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그에게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하리라

  • 입력 2021.01.05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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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92) 흰 돌(a white stone)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인생은 발달 단계와 각 단계에서 이루어야 할 목표의 복합체이다. 발달은 이정표(milestone)에 따라 움직인다. 이정표에 ‘돌(stone)’이 들어간다. 각 단계에는 디딤돌과 걸림돌이 놓여 있다. 전자는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돌이다. 후자는 방해가 되는 돌이다. 그리스도께서 버가모 교회에게 걸림돌이 많은 세상에서 이긴 자들에게 흰 돌을 주시겠다고 약속한다.

‘흰 돌’에 해당하는 ‘yh'fo" leukov"’(프페포스 류코스)는 의도적 암시다. 프세포스는 ‘조약돌’, ‘돌’, ‘보석’이다. 이 돌은 정육면체 혹은 직사각형의 작은 돌 혹은 상아이든 하나 이상의 면에 글자나 이미지를 새겨진 다른 물질로 판단된다. ‘마술 보석’ 또는 ‘마술 호부’라는 특별한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다. 단순히 ‘투표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흰 돌은 행운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로 연관이 있는 역사적인 것들을 암시할 가능성이 있다. 다양한 배경이 존재한다.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만나게 될 현상이다.

버가모에서 대부분의 건축 재료는 진한 갈색의 화강암이었다. 비문은 흰 대리석에 새겼다. Thracia에는 모든 좋은 날을 흰 돌로 표시하는 관습이 존재했다. 이것은 액운을 막는 부적이자 주문 같은 것이었을 수 있다. 흰 돌 이미지는 호의적인 심판을 의미한다. 고대 배심원은 어떤 사람의 유죄를 투표로 결정하기 위해서 검은 돌을 사용했다. 흰 돌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성도들의 의로움을 묘사한다. 무죄 선고를 의미했다. 무죄 평결 또는 찬성투표를 위한 투표에서는 흰 조약돌을 항아리에 던졌다. 흰 돌은 이기거나 법정에서 정당함이 입증되었던 사람을 뜻한다. 흰 돌의 의미는 아마도 세상 제도들을 이기는 자들에게 우상의 제물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내린 유죄 파결을 뒤집는, 즉 무죄를 가리킬 것이다.

1. 그리스도는 이기는 자에게 흰 돌을 주신다

버가모 축제에는 그 지방의 경기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버가모에서는 주기적으로 이 축제와 경기가 열렸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등수 안에 들면 손등에 도장을 찍어 준다. 경기에서 승리한 검투사에게 흰 돌이 주어졌다. 통상적으로 길드의 회원이나 경주의 승리자는 축제에 참석하여 마음대로 음식을 먹거나 경주에 참가하기 위한 티켓으로 돌을 사용했다. 공적 의식에 참석하는 데 필요한 입장권으로는 여러 빛깔의 조약돌이 사용되었다. 흰 돌은 아마도 고대의 테세라로 표, 패, 주사위에 사용된 돌이다. 작은 돌덩어리나 상아에 글자나 상징들을 새겨 넣기도 했다. 투표나 공동 행사의 티켓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이 돌이 약속의 땅 혹은 낙원으로 가는 입장권일 것이다.

흰 돌을 받았다는 것은 식사 초대와 연결된 징표, 즉 테세라와 연관이 있다. 물론 타당성은 약하다. 공적인 회합이나 축제 등에 입장할 수 있는 증거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보다 가능성이 높다. 요한계시록에서 ‘흰색’이 늘 의를 가리키는 비유로 13번 사용된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의미한다. 이것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은 내용 직후에 언급된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는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다. 주인공 리즈는 친구가 일러준 조크대로 실천한다. ‘꿈꾸지만 말고 꿈꾸는 걸 실천하는 삶을 살라. 그녀는 ’복권(ticket)‘ 대신 ’비행기 탑승권(ticket)‘을 마련한다.

아폴로 15호를 타고 달에 착륙한 James Irwin에게 흰 돌을 보물이었다. 그는 달에서 흰 돌을 채취하였다. 선교사가 된 어윈은 간증을 하였다. “제가 달에서 찾아낸 이 보석은 제 인생을 보람 있고 행복하게 만든 요인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 돌이 제 인생에 구원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습니다...저는 이보다 더 중요한 보석을 이 땅에서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 돌을 산 돌이요, 보배로운 모퉁잇돌이라고 부릅니다. 그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흰 돌’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라는 초대가 된다. 잔치 음식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만나’가 언급된 것에서 지지받는다. 예수님이 성찬 때 참여하실 하나님 나라의 잔치, 즉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새 만나일 것이다.

