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효목사. 1983년 2월 스위스 사역시작, 취리히 중앙교회, 바젤한인교회, 인터라켄 쉼터교회 담임. 총신대학교신학 대학원졸업, 스위스한인교회 홈페이지 www.koreanchurch-swiss.com
김정효목사. 1983년 2월 스위스 사역시작, 취리히 중앙교회, 바젤한인교회, 인터라켄 쉼터교회 담임. 총신대학교신학 대학원졸업, 스위스한인교회 홈페이지 www.koreanchurch-swiss.com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8-11)

1. 하나님께서 <주일성수>를 명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8-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십계명> 중 제 1 계명에서 제 4 계명까지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도리에 관한 계명인데, 그 중 제 4 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합니다. 일주일 가운데 6일은 자기의 생업에 충실하고, 7일째 되는 날은 안식(安息)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안식은 단순히 육체적 노동으로부터의 휴식이 아니라, 몸과 마음과 영혼을 위한 휴식, 곧 <예배를 위한 휴식>입니다. 그러기에 <안식일>은 온전히 <예배에만 집중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구약교회>의 <안식일예배>가 <신약교회> 의 <주일예배>로 <변역>되었습니다. <신약교회>가 <주일>이라고 칭하는 <일요일>이 내포하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인류의 구속(救贖)>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안식일(שבת-Sabbath-토요일)>이 지난 다음날인 <주의 첫날> 곧 <일요일>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1) <초대교회>가 <주의 부활의 날>인 <일요일>을 <주의 첫날> 또는 <주의 날>이라고 부르며,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요한복음 20:1-2)

(2) <성령>께서 주의 제자들에게 강림하신 <오순절>도 <주의 첫날>인 <일요일> 이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사도행전 2:1-4)

(3) 1세기 중반에는 <안식일(토요일) 예배>가 아닌 <주일(일요일) 예배>가 일반화되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성찬식을 행하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의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사도행전 20:7-12)

전도자 <사도 바울>은 <드로아 집회> 중 밤 늦게까지 계속된 그의 강론을 듣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삼층 누(樓)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라는 청년을 다시 살리는 이적(異蹟)을 행했습니다.

이 같은 <이적의 역사(役事)>가 나타난 것은, 그 날 <청년 유두고>를 비롯해서 <드로아 집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온 종일 계속된 집회였음에도, 다음 날 날이 새기까지 그 장소를 떠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그의 강론을 듣고 싶어 할 정도로 <말씀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집회의 열기>는 폭발작인 양적 성장을 이룩한 육 칠십 년대의 <한국교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집회>를 가진 날이 <안식 후 첫날>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예배일>이 <유대교인>들이 <안식일(Sabbath)>이라 부르는 <토요일>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이라고 부르는 <일요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고린도 교회> 역시 <갈라디아 교회>처럼 <주의 첫날>이라 불리는 <일요일>에 모여 예배하고 있었고, 그때 <사도 바울>을 위한 <선교헌금>도 함께 거두었습니다. 

<일요일>을 <주의 날>로 지키며 모여 예배하는 제도가 당시 교회에 정착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린도전서 16:1-2)

<매주일 첫날>은 곧 <일요일-주일>을 가리킵니다.

(5) <밧모 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이 주님께 처음 계시를 받은 날도 바로 초대교회 교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던 날인 <주의 날>, 곧 <일요일-주일>이었습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요한계시록1:10)

이처럼 <안식일예배 개념>은 초대교회 때부터 <토요일-안식일>에서 주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날인 <주의 첫날> 곧 <일요일-주일>로 <변역(變易)>되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주일성수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사야 58:13-14)
     
<주일>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오직 주님을 위한 날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와, 찬양과, 말씀 묵상과, <공 예배(公禮拜)>에만 열중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필라델피아의 <백만장자>였던 <스티븐 지라드>가 어느 토요일에 ‚내일도 평일처럼 출근해서 방금 도착한 선박의 짐을 내리시오!‘ 라고 그의 직원들에게 지시했습니다. 그러자 창백한 표정을 한 한 청년이 그의 앞에 나와서 말했습니다.

지라드씨! 내일은 주일이기 때문에 나는 일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나와는 헤어지는 수밖에 없지!

그것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비록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해야 할 입장이지만, 그래도 주일만큼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경리 계에 가보시오! 그 동안의 급료를 계산해 줄 것이오!

<주일성수> 때문에 <스티븐 지라드>에게 해고당한 그 청년은 새로 일할 곳을 찾기 위해 삼 주간 동안이나 발이 아프도록 돌아다녔지만, 끝내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필라델피아>의 한 <은행 총재>가 <스티븐 지라드>에게 '은행 하나를 새로 열어야겠는데,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한 사람 소개해 주시오!‘ 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던 그는 그가 얼마 전 해고했던 바로 그 청년을 추천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은행총재가 의아스럽게 여기며 그에게 물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청년을 해고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랬지요! 그가 일요일만큼은 일을 할 수 없다고 해서 해고했습니다! 하지만 자기의 처하는 형편에 따라 신념과 원칙을 바꾸지 않는 사람이라야 새 은행의 돈을 믿고 맡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그 청년은 <지라드 스티븐>의 추천으로 <은행 총재>에게 발탁되어, 전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으로 새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예배자의 자세>에 말씀하셨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정성 없는 <가식적인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재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 하리라! (말라기 1:10)
    
하나님은 예배자가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 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찌니라! (요한복음 4:23-24)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평소 친절하고 인자했지만 설교시간만큼은 엄격했습니다. 한번은 그가 설교 중인데 계속 졸고 있는 몇 명의 교인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마음에 안타까움을 느낀 그는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불이야! 불이야!"
 
