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인 연재】 장례의식과 애도

  • 입력 2020.03.04 10:41
  • 수정 2020.03.1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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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별자 가족 돌봄사역 (2)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시민의식이 높아지고 예전과 다른 죽음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기존의 장례의식은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전통적인 3일장 대신 1일장, 혹은 가족들끼리 조촐하게 모여 장례를 치르는 가정도 늘었습니다. 교회에서도 기독교 전통에 따라 장례식을 진행한다고 하지만 한국의 전통예절과 대척점에 서게 됨으로써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독단적인 모습으로 비추어지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장례식에서 하지 말라는 지침들이 많았으므로 가족 중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경우에는 가족끼리 불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음을 경험하는 바입니다. 또한 극단적 보수교단의 경우 불신자의 장례를 다루고 있지 않는 것은 진리 보수적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만 기독교 장례식이 세상과 소통하며 함께 하기보다는 교인들끼리만의 고립적인 예식이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장례의식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누구나 사별의 아픔을 겪게 되는데, 장례의식이 잘 진행된 경우에는 사별가족의 슬픔을 건강하게 해소하도록 돕고, 회복탄력성을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1. 장례의식의 기능

첫째, 장례식은 사별을 기정사실화하도록 도와줍니다. 장례의식을 통해 사별 가족들이 고인의 시신에 직면함으로 단지 주검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죽음의 현실과 고인의 종국(終局)을 납득시키도록 도와줍니다. 관 뚜껑을 개방하는지 혹은 폐쇄하는지의 여부는 시신에 지역이나 인종, 종교적 차이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이 장례식장이건 병원에서건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을 보는 것에는 필요합니다. 장례의식을 거행하는 것은 유족들이 사별 슬픔을 겪어내는 첫 번째 과업인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을 경험합니다.

둘째, 장례의식은 사람들에게 고인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사별 가족들이 고인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장례식은 고인과 대화할 기회를 줄입니다. 가족들이 고인과 만나는 시간은 입관순서의 기회뿐입니다. 많은 친구들이나 친척, 성도들은 그런 기회조차 없습니다. 그저 장례식장에 가서 인사하며 영정사진 너머로 고인을 추모할 뿐입니다. 고인과 대화한다고 해서 고인을 과도하게 이상화하거나 과대 칭송하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장례식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지라도 유족이 고인에게서 가장 그리워할 것과 그리워하지 않을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장례의식은 이와 같이 사람들이 고인에 대해서 말하는 자리를 마련해줌으로써 사별 슬픔을 겪어내는 과정을 도울 수 있습니다.

셋째, 장례의식은 돌아가신 고인의 인생 역정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고인의 가치관을 전체의식에 도입함으로써 고인에게 무엇이 중요했었는지 유족에게 확인시켜 줄 수 있습니다. 그 어떤 목회자의 장례식을 본 적이 있었는데, 친구들이나 그가 목회한 교회 성도들이 그에게서 들은 설교나 추모 글을 읽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주로 화장장에서 가족들과 기다리는 동안 고인이 어떻게 어디에서 살았는지 질문합니다. 그런 대답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고인의 인생역정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가족들 역시 장례의식에서 고인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넷째, 장례 의식은 고인의 사망이 일어난 후 즉시 유족과 근접한 사회적지지망을 이끌어내는 효력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적 지지는 사별 슬픔을 촉진하는데 매우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흔히 장례가 생기면 주변 지인들에게 통지를 돌립니다. 요 근래 들어 조용히 가족들끼리 모여 장례를 치르자는 분위기도 있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관계가 소원한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고 주변의 친한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너무 빨리 장례식을 치루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장례의식의 본연의 기능인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다섯째, 장례의식은 참여한 자들에게 천국을 소망하게 합니다. 아직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지 않고 있는 이들이 장례식에 참여하면서 천국에 가는 고인과 이를 천국으로 보내면서 자신도 천국 가고 싶은 마음이 불 일듯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장례식의 또 다른 목적입니다. 따라서 장례의식은 때에 따라 전도의 장이 됩니다.

 

2. 장례의식의 접근

장례의식을 집례하거나 돕는 교회는 장례의식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몇 가지를 염두에 두고 준비하거나 진행했으면 합니다.

