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79)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91)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여호와여 주의 증거(에도테이카)들이 매우 확실하고(네에메누) 거룩함(코데쉬)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여호와는 영원무궁하시리이다(레오레크 야밈)”(93:5).

세상은 물가가 치솟고 환율이 높아져서 살기 힘들다고 한다. 아직도 팬데믹의 전염병이 우리 주위에서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추석 연휴로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고 한층 나아진 마음으로 우리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신앙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하며 힘을 얻고 소망을 가진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말라크) 스스로 권위를(게우트) 입으셨도다(라베쉬 라베쉬) 여호와께서 능력의 옷(아도나이 오즈)을 입으시며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테벨)도 견고히 서서(티콘)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발 티모트)”(93:1). 시편 93편은 축제 신화를 가진 시편으로서 성전에서 땅이 견고하며 맹렬한 바다의 큰 물결이 일어도 땅은 태초에 창조되던 때보다 더 창조의 힘을 보여준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아디르 바마롬 아도나이)은 많은 물소리(마임 라빔)와 바다의 큰 파도(미쉬베레 얌)보다 크니이다(아디림)”(93:4).

세상이 아무리 난리로 아우성치고 야단법석을 쳐도 또 환난의 도가니처럼 불안하고 두렵게 하여도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고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이 없고 견고하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주의 보좌(키스아카)는 예로부터(메아즈) 견고히 섰으며(나콘)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메오람)”(93:2). 팬데믹의 현실이 아무리 요란을 치고 전쟁과 기근, 홍수와 죽음의 소식으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여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말씀이 우리를 평안과 안식으로 인도하신다. “여호와여 큰 물(네하로트)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네하로크)이 그 소리를 높였으니(나쉬우) 큰 물이 그 물결(마크암)을 높이나이다”(93:3). 아무리 떠들 법석한 상황이 되고 대적자와 원수들이 군대처럼 무력으로 공격을 해 온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갈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능력이 되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그의 보좌에 앉아계셔서 통치하는 사실을 믿고 그에게 의지하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

이 시편 93편은 신화와 현실 사이에 불일치가 전혀 없다. 이스라엘 축제 신화의 핵은 역사의 실체를 기억한다. 다시 말해 출애굽의 신앙과 이스라엘의 선택, 언약과 가나안 땅의 인도 등을 고백하게 된다. 이 시편은 제의, 행위, 말씀이 결합되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통한 하나님 신앙을 축제에서 고백하는 노래이다. 기드론 계곡에 있는 기혼 샘물을 통해 거룩한 물이 가을 축제 제단에 흘러나오는 때에 가을 우기의 비가 풍성하게 흐르는 것을 상징하며 희생제사가 이뤄짐을 보여준다. 이 시편은 애굽의 오시리스의 죽음과 호루스의 투쟁과 승리 신화, 바빌론과 앗시리아의 마르둑이 원시 대양의 용과의 싸움에서 승리함, 가나안의 바알신이 모트를 이기는 승리신화 등과 유사하다. 여호와가 성전에 왕으로 등극하여 축제의 대관식 행사를 하며 드라마적인 특징으로 여호와가 나타나서 싸우시고 승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시편을 통해 예배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감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곧 이스라엘이 성전에 가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신앙고백을 하며, 승리하신 여호와를 기리며 노래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러한 승리의 찬양의 자리에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의 선교를 하였던 초기 한국 선교사들이 있다.

1903년 원산 부흥 운동은 남감리회 여선교사들을 중심으로 로버트 하디를 통해 일어났다. 캐롤(Arrea Carrol, 1870-갈월(葛月))과 노울스(Mary Knowles)가 원산에서 중국에서 사역하다가 방문한 화이트 선교사를 맞이하면서 하운셀과 매컬리 등과 함께 사경회를 함으로 시작된다. 캐롤과 노울스는 원산에서 여자 기숙사를 열어서 원산 루씨 여학교(樓氏 女學校)의 모태가 되었다. 1906년 노울스는 여성을 상대로 선교 활동을 활발히 하여 남촌 예배당 아래에 5-6칸짜리 초가집을 구하여 반렬방이라 이름을 짓고 한글과 성경을 가르쳤다. 남감리회 해외 선교부 총무 콥(Alice Cobb)이 원산을 방문했다가 이를 보고 후원금을 모집하여 그 기름으로 1909년 원산에 성서학원을 설립하게 된다. 여기서 여성 사역자들이 길러졌고 나중에 성서학원과 반렬방이 1925년 보혜여자관(保惠女子館)으로 발전하였다.

아레나 캐롤은 개성과 원산에서 여성 교육 선교를 하였으며 개성에 호수돈 여학교를 세우고 원산에 루씨 여학교를 세웠다. 그녀는 189912월 개성에서 <쌍소나무집> 초가집을 인수하여 12명 여자 어린이를 교육하여 호수돈 여학교의 시작이 되었다.

아레나 캐롤 선교사와 1910년 당시 교문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 이름이 선명하다.
아레나 캐롤 선교사와 1910년 당시 교문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 이름이 선명하다.

1904년 와그너 선교사와 함께 기숙 여학교를 만들어 건축 후원자의 이름을 기념하여 탈류야 학당(두울라 학당)으로 불렸고 나중에 호수돈 여학당으로 변경되었다. 이 호수돈 여학당은 평양 대부흥 운동의 불씨가 되었고 19193.1운동 때 개성지방 만세 운동을 이끌었다. 한편 루씨 여학교(1903, 캐롤과 놀스 설립)1907년 마이어스가 교장에 취임하며 1909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이 때 <상록수>의 저자 최영신이 졸업생이다. 캐롤은 선교사 콜리어의 청혼으로 1911년 결혼을 하고 19141차 세계 대전으로 남편 콜리어가 연합군 지원 선교사로 선발되어 이동하게 된다. 캐롤은 혼자 한국에서 사역하다가 1920년 남편이 거주하는 체코로 이동하였다가 나중 미국에서 남편과 목회를 하였다(호수돈 백년사). 그 유적지들은 사라졌지만 선교역사는 남아서 오늘 우리에게 따뜻한 선교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언젠가 회복된 통일 조국에서 그 아쉬운 노래를 다시 부를 날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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