그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교인들은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고, 졸음에 빠져있던 교인들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들 중 한 교인이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불이라니, 어디에 불이 났습니까?"
 
그들 모두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펴보았지만 연기도 불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지옥의 불을 말하는 것입니다! 설교 도중에 잠을 자는 사람들이나, 설교에 집중하지 않고 그냥 멍히 앉아 있는 사람들이 가게 될 지옥 불 말입니다!"
 
그제서야 교인들은 자세를 가다듬고 엄숙하고 진지한 자세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엄숙하고 진지한 자세로 정성된 예배를 드리고,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설교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영적 성숙을 위한 바른 예배입니다.

(2) <신앙생활의 본질>은 곧 <예배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이름으로 우리를 불러 구원해 주시고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해주신 이유는, 당신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당신을 예배케 하기 위함입니다.
이 지상에서의 <예배의 삶>은 <천국생활>을 위한 <연습>이요 <훈련>입니다.                                                 
<천국생활>은 주님의 품 안에서의 누리는 <영원한 안식>과, <예배의 삶>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배 없는 신앙생활>, <예배를 소홀히 하는 신앙생활>은 <참된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또 내가 보니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요한계시록 14“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요한계시록 21:3-4)

4. 어떻게 드리는 예배가 <정성된 예배>이고, <바른 예배>입니까?


(1) <시간엄수> 해야 합니다.
      
예배시간 전에 미리 나와서 기도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2) <단정한 옷차림>이어야 합니다.

깨끗한 옷이어야 하고 이왕이면 좋은 옷(Sonntagskleider)이어야 합니다.

(3) <예물준비>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신자의 의무>와 <도리>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4:10)

<감사예물>은 <축복의 근거>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

5. <예배자>를 위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너에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민수기 6:24-26)

하나님은 <예배자>를 위해 <축복을 선포>하게 하시고, 그대로 이루어지게 해주십니다.

(1) <죄 문제>가 <해결>되게 해주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을 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이사야 1:18)

(2) <삶의 문제>가 <해결>되게 해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3) <소원성취>의 <은총>을 덧입게 해주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5)

(4) <범사>가 <형통>케 해주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3서1: 2)

<코리 텐 봄(Corrie Ten Boom, 1892-1978)>은 <네델란드인>입니다.                                                    
<네덜란드>가 <독일 나치군>에 점령당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우리 집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을 환영합니다!‘ 라고 하면서 나치의 검거를 피해 숨어야 하는 <유대인>들을 안전하게 숨겨주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사실을 <독일 군>에게 제보했기 때문에,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유대인>들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코리 텐 봄>의 아버지는 체포된 후 바로 사망했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언니와 어머니는 독일의 <라벤스부르크(Ravensburg)>의 <여자 강제수용소>에 보내어져, 그곳에서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하루 11시간이라는 끔찍한 중노동의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녀의 언니는 나치의 끔찍한 고문으로 인해 그곳 수용소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가족들이 숨겨줬던 유대인들은 그 집의 비밀의 방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체포되지 않았습니다.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녀는 고문과 즉결처형과 강제노역이 일상인 그곳 수용소에서 죽음을 각오하고서 함께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2차 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끝난 후 그녀는 독일과 유럽 각지를 순회하면서 <화해와 용서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실화를 들려줬습니다.

소련의 어떤 교회에서 막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그 때 예배당 문을 걷어차면서 두 명의 군인이 들이닥쳤습니다. 기관단총의 총 뿌리를 겨누어 흔드는 두 군인은 예배당 안에 모인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5분간의 시간을 주겠다! 예수를 버리고 살 사람은 5분 내로 예배당 밖으로 나가라! 그래도예배당 안에 남아 있는 자들은 5분 후 모두 죽게 될 것이다!

모든 신자들이 이 무서운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달라고 숨죽여 기도하고 있는데, 그들 중 일부가 일어나서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시계를 바라보고 서 있던 군인들 중 하나가 '마지막 50초다! 또 나갈 사람은 없느냐?‘ 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다른 신자들은 주님을 위해 기꺼이 죽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5분이 지나자 드디어 군인들은 안으로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그러더니 총을 땅에다 내려놓고는 죽음을 기다리는 교회당 안의 신자들에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 두 사람은 크리스천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께 헌신하고, 진정으로 주님을 위해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과는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자, 이제 우리 함께 주님께 경배를 드립시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10)

<아멘! >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