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1:11-24)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이 자기 신앙 경험과 과정을 변명하는 것은 상태가 심각한 상황인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잡혔을 때(사도행전 22장과 26장)에 바울은 자기 변명을 수행했습니다. 그 변명의 내용은 예루살렘에서 자기보다 탁월한 유대교 신자가 없었다는 것과 자신이 바리새인으로 사두개인과 같지 않다는 것도 증거했습니다(행 23장). 바울의 적극적이고 명확한 변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바울을 죽이는 방법뿐이었습니다(행 23:12-30). 바울을 죽이려는 악한 괴계는 바울이 복음을 로마에 전도할 수 있는 강한 순풍이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복음에 이탈하는 문제에 의해서 복음의 진수가 교회의 보화로 남게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느 때에든지 악을 선으로 유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악하기 때문에 악에 영향을 받거나 침몰될 수 없고, 선을 악으로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한 길 악을 선으로, 선을 더 큰 선으로 유용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사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제시했습니다. 여러분은 ○○○,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성경에서는 사도의 글만 있기 때문에 사도만이 교회의 일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루터와 칼빈은 “직업소명설(Berufung)”을 주창해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종인 것을 밝혔습니다. 직업소명설은 세상 속의 직업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수행하는 것과 함께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종이지만, 다른 소명을 받았습니다. 목사, 농부, 공무원, 기술자 등등 그 직업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 경륜을 파악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종으로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두 경륜이 아닌 구속 경륜에 전무된 소명자입니다. 교회를 세우고 보호하며, 주님의 양떼를 복음으로 돌보는 직무를 수행합니다.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다른 복음이 침투하자 사도인 바울은 신속하게 대응하며, 다른 복음을 교회에서 축출시키려 했습니다. 다른 복음이 교회에서 축출되었을까요? 주의 종에게 결과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결과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께 결과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의 종의 최선은 그 자체로 최선의 결과입니다. 주의 종의 최선의 결과가 사람이 보기에는 실패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종은 결코 멈추지 않고 복음을 전합니다. 주의 종에게 성공적인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복음의 정진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종은 결코 복음 증진과 전도를 멈출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이 혈통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되었다고 고백합니다(갈 1:1). 그리고 사람들을 기쁘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좋게하려고 한다고 고백했습니다(갈 1:10). 그리고 사람의 뜻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형성된 복음을 전한다고 고백했습니다(갈 1:11-12). 사도와 복음은 뗄 수 없는 조합입니다. 세상에서 복음의 시작은 사도에게서 말미암습니다. 한 주간의 복음의 시작은 주일예배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복음 사역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한 주 첫단추를 복음과 함께 시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사람, 세상의 것과 같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 하늘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전한 복음을 사람에게 받은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1:12). 그런데 여러분은 사람에게 복음을 받지 않았습니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을 받은 출처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라고 권면했습니다(딤후 3:14-16). 그런데 사도는 사람에게 복음을 받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사도 이후에 어느 누구도 사도처럼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직분의 독특성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람에게 복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지상에 예수께 복음을 받았지만 그는 부활하신 뒤에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질문했습니다(행 1:4).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서 담대하게 부활하신 주님과 성령보냄과 회개를 선포했습니다(행 2장). 사람에게 복음을 받은 우리도 담대하게 부활하시고 승천하심 주님과 성령을 보내심과 회개를 선포합니다. 사람에게 복음을 받았어도 사람에게 복음을 받지 않은 사도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이 같습니다. 복음을 받은 출처도 중요하지만, 전하는 복음의 내용이 결정적입니다. 전하는 복음의 내용이 같으면 권위와 권능이 동일합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받은 복음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입니다. 우리는 장로파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칼빈파라고 합니다. 그런데 스코틀랜드를 개혁한 위인은 존 낙스(John Knox, 1513-1572)입니다. 그의 선생, 패트릭 해밀턴(Patrick Hamilton, 1504-1528)은 순교했고, 동료 조지 위셔트(George Wishart, 1513-1546)도 순교했고, 그는 프랑스에 포로 잡혀 갤리선의 노예가 되었지만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잉글랜드의 도움으로 노예에서 해방되었는데(1549년), 피의 여왕 메리의 등극으로 다시 유럽으로 망명했습니다(1554년). 그리고 칼빈을 제네바에서 만났고, 스코틀랜드에 돌아와서 종교개혁을 주도했습니다(1559년, 1560년). 존 낙스는 1560년에 스코틀랜드신앙고백서를 작성하고 스코틀랜드 왕국의 종교개혁을 주도하며 체계화시켰습니다. 그리고 1643년 잉글랜드 의회파와 “엄숙 동맹과 언약(Solemn League and Covenant)”을 체결했고, 런던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작성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표준문서로 변경해서 채택했습니다. 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대, 소요리 문답이 우리의 선생입니다.

이 복음은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계시를 시간과 공간에서 계승한 복음입니다. 복음이 전파되고 유지는 되는 것도 성령의 돌봄으로만 가능한 은혜의 역사입니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복음은 사도가 전한 복음이기 때문에, 우리 장로파 교회는 사도적 교회(the Apostles Church)입니다. 우리는 복음이 사람의 뜻, 사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전달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복음은 반드시 사람이 전파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뜻과 사람으로가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복음의 내용이 전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계시로 복음을 받았지만, 전파할 때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수행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능력으로 복음이 전파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에게 받은 복음을 전파할 때에도 성령의 능력으로만 전파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출처에 대해서만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았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이 들어간 갈라디아 교회들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할례’가 이슈가 되어 교회에 혼란이 발생한 것입니다. 교회는 오직 주 예수의 이름이 드러나도록 협력하고, 논쟁에서도 합력해야 합니다. 우리시대에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동성애가 이슈이고, 좌파와 우파가 이슈라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다른 복음의 유형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시대 이슈를 피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대 이슈로 교회의 고유한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 진리의 깃발을 내리거나 가릴 수 없습니다. 시대 이슈에 편승한다면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 불변한 복음,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서 전력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께 영광이 세세토록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모든 영광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형람서원 고경태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