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묵은 해를 흘려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 흘러간 과거는 History고, 다가올 미래는 Mystery다. 새해는 우리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신비의 미래다. 시인 프로스트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라는 그의 시를 통해 사람들이 가보지 않은 신비의 길을 모험적으로 선택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한해를 무조건 모험적으로 걸어갈 수는 없다.

미래를 알지 못하는 인간은 미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굳게 붙잡고 걸어가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미지의 광야 길을 걸어가는 인생들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께서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너희를 안으시고,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불 기둥으로 구름 기둥으로 너희 행할 길을 인도하실 것이라”(신 1:30-33).

시간은 끊임없이 역사속으로 흘러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세월이 참 빠르다 하고, 어떤 사람은 세월이 무척 느리다고 한다. 그 느낌의 다름은 각자의 형편과 성격에 따라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천재 과학자로 불리는 아인슈타인 박사는 그의 유명한 “상대성 원리”를 일반인이 알기 쉽도록 “시간”의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한 적이 있다. “남성이 예쁜 여성과 1시간 앉아 있는 것은 1분처럼 짧게 느껴지고, 뜨거운 난로 위에 1분간 앉아 있는 것은 1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각 사람이 “상대적”으로 어떻게 느끼든지간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간은 한치의 어김없이 “절대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1월을 영어로 January라고 하는데 라틴어 야누스(Janus)에서 온 말이다. 야누스는 앞과 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로마의 신이었다. 로마인들이 야누스의 이름을 1월로 표기한 것은 지난 해의 시간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동시에, 새로 오는 해의 시간을 잘 사용하자는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시간(Time)은 생명(Life)과 같이 소중하다. 그래서 여러 신문 이름에 “타임즈”가 많고 잡지 이름에 “라이프”가 흔히 쓰여지고 있다. 시간과 생명은 모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귀중한 선물이다. 그러므로 시간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책임이 아주 중요하다.

시간을 그릭어에서는 두 단어로 표현한다. 하나는 카이로스(Kairos)이고 다른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이다. 전자는 하나님의 시간이고 후자는 인간의 시간이다. 전자는 영원하고 후자는 일시적이다. 하나님은 무한한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 영원히 존재하신다. 이를 베드로 사도는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으니라”(벧후 3:8)고 하셨다.

반면에 인간은 일시적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 거하는 유한한 존재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을 가리켜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요, 아침에 꽃이 피고 자라다가 저녁에는 베어지는 풀과 같다”(약 4:14, 시 90:6)고 하였다.

하지만 유한적 존재인 인간에게도 희망이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시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면, 영원한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진리를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크로노스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다가 생을 마감할 것인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명제가 된다.

이 명제를 두고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며 지혜를 구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시 39:4).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날아 가나이다”(시 90:10). “주여,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 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의 말씀의 인도를 받으며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 가는 것이다. 잠언 17:24에 “명철한 자는 지혜를 앞에 두고 따라가고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고 산다”고 했다. 지혜를 보지 않고 땅만 보고 사는 인생의 종말을 어느 시인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인간은 돈을 찾느라고 건강을 소비한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소비된 건강을 찾느라고 모았던 돈을 소비한다. 결국 죽음을 맞이한 후 그가 갖는 것은 돌 비석 하나 뿐이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지혜임을 알고 하나님께 오직 지혜를 구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권면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인간의 지혜는 유한하고 불완전하나, 하나님의 지혜는 무한하고 완전하다.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연대를 정하셔서(행 17:26), 올해도 신비의 새해를 맞이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의 마음”을 갖고서, 2024년 새해를 복된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황현조 박사 (IRUS 교수, 커네티컷비전교회 담임)
황현조 박사 (IRUS 교수, 커네티컷비전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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