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은 모든 서신에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인사말이 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살전1:1, 엡1:2, 빌1:2, 골1:1). 이 문장은 상투적인 언어가 아니라 바울 신학과 신앙의 핵심 뼈대이다.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1)사도바울의 신앙의 출발점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상투적인 언어가 아니다. 바울의 신앙이고 믿음이다. 나의 존재 근거가 무엇인가? 나의 인생의 시작점이 무엇인가? 땅의 사람이 영의 사람이 된 근거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그리스도로부터이다.
(2)사도바울의 선교의 시작도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3)로마서 1장 1,2절 말씀에 사도바울의 믿음의 정체성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다. 사람의 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종은 내 의지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 종은 내 자유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 나의 고집보다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마지막 자신을 사도로 부르셨다.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축복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삶의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를 일생 지킨다. 왜 바보목사로 살아가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사도로, 제자로, 목회자로 부르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부르심을 경험한 사람들은 생애를 다 던져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과거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그 순간이 더 가치 있기에 다 던져도 아깝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떠날 수 가 없다. 그리고 자발적인 헌신의 길을 걸어간다.
주님의 부르심이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택정함을 받았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직접 주신 사명을 평생 잊지 않았다. 이방인을 위해 택함 받은 사도의 사명을 잊지 않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헌신의 길을 걸어갔다. 생명보다 사명이 중요하다. 자신의 사명의 자리를 지키고 가꾸고 세워가는 것이 축복이다.
2.은혜
(1)은혜란 “하나님이 값없이 자발적으로 베풀어주시는 사랑의 선물이다”.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지만 삶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지만 가족도 일터도 교회도 민족도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강물같이 흘러간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야 마음에 기쁨도 감사도 마르지 않는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보호하시고 도우셔야 된다. 그것이 은혜이다. 은혜란 위로부터 흘러내려오는 것이다.
(2)겔47장을 보면 성전에서 생명수 물이 흘러나온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생명수가 닿는 모든 곳이 살아났다. 물이 닿는 강, 바다, 과실나무들이 모두 살아났다.(셀47:10,12). 성전에 나오는 생명수가 바로 은혜의 물이다. 은혜를 받으면 살아난다.
그러면 은혜를 받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것이며”(겔47:11).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면 진펄과 개펄은 살아나지 못한다. 사막화된다. 즉 죽은 땅이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으면 사막화되어가던 땅도 살아난다.
(3)마내복음 13장에 보면 씨뿌리는 비유가 나온다. 네가지 밭이 등장한다. 첫째는 길가밭이다. 길가밭 같은 딱딱하고 굳어진 마음에도 은혜가 들어가면 땅이 살아난다. 둘째는 돌밭이다. 어수선한 마음이다. 근심 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돌밭 같은 마음에 은혜가 들어가면 어수선한 마음에 질서가 생긴다. 견고한 근심 덩어리가 떠나고 믿음으로 살기 시작한다. 가시밭 같은 마음도 있다. 상처와 재물의 욕심과 타락하고 부패한 마음에 은혜가 들어가면 회복이 일어난다. 남을 찌르며 상처를 주고받는 가시 같은 역할을 했던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부드러워진다. 은혜를 받으면 사람이 부드러워진다. 인상파가 웃는 얼굴로 바뀐다. 좋은 밭이 있다, 좋은밭도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면 할수록 결실의 차이가 있다, 은혜 충만한 사람은 더욱 더 잘된다.
(4)천국백성이 되는 것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지만 가능하다(롬3:24).“ 죄인이 의인되는 것,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 이 놀라운 사건이 어떻게 된 것인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드려 우리의 모든 죄를 값아 주셨다. 죄인이 의인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5)구원의 선물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이다.
엡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6)구원의 과정에서 선행은총이란 개념이 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은총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전3:11).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 은혜가 하나님의 시간에 구원으로 우리를 인도한 것이다.
(7)우리에게 주시는 특별은혜는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보여주신 실체이다.
매일같이 말씀을 읽으며 묵상하며 말씀과 동행하며 산다는 것은 은혜가운데 거하는 것이다.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고 오묘함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은혜 가운데 풍성하게 거하는 것이다. 은혜는 우리가 날마다 붙들고, 그 은혜의 날개 아래 거하는 것이 축복이다.
3)평강
(1)평강이란 “모든 것이 원만하여 마음에 걱정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근심 걱정이 없는 상태이다. 평강과 함께 평안, 평화, 샬롬이란 용어를 함께 사용한다.
(2)샬롬_개인이나 공동체의 생활에서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으로 완전한 이상적 충족 상태를 말한다. 국가간의 전쟁이나 분쟁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삿8:9), 가정에서 불화가 없는 행복한 상태, 가난과 궁핍 등 경제적 고통에서 자유로운 상태(시147:14), 히브리인들은 이런 평안을 갈망하여 샬롬을 일상적인 인사말로 사용했다.
(3)이사야 선지자는 이 땅에 오실 메시야를 평화의 왕으로 예언했다(사9:6).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에 태어나실 때, 천군천사들이 하나님께 찬양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러 오셨다.
(4)마귀는 평화를 빼앗아가고 우리에게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을 준다. 평강의 반대말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이 주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인간의 삶을 파괴한다. 실체가 없는데 내 안에 무서움과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차면 어둠에 갇히게 되고 질식해서 죽어간다. 불안장애가 현대병이다.
(5)불안장애 증상_공황장애, 광장 공포증, 범불안장애, 특정공포증, 불리불안장애, 선택적 함구증 등 다양한 증상이 있다. 공포와 두려움과 염려로부터 해방되는 치료방법이 무엇인가? 바로 평화이다.
-예수님을 믿으라: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평화를 주기위해서 오셨다. 십자가는 평화의 완성이다. 하나님과 인간이 죄로 분리되었다. 십자가는 모든 분리장벽을 허물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면 모든 불안이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진정한 평안은 주님안에서만 가능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불안과 공포가운데 벌벌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성령을 받으라”(요20:19,22)고 하셨다. 예수님을 믿으면 첫 번째 찾아오는 현상이 있다. 마음에 평안히 회복된다. 근심걱정염려불안이 사라진다. 아침안개처럼 한 순간에 모든 우중층했던 모든 장막들이 사라진다. 마음에 기쁨과 감사로 가득채워진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랑이고 은혜가 주는 선물이다.
-부활재림신앙을 믿으라: 부활과 재림 신앙을 회복하면 불안과 염려와 공포와 두려움이란 실체로부터 완전히 빠져나올 수 있다. 부활신앙은 죽음을 극복한 신앙이다. 신앙의 방향을 잃어버리면 현실이 커 보이고 미래는 약해 보인다. 신앙의 방향은 현실에서 잘먹고 잘 살고 성공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 신앙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우리내면에 천국에 대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면, 현실에서 오는 모든 버거운 짐들을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내안에 주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