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에 역사의 어두움 속에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쳤습니다. ‘
예비'라는 말은 "방향을 돌이킨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길은 새로운 길을 닦는 것만 아니라, 곁길로 가던 사람,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 뒤돌아 섰던 사람이 올바른 길로 돌아가는 것이 주의 길 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하고 힘껏 달려가도 잘못된 길을 간다면 기다리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왕을 맞을 려면 왕을 맞을 만한 대로로 나가야 합니다. 왕을 기다리는 사람은 넓고 평탄하게 닦아진 길로 오시는 왕을 마중할 수 있도록 곁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옛날에 왕이 어느 곳에 백성들을 돌보려고 갈려고 하려면, 먼저 전위대들이 나가서 나갈 길을 고릅니다.
길이 여러 군데이고 그 길의 높이과 길이가 다르기 때문에 파인 곳은 메우고, 높은 곳은 깎아 내고, 거친 것들은 땅을 골라서 평평하게 만들고, 굽은 길은 바르게 만들어서 왕이 편안하게 길을 가게 만듭니다. 세상에 전쟁이 일어 나도, 군인들이 그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길을 닦는 공병대원들이 먼저 나아가서 길을 만들어서 전투를 하기 쉽도록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길을 만들어놔야 뒤에 탱크도 가고, 군인들이 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만일에 길이 이곳저곳으로 막혀 있으면 앞으로 전진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산속에는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에 아스팔트를 깔아 논 길이 있습니다. 그러한 도로는 유사시에 사용할 군사도로입니다.
본문의 본문에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예비하되 광야에서 예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광야는 빈들입니다.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곳입니다. 돌멩이가 널려 있고 그저 황량하기만 합니다.
광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말씀을 뜻합니다. 즉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는 말씀이 있는 곳, 말씀이 들려오는 곳, 말씀을 만나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출15:22.16:1) 만나를 먹고 생수를 마셨습니다. 광야에서 왕의 오실 길을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광야는 이 세상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리는 백성들은 말씀이 들려오는 광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해야 할 일은 대로를 닦으라고 하였습니다. 대로란, 큰 길일 뿐 아니라 중요한 길을 뜻합니다. 자연히 만들어진 길이 아니라 들어올리고 깎고 다듬은 길, 곧은 길입니다. 구세주께서 오시는 길은 넓은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걷는 길은 좁은 길이지만, 주님께서 오시는 길은 넓게 열려 있어야 합니다
1. 우리의 삶에 예수님이 오시는 대로를 만들려면 과거의 상처의 골짜기를 메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맞이 할려면 먼저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이 패인 골짜기들과 같은 상태가 메워져야 합니다.
본문에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라고 말씀합니다. 골짜기는 과거의 상처입니다. 현대에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에 붙잡혀 삽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미래를 바라보고 꿈과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과거에 실패했던 경험,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늘 꾸중 받던 경험, 사업을 하다가 파산했던 경험,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경험. 이러한 것들이 마음속에 움푹 파인 골짜기를 만들어서 절망하게 하고, 낙심하게 하며, 그 상처에 매여 살게 합니다. 이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신과 의사는 “저 사람들은 과거에 받은 어느 상처에 붙잡혀서,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그 상처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겁니다.” 라고 말을 합니다. 좀 나아질 만하면 또 과거의 상처를 들먹이고, 또 얘기하고, 다시 또 원점으로 돌아가고. 그래서 과거의 기억을 지우는 그러한 약을 주고, 그러한 치료를 함에도 불구하고 늘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현재를 살고 있으나 마음은 자꾸 과거로 가서 머무르고 퇴보합니다. 만약 그들이 과거에 상처받은 그 기억을 지워버린다면, 정신병원에 있는 약 85%의 사람들이 그날 다 퇴원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과거의 상처에 붙잡혀 가지고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과거의 어떤 상처, 내가 남에게 무시당하고 짓밟히고, 억울한 일당하고, 이러한 일에 매여 산다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스스로 그런 웅덩이를 파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파인
웅덩이를 메워야
. 파인 채로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파인 상태에서 더 파이고, 더 파이고 하기 때문에 점점 더 상처는 깊어가고 절망은 깊어집니다.
예수 믿고 나서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간 것입니다. 더 이상 상처에 매여 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치료받았습니다.” “나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나는 주님의 은혜로 삽니다.” 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치료를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야 합니다. 사람을 찾아서 사람에게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지 말고, 예수님 께 나와서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 주님 앞에서 치료함 받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과거의 모든 상처를 치료함 받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제 이 상처의 골짜기를 예수님의 보혈로 채워서 상처가 변하여 치유가 되고,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고, 낙심이 변하여 용기가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2. 교만의 산을 낮추라고 하십니다
산은 높아진 교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교만의 산을 낮춰야 됩니다. 독선과 아집과 교만의 산과 언덕을 낮춰야 합니다.
