심은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로마서 9:5). 그 외 요1:1,14, 요20:28 등이 있다, 성령이 하나님이심은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너의 마음을 가득 채워 성령께 거짓말하게 하며, 또 토지 대금 일부를 감추느냐?...네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였느니라(행5:3,4). 이 외에 요15:26 등이 있다.

셋째, 삼위가 인격체임을 계시하고 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눅3:21,22). 그 외에 요14:16, 마28:19, 고후13:13, 눅1:35, 고전12:4-6,벧전1:2 등이 있다.

넷째, 삼위사이의 인격적 교제를 계시하고 있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마17:5). “아버지 이제 저를 영광스럽게 하여 주옵소서.”(요17:5) 이 외에 요15:10 등이 있다. 결국 이런 점에서 한 분 하나님 안에 삼위가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일체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보자. 이는 삼위가 존재하면서도 하나님이라는 본체가 하나라는 것의 근거를 말한다. 대표적인 성경구절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6:4), 또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4))이다.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5-6),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전 8: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5:44),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롬3:30). 이 외에 신4:35, 왕상8:60, 딤전6:15, 딤전1:17 등이 있다. 이런 점에서 삼위가 본체인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이 홀로 한 분이시고 그 한 분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가 존재한다는 하나님의 존재방식이 기독교의 핵심진리임을 바로 인식할 수 있다.

여기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경세)적 삼위일체로 구분할 수 있다. 이때 내재적 삼위일체는 존재(관계)의 관점에서 한 분 하나님이 삼위로 존재한다는 것이고, 경륜(경세)적 삼위일체란 사역의 관점에서 구속사 속에서 성부 하나님(창조사역 주도), 성자 하나님(구속사역 주도), 성령 하나님(구속적용사역 주도)이 함께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김광채, 고대교리사, p.171 보라상사. 2003.) 이 둘 중에서 어느 것 하나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그것은 존재와 사역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내재적 삼위일체는 경륜적 삼위일체를 전제하고, 경륜적 삼위일체는 내재적 삼위일체 하나님을 전제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의 핵심진리인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대표이단들이 있다. 이것은 교리사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세 가지 명제 중 하나를 부인한 것으로서 양태론(사벨리우스 주의), 아리우스주의, 삼신론 등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백금산, 신론, 부흥과개혁사,p.103. 2014).

사벨리우스주의(양태론)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를 부인하는 이단이다. 이들은 유일신론적인 배경에서 삼위 하나님 사이의 구별을 부인하고 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라는 것만 강조한다. 이것은 성부수난설((Patripassianismus)을 주장한 노예토스(Noetus of Smyrna,200?-225)와 노에투스의 제자요 반 몬타누스 주의자였던 프락세아스(Praxeas)가 시작하고 사벨리우스에 의해 주장되었다. 이들의 주장은 1인 3역이다. 즉 성부, 성자, 성령을 단지 한 하나님의 세 가지 다른 표현양식으로 보는 것이다(서철원, 교리사,pp.159-164.). 예컨대 하나님은 창조 때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백성에게 율법을 주실 때는 성부로, 예수님의 성육신부터 승천 때까지의 구속 시대에는 성자로, 오순절 이후 신약시대의 교회시대는 성령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사벨리우스 주의는 주후 263년 로마회의에서 로마 교황 칼리스투스(Callistus, 217-222)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었다(김광채, 고대 교리사, 보리상사. pp.122-127.2003).

아리우스주의는 삼위가 각각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부인하는 이단이다. 이것은 데오도투스(그리스도의 신성부인하고 그리스도는 단순한 인간)가 시작하고 아리우스에 의해 주장되었다. 그 내용은 아리우스가 니케아공회의(주후 325년)때 아다나시우스에 맞서 주장한 것으로서 성자 예수님은 다른 피조물이 창조되기 전에 먼저 창조되었고, 다른 피조물보다는 최고의 피조물로서 성부와 동일본체가 아니고 유사본체로 본 것이다. 예컨대 성자가 인간으로 태어나 30년의 사생활을 살고 공생활을 시작하며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라.”고 했는데, 이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성자는 성부와 동일본체(ὁμοουσιος)가 아니고 유사본체(ὁμοίουσιος)라는 것이다. 결국 아리우스는 니케아 공회의(주후325년)때 이단으로 정죄되고, 성자는 성부와 동일본체(아다나시우스의 주장)임을 천명하였다.

