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하늘이 높고 바람은 시원하고 공기는 맑습니다. 가을은 단풍의 계절이고 사람이 활동하기에 적절한 계절이기에 운동회 등 여러 가지 행사도 있습니다. 우리 영혼과 마음도 높고 시원하게, 또 맑고 깨끗하게 살아야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참 좋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5000년 역사 이래 가장 잘 사는 시대가 이 시대라고 합니다. 조선시대 역사의 기록이 이조실록에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조 500년 실록을 뒤져보면 거의 모든 왕 때에 굶어 죽은 일들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우리가 태평성대로 알고 있는 세종대왕 때 만에도 세종 25년에 함길도에서만 흉년으로 굶어 죽은 인구가 1700명이나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실록을 보니 이조시대에 모든 왕이 재위시절에 2만 명이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조 때 가장 굶어 죽는 일이 없던 시절이 바로 연산군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결코 누려보지 못했던 것을 매일 누리고 있습니다. 겨울에도 싱싱한 과일을 먹고 여름에는 냉장고만 열면 시원한 음료수가 넘칩니다. 과거에는 잔칫날에만 겨우 고기를 맛볼 수 있었는데 오늘날은 매일 삼겹살 파티해도 됩니다. 또 얼마나 편리한 시대입니까 차만 타면 서울과 부산을 몇 시간만에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비행기는 1시간이면 오고 갑니다. 오늘날은 장수 시대로 우리나라 1900년대 초만 해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31세였다고 합니다. 어린아이가 하도 잘 죽었기 때문에 백일을 살면 그것을 기념하여 백일잔치를 하던 풍습이 생겼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린이가 병으로 죽는 일도 거의 없고 한국인 평균 수명이 78세를 넘어섰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구구팔팔하며 살아갑니다.
옛날에는 아무리 똑똑해도 신분이 양반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의 자녀라도 능력만 있으면 장관 아니라 대통령도 할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평등화되었고 또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사치품으로 감히 살수도 없는 것들이 이제는 생활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신라시대의 경주의 왕들만이 누리던 석빙고같은 냉장고가 집집마다 있습니다. 자가용도 이제는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입니다. 이제는 해외여행이 국내여행보다 더 싸고 시골 할머니도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세상이 편리해졌습니까 전화 한 통이면 자정 무렵에도 통닭이 배달되고, 홈쇼핑으로 집에서도 어떤 상품이든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많은 자유와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시대를 잘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렇게 잘살고 있고, 편리하게 살고 있는데 당신은 참으로 행복하십니까?” 그런데 이 질문에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116:12~14 “12.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시편 116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큰 환난과 슬픔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사울 왕의 핍박으로, 압살롬의 반역으로 고통 중에 빠졌던 사람입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감격으로 넘쳐 있습니다. 그래서 12절에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골짜기, 음부의 깊은 함정에서 환난과 슬픔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영혼을 사망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정신적인 고통 가운데서 그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넘어짐에서 일으켜 주셨습니다. 다윗은 이 모든 어려움 속에서 건져주신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한 평생 사노라면, 때때로 위기를 만납니다. 인생의 위기는 날씨의 변동과 비슷합니다. 평온하던 날씨가 갑자기 바뀌어 비바람이 불고 태풍이 엄습하듯이,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어려움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질병일 수도 있고, 실직이나 사업의 실패일 수도 있고, 자녀의 문제일 수도 있고, 어떤 불행한 사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금년에도 여러 가지 위기를 능히 이겨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데 대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온실의 화초처럼 키우시지 않고 고난의 풀무 가운데서 연단시키셔서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에 믿음의 사람 가운데 위기를 통해서 연단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신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서 75세의 나이에 갈 바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길을 떠났습니다.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바로에게 아내 사라를 빼앗긴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위기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위기와 시련을 만났을 때마다 믿음으로 이겨냄으로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으로 인정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녀 된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맡길 때 어떤 위기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인생의 위기를 만날지라도 절망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건져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이라면 벌써 절망에 빠지고 우울증에 걸리고 망해야 함에도 성도들은 오히려 위기를 통해 연단을 받아 믿음이 성숙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는 기회로 선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겠는데 무엇으로 보답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맡길 때
어떤 위기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다.
