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구목사 설교] 하늘의 상급(고전3:10-15)

  • 입력 2021.09.25 17:31
  • 수정 2021.09.2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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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90:12).우리들이 인생을 경주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기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해본 일이 있습니까?

시편 기자는 스스로의 살아 갈 날을 계수하면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무엇을 먼저 하여야 할지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살지를 생각하며 사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히9:27절의,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신 말씀대로, 죽음과 심판이 모든 사람에게 정해진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생애가 끝나는 순간과 생애를 결산하는 심판의 자리에서 징벌이 아닌 상급을 예비하도록 살아야 할 것입니다. 재미있는 우화 한 토막입니다. 옛날에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개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개가 특별히 자랑하는 것은, 자기가 아주 잘 달리는 달리기 선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그런데 하루는 그 개가 토끼 한 마리를 발견하고 쫓아갔는데 그만 놓치고 말았습니다그것은 대 망신이었습니다. 다른 개들이 마구 놀렸습니다. 그러자 그 개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자네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 토끼는 목숨을 위해서 뛰었고, 나는 그냥 저녁 식사거리를 위해서 뛰었다는 점일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하여 달리는 것은 잠시 있을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나 의식주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이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경주는 생명을 얻고 또한 상급을 얻도록 달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9:24-25절에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장차 성도가 받을 심판은 무엇이며, 이 땅에서 어떻게 네세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의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건축가로 비유하십니다. 즉 성도는 자신을 위하여 장래의 영원한 집을 짓는 건축가입니다. 성도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은 영원한 삶을 위하여 자신의 집을 짓는 건축가입니다. 불신자와 성도가 짓는 집이 다른 것은 먼저 기초의 문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과 신념을 기초로 집을 짓습니다. 그리고 집을 짓는 재료도 세상의 없어질 부귀영화에 불과합니다. 이들의 집은 이 세상에서 뿐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성도 된 우리가 집을 짓는 것은 어떠합니까?

 

1. 영원한 기초위에 집을 지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가, 이탈리아에 있는 피사의 사탑입니다. 건축물이 아름다워 유명하기보다, 매년 탑이 조금씩 기울어지기 때문에 유명합니다. 피사의 사탑은, 일 년에 약, 1mm 정도씩 기울어진다고 합니다. 1350년에 완공되었는데, 현재는 약 5m 정도가 기울어졌습니다. 과학의 힘을 동원해서, 탑이 기울어지는 것을 멈추게 했고, 26cm 정도를 회복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지는 이유는, 건물의 무게를, 지반이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보듯이, 어떤 건축물이든, 그 기초가 튼튼해야, 어떤 환경의 변화에도 견디어 냅니다.

뉴욕의 맨해튼에, 100층이 넘는 빌딩들이 즐비하게 설 수 있는 것은, 이 맨해튼 지반이, 암반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튼튼한 암반 위에 기초를 놓으니,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도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집을 지을 때, 기초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어느 터 위에 세우고 있는지를 잘 돌아봐야 합니다. 내 믿음을, 사람과의 관계 위에 두면, 사람에 의해 항상 휘청거립니다. 또한, 단순한 즐거움과 성공 위에 두면, 쉽게 지치고 실망합니다. 그런가 하면, 명예와 직분 중심 위에 두면, 그 믿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에 따라, 환경에 따라, 내 감정에 따라 쉽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변하는 것 위에 신앙의 건물을 쌓으면, 쉽게 흔들리고 무너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짓는 새 집의 견고한 터전, 흔들리지 않는 터전, 폭풍우와 비바람을 견딜 수 있는 터전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본분에서 사도바울은, 그 터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아직도 세상의 허무한 것을 기초로 삼고 집을 지으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들이 애써 모아놓은 재산, 정성을 들여 가꾸어 온 가정, 심혈을 기울인 건강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들입니다.

딤전6:7절에서는,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하셨고,

요한일서2:17절에서는,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것은 영원한 생명과 집을 위하여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그래서 주님께서는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고,

딤전6:18-19절에,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2. 가치 있는 재료를 사용해야 합니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많은 재료가 필요합니다. 터를 마련하고 기초를 닦았으면 이제는 설계도에 따라 그 위에 집을 지어야 합니다. 물론 설계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집을 짓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집을 지어야 합니다. 즉 성도가 살아가는 모든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재료를 사용해야 합니까? 본문12절에서 성도가 영원한 집을 짓는 재료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6가지의 자재가 나오는데, 이것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 보석과, 나무, , 지푸라기입니다. 좋은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자재 하나 하나를 선택하는데 깊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정성을 다합니다. 그래야, 건물이 튼튼하고 조화롭습니다.

그러나, 건축 자재를 되는대로 선택하며, 이것저것으로 그냥 편안한 대로 구하여 짓는다면, 그 건물이 아름다울 수가 없고, 튼튼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여기에서 구분하는 자재는 바로, 바른 자세와 바르지 못한 그른 자세입니다.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집을 지으라고 말씀하는 것은, 실제로 그런 재료를 사용하라는 뜻이 아니라, 정성을 모아 인생의 집을 지으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금이나 은이, 땅에서 그것을 캤다고 해서, 다 보석이 아닙니다. 금광에서 캐낸 금덩이라 하더라도, 용광로에 들어가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연단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그 금덩이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뜨거운 용광로에 들어갔다 와야 하는 고통이 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금으로 집을 짓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집을 짓는 사람이, 대충대충 짓진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비싼 재료를 사용해서 집을 짓는데, 얼렁뚱땅 대충 지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정성을 들이는 건물은, 짓기가 쉽지 않습니다. 소요되는 비용도 많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시간도 많이 필요합니다. 또 노력도 그만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집을 지을 때, 나무와 풀과 지푸라기로 지으면, 대충 지어도 됩니다.

