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으리라

  • 입력 2021.08.1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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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123) 나라(Kingdom)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나라에 해당하는 basileiva’(바실레이아)의 본래의 의미는 왕이 되는 것이다. 왕의 지위와 왕권을 뜻한다. 왕위(office of king) 또는 왕정(kingly rule)으로 가장 잘 번역된다. 요한계시록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고 하늘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이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고, 그를 믿는 공동체를 나라라고 언급하고 있다. ‘나라로 삼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리스도의 피로 죄에서 해방 받은 자, 즉 구원받은 자가 현재 통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라에 속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정당한 권세가 창조주와 어린양에게 속한다고 고백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그를 따르는 자들은 나라로 삼으신다.

나라와 제사장은 출애굽기 19:6을 상기시킨다. 요한은 출애굽기의 제사장 나라나라와 제사장으로 약간 변경시킨다. ‘나라가 대개 통치자의 통치권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시편 105:13에서, 통치자가 다스리는 나라민족과 동의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이 단어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위해 피조물을 대리통치한 것처럼(1:26-27), 위임된 권한을 암시했다.

 

1. 그리스도께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다

야훼가 왕이시다과 달리 야훼께서 왕이 되신다는 동적 개념이다. 즉위식 시편의 외침이다.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에서 표현된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세워질 이스라엘이 자신의 말에 순종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면, 그들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왕적 제사장이다. 초대교회는 스스로를 이스라엘의 참된 계승자로 이해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에서 추방당하고, 황제 숭배를 거부하였다. 자신들의 영적인 조상들에게 약속된 모든 복의 상속자라고 생각했다. 이 특권이 의미하고 예상하는 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성취되고, 재림으로 완성된다.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을 위한 왕과 제사장으로 삼아주셨다고 선포한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떠올리게 된다. 훈민정음으로 펴낸 첫 책이다. 용이 날아올라 하늘을 다스리듯 훌륭한 임금이 세상에 나와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노래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늘을 날아올라 하늘을 다스리지 않는다.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왕과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다.

나라와 제사장이란 이미지는 왕적인 제사장권또는 제사장적인 나라로 이해하는 것에는 약간의 모호함이 있다. 둘 다 왕적이거나 제사장적인 요소와 관계가 있음은 분명하다. 출애굽기 19장은 이스라엘이 거룩하고 하나님에게 구별된 백성들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열방과 야훼 사이를 연결하는 중재자의 의무와 예배자의 의무를 진술한다. 특히 이스라엘의 사명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요한은 이 칭호와 사명을 모든 신자들에게 적용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성취된 새 하늘과 새 땅의 실체로서의 하늘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우리 역사 속에서 성취되지 않은 지상교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전자의 영광과 능력, 계시를 통해 어떻게 후자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맞이하는지 그 일련의 구원의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교회가 주는 세례에 의해 나라가 된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새 이스라엘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새 언약의 중재자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강하게 돌보실 것을 반복하신 후에 하나님의 약속들이 이어진다. 그 약속들은 이스라엘을 모든 열방과 구별시키지만, 그들의 순종에 달려 있는 조건부 약속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귀중한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19:5-6).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박으로부터 구원하셔서 그의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다. 현재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어떤 한 나라(a kingdom)이지 그 나라(the kingdom)가 아니다. 그 나라는 모든 피조물을 포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파라오의 노예에서 하나님 나라의 명예로운 구성원으로 변화된 이스라엘을 본다. ‘제사장 나라이다. ‘제사장들의 왕권또는 제사장들인 왕들’, 제사장 같은 왕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치적·종교적 소명을 연합시킨다. LXX왕의 제사장 직분으로 번역한다. 이 번역이 베드로전서 2:9에 인용된다. 요한은 하나님을 위한 백성이 한 가지 특권을 생각하고 있기보다는 두 가지 특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요한이 나라와 제사장이미지를 가져온 이유가 무엇인가. Platon은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사회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철학자는 이성적이고 지혜롭기 때문에 누구보다 나라를 정의롭게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은 이상적인 사회가 철학자가 아닌 왕이나 제사장이 다스리는 나라를 말하지 않는다. 신천지 이만희는 신천지 신도 수가 144,000명이 되면, 신도들도 불로불사하며 세상을 다스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된다고 가르친다. 2015년 신도 수가 144000을 넘겼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이미 사망한 신도들도 대다수다. 감염 검사를 받았다는 이씨를 비롯해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것이 팩트다.