1. 우리 모두는 은혜 중에 살고 있습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헬라어에서 ‘은혜’란 말은 사랑의 돌봄, 또는 거저주시는 선물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내려 주시는 은혜는 지극하신 사랑에서 주신 선물입니다. 주님은 값없이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은혜에는 일반적인 은혜와 특수 은혜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은혜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내리시는 은혜를 말합니다. 마5:45절 “45.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시136편 말씀과 같이 하늘을 지으시고 땅을 물위에 펴시고 큰 빛들을 지으시고 해로 낮을 주관하시고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시고 공기를 만드신 하나님, 그 인자하심이 영원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내리시는 은혜를 일반 은혜라고 합니다.
특수 은혜는 기도에 대한 응답의 은혜입니다. 본문 12절에 “내게 주신 모든 은혜”라고 했는데, 이 은혜는 하나님께 간구한 기도의 응답으로서의 구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피조물들이 필요한 만큼 주십니다. 구체적으로 현세적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유익한 충분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슬픈 자와 고난 받는 자들에게는 필요한 것을 적절히 주십니다.
그 다음에는 영적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성령충만과 은혜 등 모든 것이 풍성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큰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고 보답해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이든지 자기가 잘나고 힘이 있어서 이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면 교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대하 32:25절에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하면 감사가 없습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물론 부모의 은혜도, 선생님의 은혜도, 이웃의 은혜도, 나라의 은혜도 모릅니다. 다 자기 잘난 맛에 된 줄 알고 자기가 애써서 된 줄로 압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들이 어떠한 어려움과 시련에서도 굴하지 않고 힘찬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나면서부터 죽는 것까지 모든 삶의 일들이 은혜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일생은 은혜로 시작하여 은혜로 끝맺습니다. 젖 빠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누운 자리도 은혜로 준비되었습니다. 세상 떠날 때 받는 봉사도 남의 은혜입니다. 남이 만든 수의를 입고, 남이 만든 관에 눕고, 장의차로 옮기고, 남이 나르고, 남이 판 무덤에 남이 묻어줍니다. 이렇게 인간의 마지막도 은혜로 마칩니다. 결국 은혜는 값없이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끝맺는 인생
2. 누가 이 은혜에 보답할 수 있을까요
받은 바 은혜를 깨닫는 자가 보답합니다. 신학자 [칼바르트] 는 “예수를 믿은 후에 두 가지를 깨닫지 못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는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이냐!”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예수님께서 저렇게 무서운 십자가의 형벌을 감당하셨을까?” 이것을 깨달아야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습니다.“도대체 나 같은 존재가 무엇이기에 날 위해 예수님이 생명까지 바치면서 구원해 주셨을까?”라는 그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깨달을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유명한 인도선교사 스탠리 존스는 “교양인과 야만인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느냐? 교양인과 야만인의 차이는 감사할 줄 아느냐 감사할 줄 모르느냐의 차이이다. 감사하며 사는 인생이 교양인이고, 감사할 줄 모르며 사는 인생은 야만인이다.” 가난하고 못배운 자가 야만인이 아니다. 모든 것이 자기 잘난 덕분인줄로만 알고 부모에게 감사할 줄도 모르고 이웃에게도 감사할줄 모르는 인간 그게 바로 야만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야만인들은 일이 조금 잘못되면 남탓만 합니다. 부모탓, 조상탓,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남탓만 하지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많은 현대인들이 학력은 높을지 몰라도 영적으로는 야만인으로 살아갑니다. 감사를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요즘 시대는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는데, 그것은 감사의 불감증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말세의 현상에 대하여 (딤후3:1-5)"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지금 이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물들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를 모르면 동물보다도 못합니다. 동물도 자기에게 밥주는 주인을 물지 않습니다. 그래서 충직한 개에게 유산도 물려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옛말에 원수는 돌에 새기나 은혜는 물에 새긴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윗은 시103:2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하였고, 시편 136:1절에서는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보답할 수 있습니까? 은혜의 보답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 맥추감사절 모두 기독교의 명절로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성경이 끊임없이 강조하는 교훈은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감사를 가르치고 감사를 명했을까? 하나님은 우리가 영광 돌리지 않아도 충분히 영광스런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가르치신 것은 감사해야만 영적으로 풍성하여지기 때문입니다. 감사해야 사람은 행복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왜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가? 모든 것이 내 공로가 아니고 하나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현대인이 왜 잘살면서 행복하지 않는가? 그것은 내 삶에서 하나님 은혜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사는 것과 형통한 것을 모두 내 공로로 여깁니다. 그러다보니 나보다 잘사는 사람을 보면 기분 나쁘고 불만이고 그것이 불행의 원인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내 공로가 아니고 하나님 은혜임을 믿습니다. 은혜의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물질의 축복까지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다 주십니다. 우리도 힘든 역경과 곤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생활을 하므로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다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