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단절된 예배,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예배

  • 입력 2021.03.12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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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인 칼럼】 미래교회의 예배 (25)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세상과 단절된 예배

그런데 그동안 한국교회의 예배는 세상과 단절된 예배였다. 주지하다시피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 세상으로 나가 살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즉 예배하는 자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 간의 만남이요, 그것은 다시 세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동안 한국 교회는 예배를 지나치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간의 교제에만 초점을 맞춘 ‘교회 안의 의식’으로 제한시켜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와 세상의 교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이러한 예배는 교회로 하여금 세상에 대한 책임과 사명을 소홀하게 하도록 했고, 세상으로부터는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함으로써, 오늘 한국 교회의 위기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여 오신 것은 하나님과 세상을 잇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예배 역시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세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모여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은 흩어져서 또한 세상을 섬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배와 관련하여 사용되는 단어 중 구약의 아바드(צָכַר)ָ와 신약 헬라어에서의 레이투르기아(λειτουργια)는 본래 ‘섬김’을 의미하는 말이다. 예배의식(Liturgy)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 예배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섬김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 나아가서 세상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다” (마 20:28).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예배를 통해서 그 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섬기셨듯이 또한 세상을 섬길 수 있어야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행위는 교회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 교회 밖으로 확대되어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예배신학의 정립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예배를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예배 신학이 정확한지? 우리 예배는 신학적으로 정통에 속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 자신이 신학적 정립 없이 함부로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기독교 신학 가운데 ‘예배신학’은 매우 중요하다. 예배에는 분명한 신학적인 틀이 있어야 하고, 그 틀 위에 예배를 가르치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신학이 정립되지 않는 채 마구잡이로 드리는 예배는 취약할 수밖에 없고, 잘못된 신학은 잘못된 예배를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한국 교회는 자신의 예배가 어떤 신학적 기반 위에 세워져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을 찬양하고, 구속에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받을 은혜를 구한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자신의 뜻을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고, 인간들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그러므로 예배란 하나님과 백성들이 함께 만나는 “계시와 응답의 현장”이다. 그런가 하면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의 과정과 함께 다시 인간과 인간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함께 예배하는 성도들과의 교제로 이어지며, 더 나아가서는 예배하는 공동체인 교회와 교회 밖 세상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예배란 하나님과 교회,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이 함께 연결되어지는 삼위일체적인 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기독교 예배, 특별히 한국 교회의 예배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의 관계에만 치중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하겠다. 예배에 대한 이런 신학적 입장의 견지나 제한된 관점은 교회와 세상사회와의 단절을 필연적으로 가져올 수밖에 없도록 한다. 그 결과 한국 교회는 교회 안에서의 예배는 열심이지만, 세상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오히려 교회 스스로가 고립되어져 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개인과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춘, 즉 세상과의 관계를 도외시한 교회의 예배 신학이 가져온 왜곡된 결과라고 하겠다. 이러한 예배 신학은 결국 교회의 사명과 역할을 제한시키며, 잘못된 예배는 교회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타락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세 교회처럼 21세기의 한국 교회가 세상을 향한 빛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그 내부적으로는 더욱 부패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면에서 교회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예배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재정립해야 한다.

예배신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예배는 “하나님과 그 백성들 사이의 만남”으로 본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응답을 한다. 우리 인간은 예배를 통해서 창조주시요 구속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섬기며 찬양하며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배를 통해서 은혜와 자비와 축복을 베푸신다. 이렇게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고 영적인 교제가 함께 이루어지는 자리인 것이다. 우리 인간의 첫째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첫째 일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마땅히 하나님께 예배하고, 예배를 통해서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예배신학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성도의 교제”다. 예배는 하나님과 그 백성 간의 만남과 함께, 다시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다. 같은 신앙을 가지고 같은 하나님을 함께 예배한 성도들이 예배를 통해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면서, 서로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과 예배하는 사람들과의 수직적인 교제뿐만 아니라 예배하는 사람들과의 수평적인 교제가 있음으로써, 예배를 통해 신앙공동체인 교회를 더욱 굳건하게 하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교제를 최우선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 부분에 있어서 한국 교회는 매우 왜곡되어 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과의 수직적인 관계에서는 열심이지만, 수평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소홀함을 보게 된다. 갈수록 개인주의적인 신앙 양태들이 교회 안에서 확대되어 가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예배신학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세상을 향한 사랑의 교제”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고, 성도간의 사랑의 교제를 나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는 이제 그 교제의 범위를 세상으로까지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 예배를 믿는 사람들만의 예배로 인식하고서, 예배를 세상과 분리시켜 버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배에 대한 소아적 신학관은 기독교예배를 제한시켜 버린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로부터만 예배를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을 통해서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예배는 사실 전 우주적인 것이다.

예배신학에서 네 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세상 속에서의 예배”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교회 안에 갇힌 예배가 아니라 세상을 향하여 열린 예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와 세상”이 함께 만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스택하우스(Max L. Stackhouse)는 신학은 공공의 삶의 영역들을 해석하며 ‘공적 담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공적신학은 진정한 이웃 사랑의 방법이기도 하다. 미래교회는 예배의 범위를 교회 안뿐만 아니라 교회 밖 세상으로까지 확대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구원의 방주가 되며, 이 세상에서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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