예수님은 ‘충성된 증인’이다. 예수님의 호칭을 안디바가 나누어 가진다. 안디바는 그리스도에게 충성스러운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순교자다. 안디바는 요한계시록의 언급을 제외하고 거의 알려진 바 없다. 버가모의 3세기 비문에 새겨져 있다. 테르툴리아누스가 이 인물을 언급했다. 안디바는 이교주의 혹은 아마도 구체적으로는 황제 숭배 때문에 순교에 이르게 했을 것이다. ‘충성된 증인’으로서 그는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다. 그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랐다. 이 땅에서 불의한 재판, 불공평한 판결을 받아 화형을 당했다. 끝이 아니다.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악이 승리한 것이 아니다. 최후심판이 남아 있다. 버가모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자들의 판결을 뒤집어실 것이다.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안디바와 같이 믿음을 지킨 자에게 흰 돌을 주시며 새 이름을 새겨 주실 것이다. 정당함이 인정된다. 명예를 회복한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만나와 더불어 보석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또 다른 전통에 따르면, 대제사장이 입은 에봇의 어깨에 있는 보석들은 감춰진 법궤에 보관되었고, 메시야의 때에 계시될 것이다. 메시야 잔치의 맥락에서 감추어진 만나는 잔치에 초대되었던 징표로 사용된 정육면체인 테세라(tessera)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검은 돌은 악명 높은 프리기아의 어머니 여신인 퀴벨레(Cybele)에 대한 신성한 상징이었다. 의료용으로 사용되던 흰 돌은 유대와 관련이 있다. 양피지(Parchment)란 말은 헬라어 Pergamene에서 나왔다. ‘버가모 가문에서 나온 가죽’이란 뜻이다. 버가모 도시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양피지에 기록된 것은 언젠가 사라져 버린다. 돌에 새겨진 것은 그렇지 않다. 언어유희를 찾아볼 수 있다. 로마에서는 옥수수의 정기적인 공급을 약속해 주기 위해 황제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기고 했다. 운동 경기의 승자나, 대중들에게 존경을 얻어 다른 싸움에서 은퇴를 허락 받은 검투사에게도 주어졌다.

2.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주시리라

‘새 이름’을 받는다는 것은 ‘자기 외에는 아는 자가 없는’ 예수님의 승리하신 왕의 ‘이름’을 받는다는 의미다. 이교 신들은 때때로 새로운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숭배자들에게 새 이름을 수여하였다. 이스라엘 역사에도, 이름의 변화는 종종 약속과 관련이 있었다. 흰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은 친근한 교제가 일어나는 종말론적 식사를 더욱 확증한다. 이 이름들은 모두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과 가지는 친근한 종말론적 임재를 가리킨다. 이스라엘 성도들은 예루살렘으로 환유법으로 언급된다.

예루살렘은 새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이사야 본문에서 새 이름은 이스라엘 미래의 왕으로서 지위와 야훼의 언약적 임재로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이기는 자에게 ‘새 이름’을 주실 것이다. 경주의 승리자에게 축제에 참여하도록 주어진 돌과 무죄 투표의 의미를 결합시킨 것이 될 것이다.

고대 세계와 구약성경에서 새 이름을 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지위를 가리켰다. 하나님의 이름이 구약성경의 어느 곳에 적용이 되는 경우, 그것은 그의 임재가 그곳에 계심을 의미한다. 구약은 이름을 바꾸는 것을 약속과 관련시켰다. 일반적으로 사람이나 사물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하거나 선포하는 것은 그것이 명명된 사람의 소유임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야훼께 속한 것으로 인침을 받거나 표를 받았던 사람에 대해 진술하는 묵시를 돌아보게 한다.

이기는 자들의 이름은 질적으로 새롭다. 즉 그것은 새 시대에 적절한 것이다. 흰 돌은 그 위에 새겨진 신성한 이름과 관련하여 해석해야 한다. ‘새 이름’은 미래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위에 관해 예언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새 이름은 신의 이름을 받은 것으로 종종 여겨졌다. 하나님의 이름과 조합된 것으로 여겼다. 새 이름은 이사야 56:5과 특히 62:2을 암시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새 이름을 주신다. 수치를 제하여 주실 것을 약속한다(사 62:4). 새 예루살렘과 새 창조의 시대에 적합하다(사 65:15-19).

새 이름을 받는다는 것은 구원받은 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참된 회원의 표시다. 그것이 없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에 들어갈 수 없다. 사탄의 이름과 대조된다. 버가모와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두 통의 편지는 ‘이기는 자’는 ‘새 이름’을 상속을 받는 것으로써 결론을 맺는다. 죽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의 이름을 소유하고 있다. 그 이름에 포함된 미래의 약속이 그리스도와 동일시될 때를 암시함을 보여준다.

그리스도는 충성된 신자가 새 이름과 함께 흰 돌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 이미지는 신원과 명예을 상징한다. 새 이름, 분명히 그리스도의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의 이미지는 궁극적으로 물질은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이 정죄하는 그 믿음을 귀하게 여기시는 그리스도로부터 온다는 견해를 강조한다. 신자들은 흰 돌에 새 이름을 받는다.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의 주권적인 권위 아래에서 그리스도의 친근해진다. 종말론적인 임재 및 능력에 절정으로 동일시된다. 연합되는 최후의 상을 받는 것을 뜻한다.

랍비의 구전에 따르면, 값비싼 보석들이 만나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졌다. 이 언급은 대제사장의 흉배에 있던 돌을 지칭하는 것일 수 있다. 우림일 수도 있다. 새 이름은 어떤 사람의 신분에 대한 새로운 묘사를 나타낼 수 있다. 요한계시록 문맥에서는 아마도 하나님과 어린 양의 감추어진 이름일 것이며, 또한 그들은 이 이름을 영원히 지닐 것이다. 버가모 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진 돌은 흰색이다. 신앙의 승리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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