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낙범 박사 (총신 교수, 새순교회)

우리 주변을 보면 사람들이 사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탄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사탄이 존재한다면 어떤 존재인가? 그는 어떻게 활동하는가? 그의 종국은 어떻게 되는가?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하지만 그 누구도 시원한 답은 제시하지 못한다. 다만 성경계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성경계시에 의하면 본래 사탄은 천사로서 하나님께 수종드는 피조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교만하므로 사탄이 되었다. 그는 인류의 대표인 아담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지 못하도록 무너뜨렸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곳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성취하려고 죄지은 인간과 창조세계를 포기하지 않고 구속의 역사를 개진하셨다. 그런 중에 하나님은 구속중보자인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게 하셨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사탄의 지배를 받고 신음하던 인간과 창조세계를 구속하셨다. 이로써 그동안 인간과 창조세계를 괴롭히며 죄를 짓게 하고 죽음으로 이끌던 사탄은 창세기3:15절에서의 예언대로 드디어 결박되고 말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사탄이 결박되었다는 것이다. 사탄이 결박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천년왕국과 직결된 것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은 사탄의 결박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천년왕국에 대한 인식과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말은 사탄의 결박문제가 세대주의의 관점에서 보는 입장이 있고 개혁주의의 관점에서 보는 입장이 있기에 주장 내용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공교회의 관점에서 사탄을 누가 결박했는지, 사탄을 어떻게 결박했는지, 사탄이 결박당한 기간은 어떻게 되는지, 사탄을 결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요한계시록 20:1~3절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사탄을 결박한 자는 누구인가. 여기에 대해 사도 요한은 그가 본 환상인 계20:1~3절에서 사탄을 결박한 자가 누구인지를 진술하고 있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와서”(계20:1), 이 말씀에서 사도 요한은 한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사탄을 결박한 것을 보고 있다. 그가 본 천사는 그냥 천사가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였다. 사도 요한은 그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그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지고 사탄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결박한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에 사도 요한은 그 사탄을 결박한 자를 ‘천사’로 지칭하고 있다.

여기에 언급된 ‘천사’((αγγελοϛ)를 놓고 여러 견해가 있다. 실제로 ‘천사’라고도 하고, ‘하나님의 사자’라고도 하며, 또 ‘미가엘’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계시록의 “환상”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여기의 천사가 누구인지를 따지는 것은 별의미가 없다. 그것은 환상이 실제 상황을 보여 주는데 있지 않고 그 목적하는바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떤 천사냐고 기어코 묻는다면 천사와 사탄과의 전쟁을 표현하고 있는 두 본문인 계시록12:7~11절(미가엘 천사와 용의 싸움)과 계시록20:1~6절(천사와 용의 싸움)을 볼 때 미가엘 천사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미가엘 천사는 그러한 목적을 위해 일정한 역할을 맡은 자가 된다(변종길, 요한계시록주석, 대구; 말씀사2017.p.316).

그러니까 계20:1절에 언급된 ‘천사’는 그리스도의 역할을 담당하는 ‘미가엘 천사’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말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환상의 사건이 실제 상황과 구별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이미 초림한 후 구속사역을 완성하고 승천한 상태인데, 그런 그리스도가 실제로 하늘에서 다시 내려와 사탄을 결박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20:1절에 나오는 환상은 어떤 진리를 가르치고자 하는 교육용으로서 이를 위해 그리스도 대신에 미가엘 천사가 그 역할을 한 것이다(Ibid). 이런 점에서 볼 때 사탄을 결박한 자는 초림한 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다.

둘째로, 사탄이 어떻게 결박되었는가. 여기에 대해 사도 요한은 그가 본 환상인 계시록 20:1~2절에서 사탄이 어떻게 결박되었는지를 진술하고 있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계20:1~2) 이 본문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큰 권세를 부여받은 천사가 마귀와 사탄이라고 하는 “용” 곧 옛 뱀을 잡았다고 한다. 여기서 “용”과 “옛 뱀”은 동격으로 사용되고 있고, 관계대명사로 연결되는 마귀와 사탄은 그 용에 대해 설명해 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니까 “용”과 “옛 뱀”은 일종의 이미지로, 그리고 “용”과 “옛 뱀”은 일종의 이미지에 대한 실체로서 서로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이필찬, 「내가 속히오리라」, 서울:도서출판 이레서원, 2008. p.834.).

