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전태규 목사】 끝이 안 좋아

  • 입력 2024.08.2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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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잘해 왔는데 끝이 안 좋아"

어느 날 내가 믿고 따르던 사람들의 말입니다. 진심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두 번째 듣는 소리였습니다.

어느 취임식에 참석했는데 격려사를 하는 분이 이임하는 분에게 주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인간은 네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처음에 좋았으나 나중에 나쁜 사람, 처음에 나빴으나 나중에 좋은 사람, 처음에도 나쁘고 끝도 나쁜 사람, 시작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해봅니다.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나는 첫 번째에 해당된다고나 할까요. 바울이 말한 양심을 따라 하나님께 질문해 봅니다. 이러한 나에게 주님은 이와 같은 말씀으로 위로해 주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5:10-12),

건방진 이야긴지 모르나 나는 나를 그런대로 안다고 봅니다. 배짱도 없으면서 진리 편에 선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때늦은 후회지만 아버님께서 생전에 의를 위해 싸우실 때 아들로서 용기를 드리지 못한 아쉬움에 못내 가슴이 아픕니다.

'탕자의 눈물' 이라는 복음성가 가사 중에 '넓고 큰길 가기보다 가시밭길을 택하리. 하늘 영광 사모하며 주님 가신길 가오리. 아버지여 나에게도 십자가를 들려주소서 땅 끝까지 증거하리다. 주님 사랑 전하리다.' 는 가사가 한없는 은혜로 다가옵니다.

사실 내가 군대에 입대하였을 때 그런 각오로 임했습니다. 만약에 교회에 못나가게 하면 탈영이라도 하겠다는 각오로 말입니다. 그런 나의 마음을 하나님이 읽으신 것일까? 최전방에 배치되었지만 단 한번도 교회 가는 일에 어려움을 받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른 병사들을 못 데리고 가게하려고 방해하던 상관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라는 말씀이 나에게 용기를 더합니다.

1993년 박사 과정을 끝낸 후 졸업식을 앞두고 학생들이 졸업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내가 속한 지방회에 감리사 선거가 있어서 졸업 여행을 취소하고 선거에 전력한 관계로 졸업 여행을 가지 못한 채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감독님이 하는 말이 "끝이 안 좋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이야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있지만 결코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오래 전 나에게는 참으로 곤란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한 단체의 선거에서 불행하게도 나는 교단의 입장에 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조직의 생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소신껏 그렇게 했습니다. 물론 많은 어려움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여전히 섣부른 결정도 있겠지만 성경 말씀과 같이 "" 아니면 "아니오"가 아닌가? 욕심도 없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싶습니다.

성경 말씀과 같이 내 믿음의 양심에 따라 '예' 아니면 '아니오' 하면 되지 않는가?
성경 말씀과 같이 내 믿음의 양심에 따라 '예' 아니면 '아니오' 하면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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