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목사]공부(배움)가 주는 유익_자람(마13:31-32)

  • 입력 2023.08.09 13:14
  • 수정 2023.08.0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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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배움은 머리에 불을 켜는 것이다. 캄캄했던 내 머리에 환한 불을 켜는 것이 배움이다. 배움 없이 값진 인생은 세워지지 않는다. 더럽고 추하고 지저분하고 악한 것은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자란다. 그러나 가치있고, 귀중하고, 영원한 의미를 지닌 것은 절대적인 배움의 시간이 필요하다.

배움은 인생에 필수이다. 모든 직업은 배움의 과정이 필요하다. 어느 순간 배움을 멈추는 사람이 있고, 계속해서 배우는 사람이 있다.

거북이와 토끼가 경주를 했다. 게임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거북이가 승리했다.

인생의 긴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정신줄을 놓치 않아야한다, 거북이처럼 늦어도 좋다. 토끼처럼 빨라도 좋다. 그러나 끝까지 달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게으름의 종착역은 인생의 실패로 연결 된다. 배움은 자신을 보석처럼 가꾸는 축복의 시간이다.


1)배움의 유익_공부하면 마음에 힘이 생긴다.


(1)배움은 내 안에 죽었던 꿈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 뇌에 불이 켜지는 것이다.

(2)나무의 가지가 끊어지고 찍힐지라도 희망이 있다. 뿌리가 죽지 않고 물을 먹으면 메마른 가지에 움이 다시 난다. 그것이 희망이다. 물만 먹으면 다시 새순이 돋고 자란다. 물이 곧 배움이다.(욥14:7)

(3)인간은 밥만 먹고, 겉옷만 잘 치장하고, 몸만 잘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진짜 보이지 않는 정신적, 영적인 내면의 세계가 자라야 진정한 행복을 얻는다. 무엇으로 채우면 사람이 행복해지고 꿈이 자라고 마음에 힘이 생기는가? 그것은 배움이다. 다른 것으로 우리의 내면을 어떻게 치장할 수 있는가? 겉모습은 치장하면서 왜 소중한 나의 내면은 버려두는가? 겉모습 치장하는데 하루에 많은 시간 스캐줄을 잡으면서도, 왜 내면의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가는데 관심이 없는가? 내면을 채우라. 그러면 내 마음에 근력이 생기고 힘이 자란다. 이것만이 내것이다.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을 채우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소중한 인생에 가치를 담는 시간이고 나를 보석처럼 질서정연하게 가꾸고 세워가는 축복의 시간이다.

(4)공부. 배움를 내려놓는 순간 모든것이 멈춘다. 자연의 이치를 보라. 교회 주변에 풀이 많다. 봄서부터 초가을까지 풀이 무성하게 자란다. 감당이 안될 정도이다. 그런데. 묘한 순간이 있다. 찬바람이 불면 그때부터 성장을 멈춘다. 기후와 토양의 환경이 갖추어 있으면 끝없이 자란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면 성장을 멈춘다. 마찬가지이다. 자연의 이치나 영적 이치나 차이가 없다. 성장의 조건을 만들어 주면 멈추지 않고 계속 자란다.


●배우면 내 인생에 어떤 유익이 찾아오는가?


①진리의 길에서 멀어진다 VS 진리의 길에서 가까워진다.

계속 자신을 가꾸며 성장하는 사람과 성장을 멈춘 사람들을 비교해보라.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이라고 느끼는가? 바로 진리의 길에서 멀어져간다. 우리는 진리와 비진리의 길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두 길에서 항상 진리의 길을 걸어갈 때 인생은 영글어간다.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성장을 멈추고 진리의 길에서 서서히 멀어져 비진리의 길로 들어간다.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성령으로 시작했던 영적인 삶을 멈추고 자신도 모르게 율법의 인생으로 빠져들어 간다.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영국>의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 1907-1978)_ ”진리란 스스로 발견했을 때만이 유용한 것입니다! 스스로 발견한 진리가 아닌 것을 전달할 때에는 자기의 것이 아님으로 쉽게 잊혀집니다! 그러나 스스로 발견한 진리일 때는 자기의 한 부분이 되어 결코 잊혀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공부하다가 번뜩 깨달아지면 그 지식은 살아있는 지식이 되고, 그 지식은 영원히 내 것이 된다. 쉽게 잊혀 지지 않는다. 한줄기 깨달은 지식이 나의 신앙을 환하게 이어가는 빛이 된다. 내 영혼이 새 힘을 얻는다.

