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인 칼럼】 미래교회의 예배 (24)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코로나19가 주는 충격이 엄청나다. 물론 대상들 마다 다르겠지만, 코로나 때문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예배일 것이다. 작은 교회들은 물론이고 큰 교회들도 영상예배에 대해 이해가 많지 않은 가운데 갑자기 영상예배로 전환하면서 많은 혼란과 시행착오를 거쳤다. 봄 심방을 취소하거나, 전화로 심방을 대신하기도 하고, 교회학교의 경우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온라인을 통한 교사들 미팅이나 교육, 영상자료 제공으로 주일예배를 대신했지만, 성도들의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금방 종료될 것이 아니라 길어진다는데 있다. 우리는 이제 먼 미래가 아니라 당장 매주 드리는 예배에 대해 보다 심각하게 생각할 때이다. 그동안은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예배를 준비하여 드렸다면, 지금은 주말이 되면, 이번 주는 무사히 예배할 수 있을까 걱정하게 된다. 당장 나부터도 주말에 확진자가 얼마나 되나 확인하면서 주일을 준비하게 된다. 예배의 문제 본래 종교개혁자들은 초기 기독교의 예배 전통을 회복하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중세교회가 초기교회의 예배 전통을 왜곡, 굴절, 변질시키거나 첨삭한 것들을 복원하는 노력을 했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중요한 과제는 예배개혁을 통한 신앙개혁이었다. 개혁자들이 초기교회 때부터 전승된 예배유산을 보전하고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는 중에 과격한 개혁자들에 의해서 예전적인 예배전통을 약화시킨 경향도 나타났다. 그리하여 프로테스탄트교회는 개혁의 강조점에 따라서 예배의식이 달라지고, 여러 교파의 생성으로 예배의 통일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다양한 예배형식이 나타나게 되었다. 개혁파 교회는 초기교회의 예배전통을 회복해나감으로 가톨릭교회가 굴절시키거나 변형시킨 것을 다시 바로잡는 예배회복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해왔다.

송인웅 목사는 예배에 대한 개혁자들의 공로를 몇 가지 소개했다. 특별히 공헌한 것은 예배 중에 가장 중요한 말씀(복음)을 회복한 것이요, 둘째는 구경꾼으로 만들어버린 회중을 찾아서 예배의 중심에 앉힌 것이요, 셋째는 제사상으로 만들어버린 성찬상을 하나님 백성의 잔칫상으로 회복한 것이며, 넷째는 사제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예배 프로그램을 “회중의 예배”(of Laos), “회중을 위한 예배”(for Laos)로 회복시켰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에 예배의식이 중요하지만, 기독교는 특히 예배가 중요한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예배는 교회를 살리고, 성도들의 신앙을 굳건하게 한다. 예배 때문에 즐거워하고, 기뻐하면서 춤추기도 하지만, 때론 예배가 잘못되어 생명력을 잃고 타락하기도 한다. 과거 기독교의 역사를 보아도 예배가 흥겹고, 축제같이 잘 드려질 때 교회는 매우 성장하고 성도들이 차고 넘쳤다. 그러나 예배를 소홀히 하고 인간 중심의 예배를 드리기 시작할 때부터 교회는 생명력을 잃었다. 교회들이 예배의 힘이 줄어든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첫째는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와 세속주의 때문이다.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는데, 교회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고, 교회 안에 흘러 들어온 세속주의가 예배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본주의의 영향이다. 예배에서 영성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는 대신 예배에 참여하는 신자들을 위한 인간중심, 편리주의로 흘러가는 경향에서 약화되는 것이다. 교회의 장년부, 교육부서 할 것 없이, 성도들의 편리함을 이유로 예배를 빼뜨리게 되고 교육부서도 일주일에 고작 한 번의 예배밖에 드리지 못하고 있다. 세 번째는 교역자들이 예배를 잘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의 참 사명이 예배에 있음에도 성도들에게 바른 예배를 가르치지 않아 예배의 중요성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이호영은 성도들에게 예배를 가르쳐야 한다면서, 특히 예배 중 기도를 가르치고, 찬양을 가르치며, 말씀 선포의 중요성도 강조하라고 했다. 여기서 말씀선포는 설교가 아니라 성경봉독이다. 그는 기독교의 설교가 복음적이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그리고 성찬을 무작정 실시하기보다 가르쳐 집례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주일저녁예배와 수요기도회 역시 문제점이 있다면서 예배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네 번째는 흥미와 감동으로 눈길을 끌려고 하는 잘못된 동기 때문이다. 회중의 관심과 기대 욕구에 따라가는 재미와 감동을 추구하다보니 예배의 신비감, 즉 축제적인 예배로 치우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송인규 목사는 이것을 ‘조작된 감동’이라고 지적하면서 인위적으로 청중을 감동시키려는 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섯째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예배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예배출석이 저조하다고 교회들마다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도입한다. 그 결과 교회의 본질인 예배를 소홀하게 되어 예배가 약화되는 것이다. 예배가 아닌 프로그램으로도 예배를 대신할 수 있다는 오류가 현대교회에서 예배가 약화되게 한 것이다.

최진봉 교수는 최근 기윤실 토론회에서 “‘예배 없는 교회, 교회 없는 예배’라는 초유의 상황을 코로나19가 가져왔다. 예배 출석은 곧 교회 출석이라는 예배와 교회 간 필연적 관계가 깨졌다”며 “앞으로 주일에 부담 없이 교회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예배하는 교인들이 증가하고 교회의 절대 시간으로 여겨진 ‘주일’로서의 개념도 점차 상대화 될 수 있다” 고 예측했다. 정장복 교수는 중세 교회를 병들게 했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예배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중세, 그중에 중세 후반기의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 행위인 예배의 현장이 그 의미를 잃고, 예배 속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의 역사가 발생되지 못함으로써 그 결과 교회의 신앙이 약화되고 변질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세의 화려한 의식만 있고 생동감을 잃어버린 예배, 예배 속에서의 말씀의 부재, 들어도 듣지 못하는 예전(禮典) 언어, 라틴어로 말미암은 회중과의 커뮤니케이션 단절, 성만찬에 대한 신비주의의 강조로 말미암은 미신적 신앙 등이 교회를 변질시킨 것이다. 나는 한국교회 역시 침체의 원인을 외부에 있지 않고 기독교 내부에 있다고 늘 주장하고 있다. 거기에는 교회 지도자들의 타락이나 신학적 문제 등이 포함되겠으나, 예배의 추락이 교회의 추락을 자초하는 것이다. 예배에 대한 바른 신학이 정립되어 있지 않고, 예배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나 정확한 이해가 없이 지금까지 예배하는 일에만 그저 열심을 가졌다. 그러다보니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새삼 예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예배 문제는 매우 다양하여 한두 가지로 요약할 수 없다. 그러나 미래교회의 예배는 지금처럼 ‘교회당 안에서의 예배’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드리는 예배’로 전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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