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의 머리에 일렁이는 불꽃

  • 입력 2020.12.0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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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사역자에게 고하는 말씀 (24)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성령의 통제를 받는 학자인 말씀사역자

세상이 말씀을 멸시해도 말씀 사역자들은 말씀을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 사역자들이 살며 쉴 수 있는 생존의 그루터기다. 말씀의 뿌리가 파헤쳐지면 말씀은 영존해도 말씀 사역자는 시들어 죽는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말씀이다. 천하를 얻어도 말씀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자가 되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말씀을 붙들고 있다면 모든 것을 소유한 자가 된다. 하나님은 말씀의 해석자들이 먼저 말씀을 귀중히 여기고 자신의 말씀 안에서 생명의 진리를 발견해내기 바라신다.

말씀은 머리가 아니라 영으로 이해해야 한다. 말씀의 해석자는 신학적 탁견(卓見)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적 통찰력으로 접근해야 한다. 말씀의 영이신 성령이 아니고는 인간의 모든 신학적 작업이란 한갓 허울 좋은 학문적 성과에 불과하다. 신학은 학문의 여왕이라 칭할만하다. 학자의 혀는 학자의 영에 의해 다스림 받아야 한다. 학자의 영이 있는 신학자는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성령의 통제를 받는 학자가 말씀을 해석할 때 말씀이 더욱 바르고 강해진다. 인간의 지성만으로는 영의 말씀을 단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한다.

말씀의 하나님을 발견하는 말씀사역자

지성에 지력이 있듯 영성에는 영력이 있다. 인품이 돋보여 상대의 마음을 끄는 것이 매력이라면 지성과 영성은 정신과 영혼이 풍기는 매력이다. 외모와 태도 같은 외관상 매력보다 강력한 것이 지성과 영성 같은 내면적 매력이다. 영적 혜안도 영력에 속한다. 성령의 기름 부음은 말씀을 대하는 모든 이에게 긴요하고 필수적이다. 성령이 말씀을 비추면 희미한 것을 드러내 바른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충만한 지식은 지식의 영이신 성령충만으로만 가능하다. 성령이 거하시는 자의 마음에는 말씀을 밝히 아는 비상한 지혜 곧 영적 통찰력이 주어진다. 성령은 통달의 영이시기에 그러하다.

말씀 사역자가 성경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면 청중도 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자가 전하는 말씀에서 청중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 설교자가 듣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을 청중이 알겠는가? 설교자가 만나지 못한 하나님을 청중이 만나기란 매우 어렵다. 말씀 사역자는 최우선적으로 성경에서 말씀의 하나님을 발견해야 한다. 당신 속에 생명이 충일하지 않으면 남에게 나눠줄 생명은 없다. 당신 영혼에 진리의 빛이 없으면 타인을 위한 한 줄기 빛도 나갈 수 없다. 당신이 먼저 살아야 남을 살릴 수 있고 당신이 먼저 변화해야 남을 변화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 속에 풍성히 거해야 한다.

말씀의 중앙에 진입하는 말씀사역자

말씀의 광채를 흐리게 한 것이 탐욕이라면 그 욕심을 갈기갈기 찢어버려야 한다. 말씀의 영광을 가로막은 것이 완고함이라면 그 고집을 사정없이 꺾어버려야 한다. 말씀의 능력을 약화시킨 것이 인본주의라면 인간 중심 사고를 여지없이 짓이겨야 한다. 말씀의 권위를 훼손한 것이 신학 사조라면 뒤틀린 프레임을 해체시켜야 한다. 말씀은 그지없이 거룩하고 아름답다. 시 119편에는 말씀의 광영이 흘러넘친다. 히브리어 알파벳 22자의 두운법을 따라 여덟 번에 걸쳐 반복 낭송된 176절의 장시를 둘러싼 것은 말씀의 영광이다.

검객은 검을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지만 검을 휘두름에 망설임이 없다. 영적 검객인 말씀 사역자들은 말씀을 활용함에 거침이 없어야 한다. 다윗의 세 용사 중 하나였던 엘르아살은 적들을 도륙할 때 칼이 그 손에 붙기까지 했으니 말씀의 용사는 모름지기 삶과 사역에서 말씀과 불가분리의 상태를 이루어야 당연하다. 말씀을 떠나 살 수 없고 말씀 없는 삶을 완강히 거부하는 의지가 바위 같아야 옳다. 다시 말해 말씀의 종은 말씀의 주변을 서성거리지 말고 늘 말씀의 중앙으로 진입해야 한다.