다윗_“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시19:7-10)

 

②창의력의 빈곤 VS 창의적 아이디어가 풍부

생각의 빈곤은 인생의 결핍이다. 아이디어는 축복의 DNA이다. 생각의 부요함이 축복의 코드이다. 생각의 빈곤은 가난이다. 진짜 가난한 사람은 생각이 병들어 있는분, 생각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분이다. 생각이 막혀있는 사람과 살아보라. 숨 막힌다는 말을 한다.

배움의 축복은 생각을 부자로 만든다. 모든 것은 다 무형의 재산인 생각에서 출발한다. 아이디어가 곧 돈이다. 아이디어는 생각에서 나온다. 생각은 배움에서 나온다.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도전과 창의력 결핍으로 다가온다.

축복의 코드를 계속 재생산하라. 이것이 복이다. 비록 육체가 늙어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생각을 젊게 하느냐? 늙게 하느냐? 이것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다. 생각속에 우주를 품어라. 존 웨슬리는 “세계가 내 교구이다.”라는 엄청난 비전을 선포했다. 말 타고 다니며 전도하던 시대이다. 아브라함은 생각에 믿음을 담았다. 바울도 생각에 세계선교비전을 담았다.

 

③현실과 타협 VS 현실을 극복

배움을 포기하면 성장을 포기한다. 배움을 포기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현실과 쉽게 타협한다, 그러나 배움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현실이 비록 어렵지만 극복한다,

배움은 우리 생각에 희망의 싹을 키우기 때문이다.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배우라. 그러면 자란다.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자람이 멈추고 현실지향적인 사람으로 바꾼다, 그리고 늘 앞으로 나가기보다는 과거지향적인 생각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의 자녀로 쓰임 받기를 원하는 분들은 현실의 격차가 분명히 있지만, 그것을 믿음으로 극복한다.

 

④꿈이 작아진다 vs 꿈을 자라게 한다.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가장 큰 손실은 꿈이 점점 작아진다. 꿈은 하루를 지탱하게 하는 힘의 근거이다. 꿈은 내가 보고, 읽고, 듣고.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영향받는다.

좋은 믿음의 사람, 비전의 사람, 사명의 사람들과 교제하라. 그러면 함께 자란다. 그러나 물질지향적이고 이땅에만 관심이 있고, 지금 현재만 살아가는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과의 교제는 큰 유익이 없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나의 꿈을 제거하는 잡초제 역할을 한다면 과감하게 정리하라. 인생에 발전을 막아내는 독소이다. 


2)사람이 자라야 하나님의 나라도 자란다


(1)마13장, 비유장이다_씨뿌리는 비유, 겨자씨와 누룩 비유, 가라지비유, 세가지 보화비유가 나온다. 비유의 특징은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겨자씨 비유의 특징은 가장 작은 씨가 큰 나무로 성장한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 예수님도 당시 종교기득권층에 비해 아주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나사렛 출신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천국의 씨는 자란다. 또한 성장한 나무에 새들이 깃든다. 새는 이방인을 말한다.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전한 천국복음을 듣고 이방인들이 나무에서 쉼을 얻는다.

(2)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으로 통치하는 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사명이다. 이 위임된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자신을 가꾸어야 하는가? 결국 사람의 문제이다.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것이 사람이다. 사람이 영적으로 자라면 하나님의 나라도 동시에 세워진다.

가정을 믿음으로 세우는 것, 일터를 교회로 세우는 것, 교회를 부흥시키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증인된 교회로 가꾸어가는 것, 다 누가 하는가? 사람이 한다. 사람이 성장하지 아니하면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성장하면 엄청난 주의 역사를 창조하고 새롭게 만든다. 사람이 자라는 것이 축복이다. 사람이 자라면 하나님의 나라도 저절로 자란다.

(3)부모가 자라야 자녀들이 자란다. 부모가 자녀들의 인생길을 막는 경우가 많다. 자녀들이 마음껏 세상을 믿음으로 개척하고 창조적으로 살아가도록 부모는 생각이 넓어져야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형편과 상황이 작다고 해서 우리 미래를 작고 보잘것없는데 구겨 넣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생각으로 우주를 창조하셨다. 우주는 하나님의 생각에서 디자인된 것이다.(창1:1-3; 창1:26-28; 출19:4-6; 벧전2:9).

최원영 목사_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최원영 목사_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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