특히 “옛 뱀”이라는 표현은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사탄을 연상케 한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천사와 “용”(사탄)과의 싸움(계시록 20:1~2절)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계시록 20:1~2절에서 천사가 내려와 용을 잡고, 이 큰 쇠사슬로 용을 결박했다고 한다. 이 때 큰 쇠사슬로 “용”을 잡았다는 것은 사탄을 결박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이것 역시 상징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영적존재인 “용”(사탄)을 쇠사슬로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탄이 결박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사탄을 잡았다’(έκράτησεν), 체포했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사탄의 존재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활동에 제한을 가했다는 것이다. 즉 사탄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통제했다는 것이다.

그 후에 천사가 그의 손에 있는 “무저갱의 열쇠”로 무저갱의 문을 열고 무저갱에 던져 넣었다고 한다. 여기서 ‘무저갱’(ἄβυσσοϛ)이란 사탄과 그를 좇는 귀신들이 거주하는 형벌 장소(계9:1; 눅8:31)이고, 또 ‘열쇠’도 천사의 손에 있다고 했는데, 이것 역시 상징으로 보아야 한다. 이 진술의 실제 의미는 사탄의 결박이 하나님의 권세 하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저갱’을 열고 닫는 것, 거기에 가두고 거기로부터 풀어 주는 것, 또 그것을 인봉하는 모든 주권이 천사에게 부여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천사를 보낸 하나님의 손에 모든 주권이 있다(Philip E. Hughes. 「요한계시록」 오광만,Tr. 서울: 여수론, 1994), p.304)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를 실감할 수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자.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막3:27,마12:29).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계시록20:1~2에서 ‘결박하다’(ἔδησεν)라는 동사와 막3:27(마12:29)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결박하다’라는 동사의 용례가 같다. 이에 계시록20장에 묘사된 사탄의 결박은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마12:29의 성취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사실에 대해 사도요한은 요한일서 3:8절에서 좀 더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사도바울도 골로새서 2:14~15절에서 언급하고 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초림한 후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자기 백성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할 뿐 아니라 사탄을 결정적으로 결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셋째로 사탄이 결박당한 기간은 어떻게 되는가. 여기에 대해 사도 요한은 그가 본 환상인 계시록 20:1~3절에서 결박당한 시기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있다. 다만 결박기간인 천년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결박당한 시기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사탄이 결박당한 시기와 천년기간이 시작되는 때와 같기 때문이다. 물론 세대주의자들은 사탄이 결박당한 시기를 예수님이 공중 재림 후 7년 혼인잔치를 마치고 지상 재림 후에 지상천년왕국이 시작할 때라고 주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개혁주의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고 예수님이 초림 때 그가 구속중보자로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탄이 결박되었다고 믿고 있다. 이는 계시록 19:19~21과 계시록20:10절의 사건을 비교해 볼 때 잘 알 수 있다. 여기서 전제해야 될 것은 계시록20:1~3절의 환상이 앞에 나오는 환상인 “백마 탄 군사들과 전쟁을 벌인 짐승, 거짓 선지자들의 멸절”(계시록 19:19~21)에 연이어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19:19~21절에 나타난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멸절된 운명이 20:10절에 다시 ‘용’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 있는 것을 볼 때 그렇다.

다시 말해 계시록19:20에 나오는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불 못에 던짐”의 내용과 계시록20:10에 나오는 “마귀가 불 못에 던짐”의 내용이 동일시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탄의 완전한 패망시기를 동일시기로 볼 때 계시록 20:1~3절에 언급된 사탄의 결박사건의 시기는 그 이전, 그러니까 마귀가 불 못에 던져진 시기보다 더 빠르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계시록 20:1~3절에서 사탄을 결박한 사건이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때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초림 때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아야 한다.

또 요한계시록 20장 1~3절에서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용을 잡아 무저갱에 던지는 장면과 요한계시록 12장 7~12절에서 미가엘 천사가 용과 하늘에서 전쟁을 해서 승리하여 용을 땅으로 내쫓는 것을 같은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미가엘 천사가 용과 하늘 전쟁을 벌여 승리하여 사탄을 땅으로 내쫓은 사건과 사탄이 결박당하여 무저갱에 던져진 시간이 동일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미가엘 천사가 사탄을 이긴 사건은 언제 일어난 것일까? 미가엘 천사가 사탄을 이긴 사건은 예수님이 초림한 때라고 본다. 그것은 미가엘 천사가 사탄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하늘전쟁 사건 앞에 설명된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계 12:5)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이 곧 예수님의 대리자인 미가엘의 승리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탄에 대한 미가엘의 승리는 곧 예수님의 사탄에 대한 승리의 다른 표현이다. 따라서 계시록 20:1~3절에서 사탄을 결박한 사건이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의 초림 때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점에 사탄(용)을 결박한 시기는 그리스도의 초림 때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결박기간은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천년(문자적 숫자가 아니고 상징적인 숫자)동안이며, 사탄을 불 못에 던지는 사건이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 일어날 것임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사탄을 결박한 기간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로 보는 것이 바른 이해이다(변종길, op. cit. p320.).

