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교회가 위치한 워러베리시의 팰리스 극장에서 있은 “션연”(Shen Yun, 神韻)이라는 중국 예술단의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다. “션연”은 중국의 5천년 문명 속에 내포된 자비, 관용, 인내, 신적 경외 등의 주제들을 무용과 음악으로 담은 일종의 오페라이다.

고대로부터 중국인들은 여러 왕조에서 피어난 문화를 하늘의 신이 인간에게 내려 준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무신론을 신봉하는 중국 공산당은 인민들의 신에 대한 종교적 경외심이 공산당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간주하고 전통적 가치관과 민속 신앙을 말살해 왔다.

그러나 이와같이 억압되고 상실된 전통문화의 가치와 신적 요소를 부활시키기 위해 해외의 많은 중국 예술인들이 나섰다. 그들은 오페라 작품을 제작하여 그 제목을 “션연”(신의 운치)라고 붙이고 해마다 대대적인 공연을 펼치고 있다. “션연”은 각계로부터 무대공연 예술의 극치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뉴욕 카네기 홀을 비롯한 미국과 세계의 주요 도시와 한국에서도 수차례 공연돼 오고 있다.

본질적으로 이 작품은 현재 1억명의 중국인들이 따르고 있는 파룬궁 심신수련법을 소멸시키려는 공산당 정권의 억압에 대한 고발의 성격을 띄고 있다. 파룬궁은 중국 전통문화의 핵심인 유교, 불교, 도교의 사상에 기공법을 결합시켜 1992년에 리홍쯔라는 인물에 의해 시작된 일종의 혼합적 민속종교이다.

파룬궁은 스스로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교주를 신격화하고 기독교를 부정한다. 우주 법륜대법을 설파하는 파룬궁은 장엄하고 화려한 궁전이고, 이에 비해 기독교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집이라고 폄하한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신이 아니라 하고 시한부 지구폭발 종말론을 믿게 한다. 환자에 대한 병원치료와 약물투여를 거부하고 헌혈도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친다. 오직 마음수련, 기공법, 기 체조에 의해 육신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점을 가진 파룬궁을 배경으로 하는 “션연” 공연이 특별히 필자의 눈길을 끈것은 높은 예술성 이외에 몇가지 흥미로운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션연”은 현실 물질 세계를 넘어서는 초월적 신적 세계를 강조하고 무신론과 진화론의 허구를 지적하고 있다. 또한 “관용과 용서”라는 주제를 부각시키는 장면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작품 속에서 영적 명상과 수련을 하는 자들을 탄압하고 체포하는 공산당 경찰관이 부상을 당하자 인민들이 그들의 원수임에도 그를 부축하고 도와주는 용서와 사랑의 장면이 나온다. 이에 감동을 받은 경찰관이 자기의 행동을 후회하고 체포하려고 했던 자들을 이해하고 화해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지금 하마스와 같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 인질을 잡고 참수하는 증오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관심을 끌었다. 만약 증오와 복수를 가르치는 종교라면 그것은 이미 종교로서의 의미와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수년 전에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한 일본인 기자 고토 겐지와 미국인 난민구호가 케일라 뮐러는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들이었다. 겐지는 분쟁지역의 참혹상을 보도하며 평화를 주창했던 언론인이었고, 뮐러는 전쟁 난민 자원봉사자로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에 들어갔던 천사와 같은 27세의 젊은 여성이었다.

그들의 유족들은 깊은 슬픔속에서도 “살육의 반복은 중단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며 인도주의적 봉사활동 했던 딸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복수와 증오의 감정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기독교를 세계적인 “사랑의 종교”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독생자 예수를 보내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가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하셨기 때문이다.

원래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부당하게 피해를 당했을 때 자신의 힘만으로는 도무지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진정으로 체험한 사람은 원수에 대한 용서가 가능해 진다. 이것이 곧 신앙의 힘이요 십자가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신 주님의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구약의 요셉은 형들로부터 배신당하여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었다. 그러나 그는 온갖 억울한 누명과 고난 가운데서도,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굳게 믿고 이겨 나가서 결국은 애굽의 총리대신까지 되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땅에 극심한 기근이 들자, 애굽까지 식량을 구하러 온 형들을 보고 요셉은 너무 반가워 그들의 목을 붙들고 울었다. 그에게는 복수의 마음은 전혀 없었고 오직 용서와 사랑의 마음만이 있었다. 요셉은 자기를 노예로 팔아 넘겼던 형들에게 창세기 50:20에서 이렇게 기가막힌 말을 하였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이다.”

이같은 요셉의 말은, 곧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용서의 원리이다. 우리는 이를 50:20의 원리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것이다. 지금은 사랑과 용서의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죄많은 세상을 친히 찾아오신 성탄의 계절이다. 이 성탄의 계절에 50:20의 원리가 세상 모든 사람들 맘속에 스며들어, 용서와 평화가 가득한 인류 사회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

황현조 박사(IRUS 교수, 커네티컷비전교회 담임)
황현조 박사(IRUS 교수, 커네티컷비전교회 담임)

 

키워드

#션연 #파룬궁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