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인 칼럼】 미래교회의 예배 (26)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성경적인 예배

신학적으로 예배를 정립했다면, 우리 예배의 모범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교파의 헌장이나 헌법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어차피 헌장이나, 헌법, 교리 등은 모두 성경을 기초로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교파별로 예배가 상이하고, 다른 주장을 한다 해도 가장 기본은 성경이다. 가장 성경적이며, 복음주의적인 예배는 어떤 것인가?

첫째, 하나님이 예배하도록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우리가 예배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구원하셨으며,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다만 구원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 자신의 만족이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예배하도록 자기 백성을 선택하셨다고 말한다(시 10:1-3). 하나님의 선택의 목적은 “예배를 위해서”이다. 기독교에서 선택 교리는 무익하거나 사변적인 교리가 아니라 예배의 원동력이 된다.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 구원의 과정을 배우고, 구원의 전 과정을 알고 나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그

영광스러움을 깨닫는 다면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범사에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될 것이다.

둘째,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이 우리 예배의 근거가 된다. 주님의 말씀처럼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아버지”께 예배한다(요 4:23). 윌리엄 보에케스타인이 유명한 말을 남겼다. “참된 예배자는 ‘하나님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삼위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이다. 바울 사도 역시,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8)라고 했다. 여기서 예배는 아들 예수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레이번(Robert Rayburn) 역시 이렇게 말한바 있다. “올바른 예배는 예배자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다. 경건한 신자들이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합당한 경배와 찬양과 존귀와 복종을 바치고, 그 분이 말씀과 성례를 통해 제공하시는 영적 양식을 받는 것이다”. 레이번의 지적처럼 예배자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님에도 현대 예배를 보면, 예배 인도자들이 회중들의 눈치를 보면서 집례하고 있다. 성경적인 예배는 교회가 예배자들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 아니다. 예배자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시 16:12, 13).

셋째, 예배의 수단은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도록 우리에게 계시한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성경으로 예배해야 한다. 예수께서 알려주신 것처럼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고 할 때에 전자는 예배자 안에 있는 주관적인 현실이며, 후자는 예배자 밖에 있는 객관적인 현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한다면, 예배는 마음의 문제이자, 성경의 통제를 받는 진리의 문제이다. 둘 중에 하나라도 빠뜨린다면, 우리의 예배는 성경의 통제를 받지 않는 감정주의로 흐르거나, 온전한 마음이 결여된 형식주의로 흐를 수 있다. 로버트 갓프리(W. Robert Godfrey)는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들은 성경을 예배의 지침으로 삼으려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려했다. 그 이유는 말씀이 우리를 가르쳐 주고, 하나님께로 나가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섬기고, 예배한다.”라고 했다. 말씀을 중심으로 성경적 예배를 구상한다면 이제부터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도 어디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다.

Jean Francois Millet(1814~1875), The Angelus ,밀레 만종
Jean Francois Millet(1814~1875), The Angelus ,밀레 만종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예배

미래교회 예배라 해서 예배가 교회당 안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예배로 전환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교회 밖으로 나가는 예배자들의 모임은 시작되었고, 일부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이유는 몇 가지 있는데, 김현준은 그의 논문 “교회 밖 신앙모임의 종교적 기능” 에서 1) 제도 종교의 성스러움 독점에 대한 저항, 2) 신앙적 순례 외 교회 밖 예배의 긍정, 3) 세속성과 초월성이 통합되는 예배, 4) 차별화된 사회적, 공적 영성의 추구 등으로 주장한다. 논문에서 “가나안 신자들” 과 “유목민 신자들” “세속성자 수요모임” 등을 언급하는데, 이들은 “예배가 타락해서, 오염되어서가 아니라 아직 충분한 예배가 우리에게 있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의 틀 안에서 예배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기능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대안적 예배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이 아닐지라도 교회는 세상 속으로 더 많이, 더 자주 들어가야 한다. 기독교 신앙에서 ‘사회적 영성’을 제거하는 것은 아예 신앙이 아닐 수 있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교회에서 보여주는 ‘사회성’이나 ‘공공성’은 주변부가 아니라, 복음주의 신앙 자체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로 작용될 것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제102회 총회에서는 “거룩한 교회, 다시 세상속으로”(요 3:16, 창 12:3, 마 9:35)를 주제로 삼았다. 당시 설교자인 최기학 목사는 “다시 세상 속으로'라는 말은 이 시대뿐 아니라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며, 이제 거룩한 교회는 복음으로 무장하고 세상 속으로 나가야 한다."며 "거룩한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린다. 교회의 본질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첫째,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며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큰 것과 이 세상을 창조 하신 그분의 아들을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내주었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뿐 아니라, 교회 밖 불신 영혼도 사랑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두 번째로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과학으로 눈부시게 발전하고 풍족해도 그것은 착각이다. 하나님 없는 과학이 완전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다"며 "주님은 마을로 다니시며 사역을 하셨다. 마을목회를 위해 마을 주민을 교인으로 섬기고 목회를 하자"고 했다.

그는 "마지막 세 번째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라며 "이제는 교회가 세상 속으로 찾아 들어가 마을을 섬기고 변화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목회 프로그램을 가진 교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매우 시의적절한 주제이며, 미래교회의 과제로 보인다.

한편, 영국의 종교학자 린다 우드헤드와 폴 힐라스는 세상의 종교 형태를 “차이점의 종교”(religion in diference), “인본적 종교”(religion in humanity)와 “삶의 영성”(spirituality in life)으로 나누었다. 전통적인 종교의 구분 방식이 아니라, 모든 종교 안에 이 세 가지 유형이 다들어 있다는 것이다. 차이점의 종교란, 나와 남의 진영을 구분하고, 나의 종교 진영과 다른 종교 진영의 ‘차이’점을 부각하는 형태다. 대표적으로는 근본주의나 열광주의적 종교형태를 들 수 있다. 차이점의 종교 중 극단적 차이점의 종교(religion of heightened difference)로 이행할 때, 증오나 갈등, 때로 폭력과 테러 혹은 전쟁까지 나아갈 수 있다. 이에 거의 대척점에 선 “삶의 영성적 종교” 역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차이점의 종교가 나의 종교 진영과 타자의 종교 진영의 간극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스스로를 정체화 했다면, 삶의 영성은 인간의 겉과 속을 이분화 시켜 내적인 확실성을 실체로 간주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삶의 영성”(spirituality in life), “일터의 영성”(spirituality in the workplace))에 대한 관심은 서구의 현상만이 아니다. 한국교회에 많은 도전을 줄 전망이다.

데이브 기븐스(Dave Gibons)는 “교회는 빌딩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무엇이 발생하느냐에 관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바 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란, 세상 가치가 지배하는 일터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기 위해 처절하게 영적 싸움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주일만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나머지의 삶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다. 우리는 모두 일터로 파송된 선교사이다. 주부는 가정이, 학생은 학교가 그 일터이다. 일터는 삶의 한가운데 있고, 모든 사람이 대부분의 삶을 보내는 곳이다. 그럼에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일터에서 올바르게 사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기독교가 일터에서의 영향력을 포기하면 다른 세속적 가치들이 주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말하자면 일터 영성에 무심한 교회는 직장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두 주인을 섬기도록 내모는 것과 같다. 신앙과 일터에서의 삶을 조화시켜야 한다. '교회 안에 갇힌 교회', '세상과 단절된 한국 교회'가 아니라 세상으로 내려가 세상에서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미래교회 예배는 교회당 안에서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더 잘 예배하도록 성도들을 도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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