좋은 예가 있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그땐 이 작전이 정말 대단한 작전이었다. 그것은 1944년6월6일에 일어난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연합군의 승리가 완전히 굳혀졌고, 독일군은 패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군이 연합군에게 실제로 항복한 날은 1945년5월7일이다. 이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날을 D-day라 부르고 연합군이 완전히 승리한 날을 V-day라고 부른다. 따라서 2차 대전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전쟁이 완전히 종결된 날까지의 이 기간은 사실상 전투가 끝났지만 잔존 세력이 남아 있던 기간이다.

넷째로, 사탄을 결박한 목적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 사도 요한은 그가 본 환상인 계시록 20:3절에서 사탄을 결박한 목적을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계20:3). 이 본문에서 사탄(용)을 결박한 목적이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밝혀 주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피 흘리는 십자가 사건으로 사탄을 제압해 놓았기에 사탄의 권세가 결정적으로 패배했음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사탄이 더 이상 만국의 미혹자로 군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초림하시기 전에는 사탄이 만국(열국)을 지배하였다. 그는 공중 권세 잡은 자요.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던 “이 세상의 신”(고후4:4)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승리하므로 사탄의 머리가 박살났다(롬16:20).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졌다(눅10:17~19).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므로 하나님나라가 이미 임하였다(눅11:20~22). 사탄이 천년동안 무저갱에 갇혔다(계시록20:1~3). 더 이상 사탄이 민족들을 미혹하지 못하게 되고, 또 그 민족들에 의한 성도들의 공격(지배력)도 천년동안 상실하게 되었다(마12:29; 요16:33; 히2:14; 요일3:8; 창3:15; 계12:7~12; 17:8,11; 눅11:14~26; 요일 5:4; 2:13; 4:4; 5:18; 유1:24; 요17:11~12; 고전 15:55~57 등). 그렇다고 사탄의 모든 활동이 무력화된 것은 아니다.

이것은 계시록12:7~17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우선 계시록 12:7~12에 보면 사탄이 그 이전에는 온 천하를 미혹하던 자였으나 하늘로부터 쫓겨난 후에는 교회공동체를 미혹하는 일에 제한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13~17을 보면 여전히 교회를 핍박하고 공격하는 것을 본다. 이와 같이 계20:1~3에서도 사탄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결박되었는데도 사탄의 유혹과 시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천년이 지나서 그들이 세력을 잠시 회복하겠지만(계20:7~8), 결국은 패망하고 만다. 또 베드로후서2:4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chains of darkness)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다른 편지인 베드로전서5:8에서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은 사탄으로 하여금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도록 무저갱에 가두었는데, 그래서 그리스도가 이 세상을 지금 통치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실을 보면 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 미혹하고 있다(벧전5:8). 다시 말해 사탄이 결박되어 패잔병으로서 무저갱에 이미 던져졌고 그 문은 잠기고 인봉되었다. 그럼에도 사탄은 주어진 영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탄이 결박되어 무저갱에 갇혀 있음에도 세상의 온갖 악과 부정, 온갖 속임수가 범람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온 세상을 통치하시고 그의 복음전파가 팔레스타인에서 시작하여 점점 온 세계로 퍼져가며 만세전에 택함 받은 자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옴(요일5:18)과 하나님나라 확장을 싫어하는 사탄이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몸부림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동시에 복음전파로 인해 사탄 자신의 지배력과 영향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에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면서 발부둥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결코 파괴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개혁주의 공교회의 사탄 결박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지금까지 개혁주의 공교회의 관점에서 사탄을 누가 결박했는지, 사탄을 어떻게 결박했는지, 사탄이 결박당한 기간은 어떻게 되는지, 사탄을 결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사탄의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결박되었기에 그리스도의 재림 때 까지 그의 권세와 영향력은 제한적일뿐 아니라 감소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탄이 그리스도인들과 구속공동체인 교회를 절대로 파괴할 수 없음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그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굳센 믿음을 가져야 한다.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승천한 후에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탄이 그의 남은 때가 얼마 남지 않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유혹해 와도 그를 바라보지 말고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사탄과 싸우는 거룩한 전사가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찬양과 영광을 돌리며 주어진 곳에서 믿음의 행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최낙범 박사(총신교수, 새순교회), 중앙대학교 철학과 졸업(B.A),

총신대신학대학원 및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 졸업(Th.M)

숭실대학교 대학원(Th.M), 미, Kernel University 대학원 졸업(Th.D),

총신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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