대체로 아프리카는 이런 집을 짓고 사는 것 같습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집은, 짓기도 또한 매우 쉽습니다. 대충 기둥만 세워놓고, 나뭇잎이나 풀 등으로 지붕을 덮기만 하면, 금새 집 한 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손쉽게 지은 집은, 가치가 없습니다. 또 쉽게 무너지고 맙니다.

이렇듯이, 우리의 믿음의 집을 지을 때, 어떤 자세를 가지고, 얼마만큼 헌신적이고, 열심을 가지고 임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권면하기를, 다시 짓는 우리 인생의 집이, 우리 신앙의 집이, 흔들림이 없는 집이기 위해서는, 집을 짓는 자세가 바라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따라, 진솔하게, 그리고 정성을 다하여, 우리의 신앙의 집을, 인생의 집을 새롭게 지으시기를 바랍니다.

딤후4:7-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성전 앞에 서셔서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헌금함에 헌금을 넣는 광경을 보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그 모습을 다 보시고서, 과부의 동전 두 닢을 그 날의 최고의 예물로 인정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드린 금전과 은전들, 이들은 동전 두 닢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왜 가장 적은 가치가 최고의 예물로 꼽혔겠습니까? 이는 그 과부가 최선을 다하여 드렸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눅21:3-4절에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하고 최선의 모습을 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의 헌신과 예물이 어떠함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드림과 헌신을 낱낱이 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상적인 가치관이나 우리가 가진 가치관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힘에서 최선을 다하는지 적당히 하는지를 구별하시고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위하여 최선의 힘으로 하나님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생명을 다하는 최선의 헌신을 할 때에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건축 재료가 하나님의 나라에 예비 될 것입니다.

 

3. 지은 집을 심판할 때가옵니다.

 

본문13절에서,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공적을 개역판에서는 공력으로 표현하였고 개정판에서는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단어 공적으로 단어를 바꾸었습니다밝힌다는 것은 성격의 본질을 드러내어 밝힌다는 뜻입니다.

그날에는 각 사람의 행한 일에 대하여 결과를 밝힌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집도, 준공 검사를 받는 때가 온다고, 말씀합니다. 한 마디로, 불에 의한 공력 테스트를 받아야 하고, 그것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그 날이나오는데, 바로 불이 임하는 날입니다. , 심판의 날입니다. 이 말인 즉, 모든 일에 있어서, 역사적인 심판, 종말적인 심판이 꼭 있다는 사실입니다. 심판의 날에, 불로 임하는 공력 테스트가 임할 것인데, 그 때, 불에 의해 한 순간에 타서 없어지는 집이 있고, 불에 견디는 집이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며, 불의 심판에, 집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집이 타버리면, 구원을 받되,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합니다.그러면 공적을 무엇으로 나타냅니까?

공적 드러나는 방식이 불 심판에 의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불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각 사람의 행한 일이 합당한지를 시험한다고 밝힙니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바울은 완벽한 불의 시험을 거친 후에 그 결과를 따라 상급 받을 것을 말합니다. 각자의 행함을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상입니다(고후 5:10).

사도 요한도 계시록을 통해 각자가 받을 상이 있음을 안내합니다. 내가 줄 상이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22:12).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상급은 일한 결과를 따라 하나님의 주시는 대로 받습니다. 각자의 행한 일 즉 공적에 따라 상급을 받으며 그 상급은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서의 공력 시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의 심판을 면제받은 성도들이 받는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상급을 좌우하는 심판입니다.

공적이 불타면이란? 나름으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마지막 불 심판대 앞에 서 보니 공적이 사라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칭찬받을 만한 상급이 없어서 겨우 구원만 받습니다. 이를 흔히 부끄러운 구원이라 표현합니다. 그 구원도 불 가운데서 받은 것처럼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이야 모든 집들이 나름대로 아름답고 훌륭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공력을 밝히는 시험의 불을 통과하면 세상에서 살면서 행했던 결과가 나타납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은 불을 견딜 수 없어서 다 타버릴 것이고,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더욱 광택이 날 것입니다.

세상에서 쉽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의 결과는 터만 남아서 겨우 구원은 받겠지만, 영원을 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무주택자로 전전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 나라에 터를 마련하고 기초는 예비했지만, 세상에서 영원한 삶을 위하여 예비한 것이 없어서 겨우 목숨만 건지는 구원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어느 한 순간도 헛되이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이 소중한 시간을 육신을 위하여 다 써버리고 나면, 무주택자, 부끄러운 구원만이 남을 뿐입니다.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어려움이나 고통, 고난은 감내해야 할 과정입니다.

벧전5:10절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으로 인한 고난은 공짜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생명의 구원으로만 만족하지 마시고, 영원한 삶을 위하여 좋은 집, 아름다운 상급을 준비합시다. 조금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 최선을 다합시다. 내 육신을 위하여 주님의 일을 멀리하다 보면 결국은 후회만 남기게 됩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진실하고 정직하고 충성스러운 생활로 좋은 상급을 예비하므로 영광스러운 우리 모두의 집이 다 예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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