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욕심 부리지 말라! 그대가 세상에 남길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없다. 유산도, 유훈도 오래 가지 못한다. 비석에 새길 몇 마디가 그리 대수이겠는가! 사는 동안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모자람 없이 누리는 것이 지혜요, 필요한 이와 더불어 나누는 것이 그나마 의미 있는 일이다. 여유가 있다면 자식들을 뒷바라지하고 이웃을 돌아보라! 기력이 쇠해져 힘에 부치면 바나바처럼 모든 소유를 교회 앞에 두고 하나님의 사람들로 그 일을 계속토록 하라!
왜 중병에 들어서만 하나님을 애타게 찾는가? 살려달라고 부르짖으며 ‘살려주시기만 한다면.......’ 하고 흥정하듯 탄원하는가? 건강하고 평안할 때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그런 다짐으로 살 수는 없을까? 살고 죽는 것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다. 어차피 죽기로 되어 있는 우리네 삶인데 살아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본때 있게, 주님의 용사다운 근성으로 살아가면 아니 될까? 그런 헌신, 그런 충성, 그런 사역, 그런 삶! 시도할 만하지 않은가!
이단 척결에 앞장 설 투사를 양성하라! 그런 교회, 그런 목사, 그런 신자가 불처럼 일어나야 한다. 영적 분별력이 탁월하고 강단 있으며 기도와 말씀의 기본기가 탄탄한 인물들을 엄선해서 교회의 공동선을 위해 영적인 전사 집단을 형성하라! 이교 세력의 침투에 맞서 교회의 방호력을 키우고 개종 능력의 역공을 감행할 일군 양성이 그리도 절실하다. 영적 전쟁에서 승기를 잡으려면 뛰어난 전략 수립이 필연이다. 그대는 매사에 전략적으로 임하라!
교회 공동선을 위해
영적 전사 집단을 양성하라
잠재적 배교자를 색출하라! 배신의 싹이 자라지 못하도록 진리의 토양을 보존하고 반역의 온상이 될 성 싶은 기운은 애초부터 차단함이 지혜롭다. 매의 눈을 가지고 불온 세력의 침투를 색출해 교회야말로 안전한 피난처임을 수긍케 하는 일은 다른 어떤 사역보다 화급을 다툴 일이다. 이런 일군은 그야말로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교회의 역군이다. 땅의 사방을 잡은 천사들처럼 교회를 사주경계(四周警戒)하여 공동체의 와해를 막아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많은 일군을 요한다. 아론 같은 말쟁이도 필요하고 바울 같은 글쟁이도 절실하다. 다윗 같은 소년 장수도 요구되고 바실래 같은 경륜의 모사도 긴요하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은 흔적이 분명하면 어떤 상황에도 말을 가리고 생각을 다듬으며 잽싸게 행해도 신중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말씀이신 하나님 앞에서 막말은 삼간다. 사라지지 않고 지워지지 않을 폭언과 허언과 추잡한 말을 그치라! 열 번을 생각하고 말하라.(十思一言).
하나님 나라의 필요한 일군
-아론 같은 말쟁이
-바울 같은 글쟁이
-다윗 같은 소년 장수
-바실래 같은 경륜의 모사
......
천국에 언어가 없음은 사랑의 침묵이 곧 언어의 기능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의 삼층천 방문 경험을 짤막하게 서술했다.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 12:4) 천국의 일을 세상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음은 당연지사다. 영과 육의 두 세계가 아예 다르다. 성경에 말과 연관된 가르침이 유독 많은 것도 자신의 말로 의롭다 함을 얻지만 정죄도 받는 올무가 되기 때문이다.