말씀은 기도의 불길을 따라 사방으로 번져

말씀의 영광으로 진입하는 문은 두텁고 강하다.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를 두루 도는 화염검이 이를 지킨다. 순결한 말씀은 한 점의 거짓이나 실낱같은 어둠을 용납하지 않는다.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 접하려면 심령이 은혜와 진리로 솎아져야 한다. 기도는 말씀 사역자의 심령을 거룩하게 만든다. 담대한 기도가 두텁고 강한 문을 뚫어 진리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성령의 불로 타오르는 영혼이 불타는 칼의 기운을 넘어 말씀의 열매에 접근하게 한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빛들의 아버지께서 티끌만한 그림자마저 남아있지 못하도록 빛으로 채우신다.

성소의 꺼지지 않던 등불처럼 기도는 꺼질 수 없는 영혼의 불이다. 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촛불처럼 기도로 자신을 태우는 자가 세상을 환히 밝힌다. 어둠 속에서 울부짖는 자의 영혼을 밝히는 것은 기도의 섬광(閃光)이다. 이 섬광이 기도자의 심령을 태우고 온 세상으로 번져갈 때 하나님은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이다. 세상의 온갖 불길을 삼켜버릴 수 있는 것은 기도의 불길 밖에 없다. 이 불길에 지옥불의 화염도 살라진다. 말씀은 이 불길을 따라 온 사방으로 퍼져간다.

로고스의 말씀이 레마의 말씀으로

대언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씀을 전하기에 반드시 전할 말씀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한다. 자기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긴 내용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 이는 직통 계시를 뜻함이 아니다. 예언자의 시대는 이미 끝이 났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 함은 특정한 시대와 상황을 위해 기록된 말씀이 오늘의 내게 살아있는 말씀으로 적용되게 함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표현 사용에 신중함을 기하는 것이 지혜이다. 너무 쉽게 이런 투로 말해버림은 바람직하지 않다.

말씀이 깨달아져 마음에 새겨질 때는 로고스이지만 깨달은 말씀이 구체적 행동으로 열매를 맺을 때 레마가 된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로고스로 보고 레마는 자신에게 특별한 경험으로 와 닿은 말씀으로 나누지만 둘은 상호 전용이 가능하다. 여하튼 예언의 말씀은 예언의 영이 임함으로 그 의미를 밝힐 수 있다. 바울이 계시의 영을 그토록 강조한 이유도 말씀에 감춰진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눈이 열리지 않으면 말씀이 지니고 있는 깊은 뜻을 알 수 없다. 눈이 열려야 말씀의 기이한 법을 깨닫는다.

설교자의 머리에 일렁이는 불꽃

대언자에게는 말씀의 불씨가 있다. 불씨만 보존되면 불꽃을 일으키기란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지옥도 화염 덩어리지만 말씀도 불이다. 다만 지옥의 불이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소멸의 불인 반면에 말씀의 불은 모든 것을 소생시키는 생명의 불이다. 호렙산 가시덤불에 붙었던 불은 소생의 불이었기에 타지 않았다. 화염이 충천해도 타는 냄새도 없고 재도 남기지 않기에 화마와는 거리가 멀었다. 과연 시내 산에 강림하신 여호와의 오른손에는 불같은 율법이 있었다. 하나님은 불꽃으로 비유되었는데 불씨인 말씀에서 불꽃이 일어난다. 말씀충만이란 말씀의 불이 거세게 타올라 불덩어리를 이룬 상태에 해당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을 나무로, 자신을 불로 비유하셨다. 다니엘과 에스겔은 환상 중에서 하나님의 보좌가 불꽃이며 불의 강이 흐르고 있음을 묘사했다. 말씀이 불신자에게는 심판의 불이지만 믿는 자에게는 생명과 구원의 불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는 성령이 불의 혀같이 갈라져 각 사람의 머리 위에 머물러 있었다. 오늘날 회중이 설교자의 머리에 일렁이는 불꽃을 보지 못함은 무엇보다 설교자의 허물이다. 가슴이 뜨겁게 타오르면 그의 메시지가 불씨가 되어 사방으로 튀게 마련이고 회중 가운데 누군가는 설교자의 머리에 타오른 불길을 본다. 로이드 존스가 자신의 설교를 “불붙은 논리”(logic on fire)라 표현했음은 모든 설교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령의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온 영혼이 아니면 불이 붙지 않은 설교를 붙들어 메마른 논리만 남는다. ‘불을 받는다!’ 함은 말씀을 받고 성령을 받음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대언자가 말씀을 받음은 성령의 불을 받음과도 상통한다. 이 불을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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