첫째는 장례의식에 대해 더 심도 있는 이해가 있기 바랍니다. 왜 죽음이 있는지, 죽음 이후에는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 남은 가족들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교회공동체가 죽음을 경험하는 성도들에게 어떤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들입니다. 신학적, 문화적, 예식적, 목회적, 인문학적 소양을 지니고 접근했으면 합니다.

둘째로 공동체와 사별 가족에게 초점을 두었으면 합니다. 교회는 단순히 장례를 돕는 장례도우미가 아닙니다. 장례순서를 지시하는 장례지도사도 아닙니다. 가끔 성도들과 함께 장례식장에 찾아가면서 미안한 느낌이 많습니다. 사실은 생전에 고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례의식은 교회공동체에 유익이 많습니다. 수많은 장례식을 집례하면서 장례식은 교회에 유익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가족들 중에나 조문객들 중에는 믿지 않는 이들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장례식 설교는 항상 원초적 복음을 전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구원으로 초청하는 자리로 만드는 것입니다. 고인에 대해 말하기보다 주님의 능력,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야 합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교회에 다시 등록하는 유가족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전도하기 힘든 때에 장례식장은 전도관이 됩니다. 장례의식을 통해 유가족 개개인에게 주목하고 관심 갖는 기회가 됩니다.

셋째는 가족들이 죽음과 대면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죽음을 회피할수록 애도의 기간이 길어지고, 회복이 더디게 됩니다. 오히려 소원했던 고인의 죽음을 보면서 더욱 고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좋은 장례식은 그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예식의 순간마다 죽음의 의미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넷째로 진정한 애도가 무엇인가 의미를 생각하며 진행했으면 합니다. 장례가 많은 교회에서는 부교역자들이 장례를 집례합니다. 사정이 어쩔 수 없다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반대합니다. 적어도 우리교회에서 평생을, 그리고 죽기 전까지 충성했던 성도들이라면 담임목회자가 집례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같은 의미에서 결혼식 주례도 마찬가지 입니다. 부교역자나 타인은 고인에 대해 잘 알 수 없습니다. 안다 해도 그의 인생의 일부만 알뿐입니다. 그러니 장례의식에도 진정한 애도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장례의식을 집례하다 보면 집례자인 나도 갑자기 눈물이 납니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연출되는 것이 아니라 고인과의 관계, 고인을 이제 다시 볼 수 없다는 서운함이 눈물 흘리게 합니다.

다섯째, 장례의 집례자는 장례의식 가운데 가족들을 상담해 줄 수 있습니다. 따로 상담시간을 만들어야 상담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으로 장례의식을 진행하면서 불특정한 가족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으로 상담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례의식을 집례하면서 사별 가족의 입장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가족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죽음의 시간을 중심으로 필요한 다양한 과정과 절차의 안배를 해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것 외에도 유족과 지속적인 접촉을 유지하는 것도 사별 애도상담의 목적과 부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장례식이 끝난 후 목회자와 지속적인 접촉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또 다른 유족들은 이에 상처를 받지 않고 계속 관심을 보이는 것에 고마워할 것입니다.

여섯째, 교회 안에 ‘사별자 모임’과 같은 자조 집단이나 모임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규모가 작은 교회는 지역 사회의 다른 사별지지 집단을 후원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지역의 복지관이나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지지집단들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담임목회자나 담당 교역자들이 지역 사회에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사별 슬픔과 건강하게 사별을 애도하는 것에 대해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일곱째, 교회는 평소에 교인들에게 죽음준비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임종을 의사나 가족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미리 준비해 처리한다는 것은 자신의 죽음을 존엄하게 할 수 있습니다. 삶의 어느 단계에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가족 앞에서도 의연한 태도로 말을 남길 때 그 말은 상황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지닐 수도 있습니다. 존엄사 문제와 관련해서도 자신이 어떤 상태에 이르렀을 때 어떻게 해주기 바란다는 의지를 미리 분명하게 밝힐 필요도 있습니다. 사후에 화장을 할지, 매장을 할지, 이 두 방법을 함께 고려할지에 관해서, 묘를 쓸지, 납골당을 이용할 것인지, 수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상례 일체를 교회 상례부의 도움을 받아 진행할 것인지, 상조 회사에 맡길 것인지, 입관부터 하관까지 해주기 바라는 것을 구체적인 유언 형식으로 가족에게 말해 두도록 교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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