아마도 많은 유대 신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이유로 회당에서 추방되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고소당하였다. 가이사를 숭배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보복을 당하였다. 요한은 청중들이 여전히 이스라엘의 유산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이라는 자긍심을 불러일으킨다.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약속된 역할을 들먹이면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영광스러운 지위가 찬양을 불러일으키는 점을 강조한다(벧전 2:9).

현재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어떤 한 나라(a kingdom)이지

그 나라(the kingdom)가 아니다.

 

2. 성도들이 영원한 나라를 얻다

신천지 교주 이만희가 코로나19 감염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직접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본인은 정말 영생불사하는지’ ‘코로나19 감염 사태가 성경 속 요한계시록의 말세 징조인지인지 묻는 국민일보 기자의 질문을 못 들은 척 외면했다. 임박한 종말론은 다니엘 7장에서 사람의 아들의 왕국과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의 왕국이 개념에서 초월적인 수준으로 향상된다. 사람의 아들, 즉 그리스도에게 나라가 위임되었을 때 동시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에게 나라가 주어졌다. 집합적으로 나라. 개인적으로 제사장들이다. 전자는 그리스도의 높아지심과 관련이 있다. 왕 같은 위치를 강조한다. 후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역할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요한은 종말론적 성취에서 조망한다. 네 생물과 네 장로들은 어린 양이 자신의 피로 사신 자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와 제사장이 된 것에 대해 찬양한다(5:10). 이러한 나라가 다니엘의 환상에서 예언하는 것처럼(7:22, 27), 예수님과 함께 다스릴것이다. 영원한 나라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들에게로 하늘의 영역에서 이양된다(7:12). 그리고 짐승 넷으로 상징되는 지상의 여러 제국들이 지극히 높으신 의의 성도들이 다스리는 초월적인 통치로 교체된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하나의 실재로서 다루어졌다. 예수님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그들의 참된 주권자라고 고백 안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한 나라이다.

나라와 제사장은 출애굽기 19:6에 나오는 제사장 나라와 연관이 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에 대한 요약이다. 이것은 본래 그들이 이방인에게 구원을 베풀기 위한 계시를 선포하는 자리에서 나온다. 그들은 야훼의 빛을 중재하는 왕적이고 제사장적인 나라가 될 것을 의미했다.

동서양을 구별 짓는 것 중의 하나가 있다. 삶에 대한 태도다. 서양은 대체로 삶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을 일을 하면서 산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어쩌면 일을 위해, 남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산다고도 할 수 있다. Indra Chauhan은 인도의 음유시인이자 명상가다.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생을 바쳐도 되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 그것은 마음과 영혼이 기뻐하는 일이어야 한다. 마음도 몸도 피곤하지 않은 일, 이것이 세상에서 해야 할 사명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일생을 바쳐도 피곤하지 않을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으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나라로 삼으신 것은 세상 나라도 자신을 위한 왕국도 아닌 하나님을 위한 나라다. 우리의 노력과 공로와 성취로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고 하나님에 의해 완성되는 나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파종기와 그 완성과 심판이 실현될 추수기 사이의 중간기(Between times)’를 산다.

세상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와 이항 대립을 이룬다. 그 이유는 뭔가. 이 세상 나라들이 이 세상의 신, 즉 마귀에게 예속하는 까닭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이 명백히 짐승으로 표현하는 로마 황제에 관하여 특히 사실이다. 이 세상 나라는 지위와 돈과 권력이 최고라고 가르친다. 이것을 잃으면 끝장이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적을 둔 사람은 다르다. 약함, 고난, 가난, 버림이 가까우면 하나님 나라도 가까운 것이다. 진정한 보물, 진정한 정체성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현재에는 땅의 파괴자들이 나라를 지배하고자 한다. 미래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주권이 악의 종말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 후에 구원받은 자들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왕되심에 참여함으로써 왕 노릇’(reign)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파종기와

그 완성과 심판이 실현될

추수기 사이의

중간기(Between times)’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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