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과 근대화의 산실 영명학교를 세운 우리암 선교사

  • 입력 2021.09.23 18:38
  • 수정 2021.12.03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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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33)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45)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KC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KC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13:24)

욥은 욥기 13장에서 자신이 죄가 많은 자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나의 죄악(아오노트)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피쉐이)과 죄(하타니)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23). 이 재앙의 시대에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데에서부터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갈 수 있는 문제 해결의 지름길을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일어나는 종말론적 현상은 이루 말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실종되고 산불이 나고 우상처럼 여기던 사람이 죽음을 당하고 세계 도처에 불의와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이 몰락하는 현실을 본다. 욥은 이러한 현실들과 자신의 암담한 처지에서 자신의 어렸을 때 지은 죄까지 끄집어 내여 회개할 의사를 가진다.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메로로트) 기록하시며 내가 젊었을 때에(네우라이) 지은 죄를 내가 받게 하시오며 내 발을 차꼬(바사드)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점검하시나이다”(13:26-27). 욥은 괴로운 현실 속에서 이전에 있었던 일들로 인해 이러한 고난의 상황을 받게 하느냐고 하나님께 항변한다. 욥기 13-14장은 소발의 1차 변론에 대한 욥의 답변이다. 욥은 여기서 지혜의 허망함과 한계를 말하며 동시데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토로할 수 있도록 직접 하나님께 변론하고자 한다. 자신의 불경죄를 넘어서 죽음을 무릎 쓰고라도 자신의 억울함을 항변하고 싶었다.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우케라) 내가 대답하리이다(웨아노키 에에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와하쉬베니)”(22).

많은 사람들이 이 팬데믹 상황에서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한다. 자연재해 때문에 지진과 기근으로 인해 먹을 것이 없어서 생명의 양식을 찾아서 이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멕시코와 텍사스 국경 지대에 있는 다리 밑에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운집하는 모습을 본다. 욥기에서는 한 개인의 고통을 욥이 토로하고 있다.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13-14). 하지만 공동체와 국가에서도, 재앙의 현실을 당하는 문제는 한 개인의 고통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본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15). 오늘의 일어나는 모습이 죽음과 고난의 현실이다. 희망이 없는 상태이다. 이 때 욥은 하나님과 만나서 문제 해결을 보겠다는 입장이다. 신앙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 안에서 문제 해결을 보지 않으려 한다. “경건하지 않는 자(하네프, 위선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리슈아) 되리라”(13:16).

우리는 이 환난과 재앙의 날에 주님 앞에 나서야 한다. 욥은 주님의 얼굴을 피하지 않고 숨지 않겠다고 한다. 물론 두 가지 선결조건을 말한다.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시오며 주의 위엄(에마트카)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실 것이니이다(테바아타니)”(21). 두려움과 질병에 대한 요구를 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두려움이 사라지고 또 예수의 보혈의 피로 치유의 역사를 가지게 된다. 이 복음의 자유를 전하는 분이 바로 선교사였다.

우리암 선교사와 (윌리엄스 Frank. E. C. Williams, 1883-1962) 우광복
우리암 선교사와 (윌리엄스 Frank. E. C. Williams, 1883-1962) 우광복

한국 복음화의 초기 선교사 중에 공주 지방에 복음을 전한 분이 윌리엄스(Frank. E. C. Williams, 1883-1962)였다. 그는 한국 이름이 우리암 선교사(부인 우애리시)로서 1906-1940, 1945-1954년에 공주와 서울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19063월 샤프 선교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후임으로 내한하여 영명학교(중흥학교 설립)를 중심으로 공주지방 선교를 하였다. 민족해방운동의 씨앗으로 만세운동을 벌이며 항일 운동을 하게 한다. 또 그는 신사참배 거부로 강제 출국 당하게 된다. 그는 33년간의 교장으로서 독립 유공자 22명을 배출하는 교육을 하였고 독립운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미 군정청에 농업 정책 고문으로 내한하여 한국 근대화와 대한민국 수립에 기여하였다. 두 자녀도(조지 윌리웜스-우광복, 올리브 윌리암스-9세 타계) 공주 영명학교 뒤편에 묻혀 있다. 한 지역을 변화시키고 한 민족의 빛을 전하는 선교사의 손길은 오늘도 암흑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광선으로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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