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침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7:28,29).
예수님은 블루칼라 노동자로 살았다. 대부분 청년시설을 목수로 보냈다. 그리고 30의 나이에 직업을 완전히 바꾸었다. 바로 목수에서 청중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새로운 일을 하셨다.
오늘 본문은 산상수훈(마5-7장)의 마지막 문장이다. 예수님은 다른 랍비(교사)와 비교했을 때 차원이 다른 랍비였다.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들은 청중들은 다른 랍비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이 산에서 가르친 보석 같은 진리이다. 산상수훈은 천국백성의 삶의 방정식을 가르친 내용이다. 구약의 율법에 사랑의 개념을 넣어 재해석했다. 예를들면, 구약 율법에 ‘살인하지 말라’고 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이렇게 재해석 하셨다. 형제에게 ‘라가’, ‘미련한 놈’, ‘노하는 자’는 이미 살인한자라고 했다. 마음에 분노와 미움을 품고 말하는 것은 이미 살인했다고 보았다.
교사가 이렇게 중요하다. 교사는 사람의 가치와 생각과 관점을 바꾸어놓는 위대한 길을 제시한다.
나라의 부국강병은 지혜로운 왕과 강력한 군대에 달려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나라로 존립했던 기간은 아주 짧았다. 솔로몬왕 이후 남왕국과 북왕국으로 분열되었고, 결국 나라는 멸망했다.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영웅이 대신했다. 그것이 바로 교사였다.
교사란 교육자이다. 이스라엘은 군대도 없고, 부도 없고, 권력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책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책의 민족'이다. 이스라엘이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그 민족이 단합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책 덕분이다. 로마는 군대가 있었고, 그리스는 문화가 있었고, 이집트는 부가 있었고, 페니키아는 선박이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책의 백성이다.
랍비들은 책을 알았고, 그 책을 정확하게 인용해서 전달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랍비들과 차원이 달랐다. 예수님은 남의 말을 인용하지 않았고 직접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라고 하셨다.
훌륭한 교사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훌륭한 교사는 복덩어리이다. 복 그 자체이다. 잘 가르치는 교사는 존경과 사랑을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좋은 교사가 대접받고 존중받고 인정받는 사회가 복있는 나라이다.
예수님은 복 그 자체이다. 교수님은 탁월한 교사이다. 그분의 가르침을 통해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를 세상에 내놓았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가르치는 사역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모든 교육의 출발은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수도원은 훌륭한 교육의 장소였다. 예수님을 따르는 베네딕트는 고대 문헌을 수집하여 ‘도서관의 대부’로 알려졌다.
수도원에서 대학이 시작되었다. 최초의 대학은 12세기 경 파리에 설립되었고, 13세기에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이 설립되었다. 옥스퍼드 대학의 모토는 시편 27편 1절 “여호와는 나의 빛이다”였다. 그 뒤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세계 각처에 학교를 설립했다.
대학(university)이라는 명칭도 ‘태초에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상에서 나왔다. 우주는 제멋대로 순환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규칙적으로 창조하신 세상이다. 하나님은 이성적인 분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주를 알 수 있는 만큼 얼마든지 공부해야한다. 대학은 무질서한 혼돈을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의 우주(universe)를 공부하는 곳이다. 성경 말씀에서 대학의 개념이 나왔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을 교수(professor)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무엇인가 '천명할'(profess) 것이 있는 사람들로 간주한다. ‘천명하다’는 말은 내가 진리로 믿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교수이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교육의 한 획을 그었다. 신약성경을 바탕으로 만인제사장론을 강조하면서 교육에 변화가 찾아왔다. 이제 우리 모두 제사장이므로 성경을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스스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 사회 모든 구성원의 문맹을 퇴치한다는 목표가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되었다.
루터는 자녀 교육을 소홀히 하는 부모들에게 “나는 그런 파렴치하고 비열하고 저주받을 부모들을 정말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아예 부모가 아니라 자기 새끼를 삼키는 비정한 돼지이며 독을 뿜는 야수다.”(존, 오토버그, 예수는 누구인가?).
교육은 교회의 방향이며 하늘 가치를 창조하는 거룩한 행위이다. 위대하고 탁월한 교사였던 예수님처럼 그분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은 교육에 목숨을 걸었다. 교육없이 신앙은 전수되지 않는다. 교육없는 미래는 어둠이다. 탁월한 랍비들이 교회의 희망이고 가정과 사회의 빛이였다. 성경을 사랑하는 분들은 한결같이 교육의 소중함을 안다. 잘가르치는 교사와 교육을 사랑하는 기성세대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될때 그 사회는 창조의 역동성이 회복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