본문에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라고 말했습니다. 골짜기가 많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또 한편에는 이 마음속에 언덕과 산이 많이 있는 분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아가 강하므로 누구에게 비난을 받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이 산과 같이 높고 낮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주님 앞에서 이 교만을 깨뜨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 한 우리는 늘 불편하고 이사람 저사람과 부딪히는 삶을 살 것입니다.
바닷가에 가보면 돌이 있는데 모두 몽글 몽글합니다. 왜냐하면 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계속 파도에 맞아서 부드러워진 것입니다.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내가 늘 다스려야 되고, 늘 남들이 나의 말을 복종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그 인생은 힘들고 어려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교만했는지 “우리가 너희들보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바리새인들이다.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도 하고, 철저하게 십일조도 드리고, 십계명 다 지켜 행한다. 너희들은 죄가운데 살지만 우리는 너희와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생각하면서 교만이 꽉 들어찬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자기들만이 존경받고 대접을 받아야 되는데, “예수”라는 분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자꾸 예수님을 따라가니까 그것에 저들의 속이 뒤집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일 궁리를 하였더라” 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받아야 될 영광을 예수님이 가져갔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던 바리새인, 사두개인, 제사장과 같은 이들, 그들이 한마음이 되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독선과 아집과 교만의
산과 언덕을 낮춰야
우리가 다 그 바리새인들처럼 교만하기에 문제가 생겨나고 어려움이 생겨납니다. 왜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홀로 존귀 받아야 되는 이 교회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더 나타내고 “나”를 강조한다면 우린 상처투성이로 살게 될 것입니다.
섬김은 훈련입니다. 끊임없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나를 쳐서 복종시켜야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나 때문입니다 라고 말할 때 깨어지고 낮아지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약4장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기록합니다. 또한 눅14장 11절에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세례 요한의 고백이 요3장30절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하였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예수님만이 높임 받으시고 존귀케 되길 원합니다. 내 모습은 주님 앞에서 사라져버리고 주님의 모습만 남기 원하는 모습 그것이 은혜이요 교만의 산이 무너진 평탄한 길인 것입니다.
3. 굽어진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본문에,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라고 말씀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굽어진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에 이미 무엇인가 본인이 자랄 때 큰 상처를 남긴 것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굽어져 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삐딱하게 봅니다.
렘17장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육신의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장애가 문제입니다. 마음의 장애를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삐뚤게 봅니다. 매사가 부정적입니다. 그 입을 열면 늘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원망 불평하는 이야기만 합니다. 그 좋은 많은 내용을 다 뒤에 두고, 한두 가지 문제점만 지적해서 이야기 합니다.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늘 비판적인 시각으로 남을 판단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불을 받으면 불신앙적인 생각이 신앙적인 생각이 되고, 매사에 불평하는 것이 감사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한때 굽어진 마음을 가졌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그 굽어진 마음을 가지고 형이 받을 장자권의 축복을 빼앗았던 그가 이십 년 동안 외삼촌 집에서 깨어지고 난 다음, 얍복강 나룻터에서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굽어진 그가 바로 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야곱같이 독선적이고 자아가 강한 사람은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부러지고 자신의 아집이 깨어져야 무릅꿇고 겸손해지는 것입니다.그래야만이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그릇이 되어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는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귀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굽어진 마음이
바르게 펴져야
4. 험한 곳이 평지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여러 가지의 길이 있지만 험한 길이 있습니다. 돌들이 많고, 가시와 엉겅퀴가 있고, 땅이 울퉁불퉁합니다. 그래서 이런 데는 불도저로 갈아 엎어 가지고 땅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되는데, 참 마음이 험한 사람들은 인생이 참 힘듭니다. 이 마음이 험한 사람들은 술 취하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술 취하면 폭력을 휘두르며 거친 삶을 삽니다. 예수 믿고 나서 거친 삶을 살면 안 됩니다. 부드럽고 온유해야만이 사람들이 따르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에게서 거친 모습이 사라지고 거친 말이 적어져야 하고 거친 인격을 가진 사람은 귀하게 쓰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완전히 제거해버리고 변화된 모습으로, 거룩해진 모습으로, 선한 모습으로 바뀌어져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사40:3절에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이처럼 주님의 길을 예비해야 됩니다.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낮추고, 굽은 것은 바로 하고, 거친 것은 평탄케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마음과 생활이 평지가 되어서 주님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거친 것은
평탄하게 되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