삼신론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가지고 있는 일체성을 부인하는 이단이다. 이것은 위격(位格)의 고유성을 주장한 나머지 본질(본체)의 일치를 부정하고, '3개의 본체'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 이것은 본체와 위격의 구별을 혼돈한데서 비롯된 것으로서 삼위의 신적 본체가 다른 세 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 이것은 정통 삼위일체 교리와의 비교를 통해 이해가 가능하다. 즉 정통 삼위일체 교리는 신적 본체는 하나이고, 위격이 셋임을 주장하지만, 삼신론은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 갖고 있는 신적 본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김광채, op. cit, p.337.) 이런 점에서 삼신론은 신적 본체가 셋이고, 위격이 셋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삼신론은 세 위격이 갖고 있는 신적본체가 동일하지 않고 서로 다르다는 개념이 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6세기의 그리스도 단성론자 가운데서 요하네스 피토포누수를 중심으로 하는 일파에 의해 주장되었다. 중세에는 유명론자(唯名論者)인 로셀리노(Roscelinus), 실재론자인 포레(Gilbert de La Porree) 및 포레의 영향을 받은 요아킴(Joachim)에 의해 주장되었으나 이 혐의로 인해 그는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삼신론을 신봉하는 주요 교단은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몰몬교)가 있다.

결국 이런 이단들의 등장에 기독교회는 니케아 공회의(주후325년), 콘스탄틴노플 공회의(주후 381년), 에베소 공회의(주후431년), 칼케톤 공회의(주후451년)에서 이단들의 잘못된 주장을 단호히 불식시키고, 한 분 하나님 안에 삼위가 존재하신다(three in oneness of God)는 기독교의 핵심진리인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공교회가 이렇게 하나님의 존재방식인 삼위일체 교리를 오랜 세월동안 성경계시에 근거하여 확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을 보면 여전히 인간의 이성의존사색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방식인 삼위일체를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하고 분석하는 자들과 이 교리를 실제로 부정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근세신학자를 예로 든다면 슐라이어마허(1768-1834), 칼 발트(1886-1968), 폴 틸리히(1886-1965), 칼 라아너(1904-1984), 위르겐 몰트만(1926-) 등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정통 삼위일체 교리를 왜곡 내지는 부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잘못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근세신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교회 안에도 예상 외로 많다. 일반 평신도뿐만 아니라, 사역자들에게도 적지 않게 많다. 특히 한국교회 안에 종속론과 양태론이 흔하게 나타나고 있다. 종속론과 양태론은 그 자체도 문제지만, 쉽게 이단사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또 왜곡된 삼위일체론을 실제로 믿고 있는 다양한 이단집단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의 핵심진리인 삼위일체 하나님 교리를 하루 속히 사역자들과 교인들에게 확립시킬 필요를 절실히 느낀다. 그것은 삼위일체 교리가 기독교의 핵심교리로서 다른 종교(예컨대, 유대교와 이슬람교: 신적본질-하나, 인격의 수-하나, 다신교의 삼신론: 신적본질-셋, 인격의 수-셋)와 구별시켜 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을 바로 믿지 않는 여러 이단들과도 구별시켜 주는 믿음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방식인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데 그치지 말고 그 하나님을 바로 믿고 바로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그때 비로소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최낙범 박사(총신교수, 새순교회): 중앙대학교 철학과 졸업(B.A), 총신대신학대학원 및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 졸업(Th.M), 숭실대학교 대학원 졸업(Th.M), 미,Kernel University 대학원 졸업(Th.D), 총신 조직신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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